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졸업?
다음 주에 대학교를 졸업한다. 사실 지난해에 졸업해야 했지만, 취업 준비 등의 이유로 졸업을 유예해 둔 상태였다. 솔직히 말하면, 졸업을 유예한 이유에 아직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는 두려움도 한몫했다.
졸업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던 마지막 학기에, 내 머릿속을 지배했던 감정은 '허무하다' 혹은 '억울하다'였다. 사 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막상 마주한 취업 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치열했고, 사 년 동안 한 진로 고민이 무색하게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코로나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졸업 유예를 해 둔 기간 동안 일도 해 보며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막 졸업반이 되었을 때, 아빠는 나에게 취업을 할 것인지, 대학원에 진학할 것인지 물었다. 나는 취업을 하겠다고 했고, 아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해 주었다. 사실 그때는 그렇게 고마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답답했다.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해서 막막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거기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게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졸업을 유예해 두고, 일 년 동안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다. 웃기게도 내가 내린 답은 아빠가 나에게 한 말과 똑같았다.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어렴풋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몇 년 동안 내가 붙잡고 놓지 않은 일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글을 쓰고 싶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고, 세상 사람들이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비웃어도 어쩔 수 없고. 응원해 주면 감사하고. 자전거를 탈 때 처음엔 중심을 잡느라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중심을 잡고 굴러 나간다. 나도 이런저런 말에 많이 흔들려 봤으니까 이제 덜 흔들리는 법을 깨우쳤다고 생각한다.
중심을 잡으니 이제는 작년의 내가 참 오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참 완벽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미련 없는 졸업을 하고, 완벽하게 취업을 하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의심이 없고.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끝은 없고, 완벽도 없다. 대신 계속하고, 고치는 것만이 있다. 한편으로는, 꼬일 대로 꼬여버린 작년의 내가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서 그 시간도 겪어 보지 않는 상황에 적응하고 흔들리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갈 곳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학교를 떠날 용기가 생겼다.
무엇보다 나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감정은 더 이상 허무나 억울이 아닌, 감사다. 참 좋은 시절을 보냈다. 더 넓고 깊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학교에게 고맙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준 가족에게 고맙고, 서로 자극을 주고받았던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고맙다.
누군가 나에게 대학교에서 배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방법을 찾는 자세라고 대답할 것이다. 밤을 새워 리포트를 고치고 또 고쳤던 시간, 여기저기 물어 가며 준비했던 교환 학생, 그 외 처음 해 보았던 수많은 것들.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이제 별로 상관이 없다. 모르면 묻고, 틀리면 고치면서 한 걸음씩 내딛는 매 순간순간이 행복하면 그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