2026.02.08 (일)
요즘 교보문고 기준으로 핫한 《돈의 방정식》이라는, 모건 하우절 작가가 쓴 책을 읽고 있다.
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라는 점이 이 책을 사게 만든 계기인데, 이제 절반 정도밖에 읽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돈의 심리학》보다도 감명 깊은 내용들이 많다고 느낀다.
올해 드디어 내가 1차적 목표로 삼았던 순자산에 도달했지만 최근 투자 손실이 나며 기쁨도 잠시뿐이 되었고, 우리 가족의 경제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난 부자는커녕 가난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지금까지 여행도 1년에 한두 번 국내로만 가고, 차도 사지 않고, 쇼핑도 자주 하지 않고, 큰돈 드는 취미도 없으며 꼭 필요할 때만 한 번씩 쓰며, 사회초년생 시절 내 돈으로 애플워치 6을 애플스토어에서 할부 구매해 본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소비에서 일시불을 선호하는 습관을 들여왔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저축, 절약, 투자를 해오며 이제는 사회 초년생 때보다 큰 금액이 내 수중에 있는 건 사실이기에, 내가 앞으로도 이렇게 선형적 혹은 지수함수적으로 자산을 모아간다면 이렇게 모은 돈을 어떻게 써야 현명할까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로는 근 몇 년 간 나 스스로의 모습에서 발견한 점인데, '나는 왜 소비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가'였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나를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려가주시기만 해도 나는 그날 하루 종일이 행복했고, 수능이 끝난 후 첫 아이폰을 사주셨을 때나 대학교에 입학해 맥북을 선물 받았을 때는 몇 달 동안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행복했다.
반면 직장인이 된 지금은 그래도 1년에 한두 번은 여행을 가고, 필요에 의할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그저 호기심에 경험 삼아 타보고 싶어서 쏘카를 켜고 여러 종류의 차를 시간 단위에서 일 단위까지 다양하게 빌려도 보고, 뉴발란스 VIP를 달며 메이드 라인을 종류별로 신어 보기도 하고, 재즈와 믹싱을 배워보고 싶어 키보드와 Logic, Splice 같은 프로그램을 구매하거나 구독하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헬스장 회원권을 갱신하고, 커피 한 잔에만 밥값만큼을 써보기도 하고, 홈카페 장비들을 꾸리기도 하고, 필요한 기기가 있다면 곧장 사기도 하고, 한두 달에 한 번씩 가족과 빕스나 아웃백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며, 연말에는 호텔 뷔페를 예약하기도 함에도, 나는 행복이란 감정을 그다지 느껴본 적이 없다. 느끼더라도 찰나이고, 시간 단위로 사라지곤 한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나는 분명히 어렸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으며, 한동안은 이를 드러내는 데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새 행복에 인색해지고 말았다. 내가 어느새 감정이 결여된 것인가? 번아웃인가? 공허한 로봇 같은 사람이 돼버린 건 아닐까?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은 통장 잔고가 몇 년째 그대로이거나 우하향이거나 빚을 지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지 않고, 나름대로 꽤나 가성비 있는 소비 과정을 통해 깨달았다는 점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에서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데, 나의 경우 돈이 얼마가 있든 간에 소비와 저축 과정 모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두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임을 발견했다.
첫째는 외면적·내면적 기준이 높아서였다. 나는 부양, 연애, 결혼, 육아 등 이미 현실이거나 다가오는 미래인 돈 문제들을 대비해야 하는데,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대비'에 대한 기준은 높다. 나의 내면적 기준은 낮더라도, 타의에 의해서 이러한 외면적 기준에 부응해야 하는 상황도 잦고. 쉽게 말해 어깨가 무겁다는 뜻이다. 행복은 가진 것에 대한 만족에서 나오는데, 나는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없으니 행복을 오래 느낄 수 없었다.
둘째는 돈의 동의어는 부이며, 부의 동의어는 성공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즉 무의식적으로 돈 많이 벌면 성공한 것이라는 사회 통념을 답습하고 있었다. 천민자본주의는 싫어하지만 동의는 하고 있던 셈이다. 여기에 앞서 말한 문제까지 더해지니 행복을 느끼기 어려웠다.
이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교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로 나의 내면적 기준을 보다 우선하고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기대 즉 목표를 높게 잡아야 하는 것은 좋지만, 순간순간의 일상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만족은 기대와 실제의 차이만큼 커지기 마련이므로, 소확행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최근에 내가 경험한 가장 큰 행복은 월급으로 금융치료를 받은 것도, 신형 맥미니를 친구를 통해 싸게 구매한 것도 아니었다.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안양으로 가는 길, 근처 폴바셋에 들어가 4,400원짜리 마끼아또를 시킨 뒤 설탕 한 봉지를 털어 넣고 젓지 않고 마시다 바닥에 살짝 녹은 설탕을 긁어먹으며 즐긴 굉장히 사소한 경험이었다. 조용하고 한산한 매장 안에서 즐긴 그 작은 데미타세 잔 속의 행복은 시간 순으로는 월급날보다도, 맥미니를 산 것보다도 더 이전의 일이지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둘째로 돈의 동의어는 부가 아니란 점이다. 《부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책에서는 우리가 몸·마음·영혼 즉 지·덕·체의 만족이라는 삶의 세 가지 동기를 위해 살아간다고 한다. 즉 부의 진정한 동의어는 바로 이 세 가지 동기이며, 돈은 몸·마음·영혼의 만족을 이루기 쉽게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다.
워런 버핏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성공의 크기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
돈 많은 사람에게는 짜증 나는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100만 달러짜리 수표만 쓰면 사랑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여기까지 글을 쓰다 보니 잠깐 이런 의문이 들었다. 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왜 줄곧 행복에 대한 얘기만 늘어놨을까?
행동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돈을 벌기 전에 이미 행복한 사람은 돈을 벌고 난 뒤에 훨씬 더 행복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제외한 것들 즉 몸·마음·영혼의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어야 한다.
돈이 목적이 된다면 잔뜩 높아진 기대치에 도달하기 위해 만족을 모르며 돈을 좇다 돈에 지배당할 것이다. 그렇게 부자가 된다면 말도 안 되는 과소비를 하고도 그 이유를 나의 행복 추구에서 찾지 않고 그저 돈을 그만큼 쓸 수 있으니까, 즉 '할 수 있으니까'밖에 댈 수 없을 것이다.
돈은 어디까지나 도구이기에, 소비를 자랑하기보다 자기가 쌓아 올린 것을 자랑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책에서 말하는 건강하게 돈을 다루는 관점이며, 이는 곧 내가 추구하던 가치관이기도 하다.
그저 막연하게 돈이 많을수록 좋다, 50억, 100억, 200억은 모아야 한다 같은 추상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나의 행복을 위해 나만의 청사진을 명확히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있는 중이다.
이제 두 가지 미션이 생겼다.
만족의 역치를 낮추려 노력하고,
먼저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 몸·마음·영혼의 만족을 얻는 것.
그러고 나면 내가 무엇에 최우선으로 돈을 활용해야 하는지,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산을 만들어야 하는지가 보이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