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주고 싶은데 못해서 슬픈 병
남편을 맘껏 사랑하고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다.
그런데 내가 또 뒤통수를 맞고 배신을 당할까 봐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고 있다.
나는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믿어준다.
괜찮은 척하는데 괜찮지 않다.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몸이 자꾸 아프다.
사랑해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다.
아니다. 이제는 그러기 싫다. 무섭다
내 등에는 그가 꽂은 수십 개의 칼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피가 철철 흐르고 있다.
나를 아프게 하기 싫다며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가 이만큼이나 꽂아 넣은 것이다.
내가 뭘 더 어떻게 믿고 어떻게 더...
내 휴대폰에 그는 이제 저장되어있지 않다.
그에게서 전화가 오면 이렇게 뜬다.
010-0000-0000
한때 그는 내 폰에 <우리 행운 사랑해>로
저장되어 있었고 다른 번호와는 다르게
혼자만 특별한 벨소리로 지정되어
소리만 들어도 남편이구나 하고
기분 좋게 통화하던 나의 소중한 존재였다.
전화번호를 지우는 것은
내가 그를 마음껏 사랑하지 않는 방식이다.
나에게 무슨 큰일이 생겨서 소식을 전할 때
그는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듣게 되어 알게 될 것이다.
내 휴대폰이 그는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