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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주 May 04. 2023

비전공자 화이트해커로 살아남기

나의 입사 일 년 차 리뷰

입사한 지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 웹 해킹 기법을 공부하며 취업 스터디를 수강했을 때가 21년 10월인데, 그 쯤 IT 업계에 관심이 생겨 네트워크 관리사라던지, SQLD 자격증, 정보처리 산업기사를 따며 이제 뭔지, 저게 뭔지 처음 접했을 때가 생각이 난다.

막상 정말 취업이 될까? 반신반의하면서 취업 스터디를 수강했는데 수업 회차가 지날수록 개발 결과물과 지식이 쌓이는 게 조금은 재밌었던 것 같다. 입사할 때의 나는 정말 단순하게 웹 해킹 기법 보고서 포트폴리오랑 PHP 웹 사이트 하나로 몸통박치기를 했는데 의외로 너무 쉽게 회사에 입사를 했다. 사실 10월경부터 2월 말까지 수업을 수강했으니 5개월 정도 수업을 들은 샘이다.

 

여기까지는 이제 해피엔딩인데, 전공자들 사이에서 무작정 들어온 내 고군분투 입사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입사한 경우가 나 하나밖에 없는 건 아니다. 처음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세 달간 담당자와 소통하며 재밌었고 새로웠다. 물론 입사 첫날에는 너무 떨리고 무서워서 울고 두 번째 외부 플젝 때는 내내 떨며 체기를 달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걸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날 옥죄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곧 분위기에 적응하고 회사에 친해진 사람들이자 선배들로 이루어진 사내 스터디도 인턴 때부터 시작했다. (4월에 입사해서 5월 초에 스터디를 시작했다.)


조금씩 재미를 붙여가던 일이 제일 재밌었을 때가 모 금융회사에서 2주간 이행진단을 수행했을 때인데, 재택근무로 인해 몰래 카페에 나가서 근무하고 호텔을 잡고 로망 근무 실현을 했던 기억이 난다.

호텔에서 맛있는거 잔뜩 사서 근무하던 날

원래는 개발자와 다이렉트로 소통하는 게 안되지만, 해당 회사는 독특하게 각 웹 사이트/앱 담당자가 나에게 바로 연락을 해서 대응 방안 상세를 물어보곤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보안 대책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인턴 때는 회사에서 내주는 과제를 수행하여 3개월 후에 정규직 전환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나는 입사 전 스터디가 이 과제와 상당히 유사했기 때문에 팀장님께서 내게 다른 과제를 따로 내주었다. 같은 웹 개발에 대한 과제이면서 JSP 언어를 사용하고 더 심화된 기능을 개발하는 과제였다. 엑셀 시트에 개발 방법에 대한 Case와 그에 따른 공격 방법, 우회 방법을 공부했다. 세 시간씩 쪼개자며 어떻게든 과제 결과를 만들어갔더니 팀장님이 굉장히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입사 전 4개월 걸린 웹 사이트 제작을 10일 만에 구성해 갔다.)

 

팀장님은 처음엔 스터디에서 최후에 생존한 1인이다. 라며 스터디 담당 멘토님이 띄워주셔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셨는데 막상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당황하셨다. 그러다 과제를 따로 내달라고 하는 내게 흔쾌히 응해주셨고 매주 혹은 1-3주에 한 번씩 바쁜 개인시간을 할애해 내 과제를 검토해 주시며 따로 챙겨주셨다. 후일담으로는 나중에 팀원들에게 '내가 시키면 뭐든 다 해오는 애가 있다. 팀에 꼭 데려오고 싶다.'라며 그쯤부터 나를 점찍어두셨던 것 같다.

 

이때쯤 하던 스터디도 문제였는데, '웹 해킹 기법'만 알고 자세한 동작이 어떻게 되는지, SSL 피닝이 뭔지, 모바일에서 만지는 C나 Java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첫 스터디 주제가 'SSL Pinning 우회'였다. 혹시나 내 얇은 지식을 들킬까 일단 수긍하고 나서 어떻게든 뭐든 만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선배의 도움을 빌려 스터디 자료를 만든 적도 있다.  이때의 나는 가능한 모든 곳에 손을 뻗어 도움을 청했다. 퇴근하고 배정된 멘토 선배의 집 앞까지 가서 도움을 구한 기억도 생생하다. 무서웠고 무모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3개월이 완성될 때쯤 입사 79일째, 이끌어주시던 팀장님 담당 부서 이동이 되었다. 정규직 전환을 통과시킬 거라고 하시면서 내게 재밌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원래 있던 컨설팅 부서 담당님께서는 내게 세 차례정도 의사를 물어보시곤 하셨는데 내가 해당 팀에 가서 잘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해 보라고 재차 강조하셨다. 지금은 담당님의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연구팀은 인턴 3개월을 새로 리셋시키는, 내 생각과 또 다른 어려움이 있는 부서였다.

 

랩실은 연구를 하는 조직이다. 처음 부서 이동되었을 때 7명이었던 팀원이 22명으로 불어났는데 희박한 비전공자에 문과는 현재 나밖에 안 남은 것 같다.(내가 아는 바로는 그렇다.) 부족한 내 지식을 숨기고 아는 범위 내에서 일을 수행할 수 있었던 컨설팅 업무와는 달리 연구팀은 아는 기본 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주제의 연구를 하는 조직이다. 그렇기에 다들 기본 지식이 뛰어났고 팀이기에 내 실력의 밑천은 초반부터 빠르게 드러났다.

 

하필 처음 연구에 참여하게 된 주제는 IoT 버그바운티였는데 업무를 하는 3개월내내 내가 미운오리새끼가 된 것처럼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아무리 스터디로 기본 지식을 채우려 해도 밑 빠진 둑에 물붇기였다.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노래를 듣다가 울기도, 전공 책 공부를 하다 울기도 했다. 진지하게 퇴사에 대한 생각을 하며 팀 내 친해진 선배님께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정도로 좌절감이 강했다.

 

이때 나를 제일 심하게 힘들게 했던 건 선배들의 직언이었다. 그때는 내가 모르는 걸 들키는 게 너무 무서웠고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지금은 동료들의 직언을 원동력으로 기쁘게 삼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팀에서의 내 스스로가 한없이 작았던 것 같다. 내가 입사하고서 제일 잘한 일은 회사 내에 믿을만한 동료들을 만든 일이다. 입사 후 1년 동안 매주 함께 해준 스터디원들과 함께 입사해 초반에 내 부족한 실력을 감추게 도와준 경력직 동기와 멘토님, 선배님들이 있다. 그리고 좌절해 있는 나를 꺼내준 직책자분들의 격려, 동료들의 위로와 칭찬으로 정말 하루하루 출근을 했다.

 

팀원들과 회식 콘텐츠로 쓸데없는 선물 주고받기 한 날

연구팀이 적응되고 대략 하반기 결과물이 나왔던 시점부터는 팀원들과 회식으로 롯데월드를 가거나 선배님 집들이, 스포츠 몬스터, 찜질, 새벽 내내 한 술게임 등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많이 쌓았다.


지나고 나니 선배님들의 말이 적응이 되고, 내가 내 부족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때쯤 팀 선배가 해준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 '요즘 신입들은 모르는 걸 모른다고 안 하려고 한다. 그냥 모른다고 하고 배우면 되는 거다.'

 



내가 자존감을 모두 회복하고 어엿한 팀 일원이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분기마다 발행되는 보고서의 PPT 디자인을 하고, 뒤이어 진행되는 사업에 관한 PPT 제작을 맡았던 시기이다. 당시 PPT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내가 제작한 PPT 디자인이 발표 자료에 사용되었는데 팀원들의 칭찬과 팀장님의 칭찬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업무적으로 받은 칭찬은 처음이었다. 두리뭉실한 열심히 한다, 잘한다가 아닌 내가 수행한 일에 대한 직접적인 칭찬이었다. 이를 계기로 진행하는 사업에 관한 발표자료를 도맡았고 단기간에 자료를 만든 날 보고 팀장님이 해주신 칭찬이 있다. ''나 같으면 자존감도 많이 낮아지고 힘들었을 텐데 기특하다. 별말 안 해도 따로 준 업무를 하루이틀 만에 다 해내는 거 보고 그동안 많이 성장했구나 싶었다."

 

그쯤을 계기로 지금까지 또 열심히 달려왔다. 평일에 자바 과외를 받기도 했고 선배들이 과제라고 내준 책을 읽으면서 회사에서 자본 적도 있다. 지금도 꾸준히 새로운 공부를 한다.(아직도 부족하지만 일 년간 정말 많이 배웠다. 기초 서적도 많이 읽는다.) 일 년을 지나오며 더욱 선명해진 사실은 내가 이 업계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다. 늘 존경할만한 롤모델이 근처에 있고 지칠 때 함께 추억을 만들 동료도, 나태해질 때 직언을 해줄 선배도 있다.

 

최근에 본 책 'IT 회사에 간 문과 여자(염지원 저)'에서 너무 공감 가는 글을 봤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나처럼 성장을 좋아하고, 기술에 대한 정복욕 내지는 승부욕이 강하기 때문에 종종 업계 전체가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듯 우리는 항상 공부하고 달려가고 있다.

 

이제는 팀에 후배들도 많이 생겼는데 언제 두고 간 물건을 다시 찾기 위해 열 시쯤 회사를 다시 방문했더니 주섬주섬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 후배들을 봤다. 거의 매일 남아 공부하고, 새벽까지 공부하는 동료도 있다. 사실 나는 워라밸을 포기하면서까지 악착같이 매달린 다기보다 남는 시간 대다수를 할애하는 방식으로만 공부를 해오고 있는데, 주변에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에너지를 많이 얻는다. 나 같은 경우는 매주 부모님과 대화할 때 어떻게 하면 공부시간을 늘릴 수 있을지 항상 같은 고민을 토로한다.

 

일 년간 바른 자세로 나아간 만큼 앞으로도 스스로가 열심히 했으면 한다. 더 전문성을 갖춰서 나중엔 이 업계에서 후배를 양성하는 위치에서 서고 싶다. 나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이 업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회사에서 나아가 정보 보안이 안전해지는데 아주 작은 도움이나마 되는 것이 꿈이다.

 

회사에 들어오면서 나를 입사 문 앞까지 이끌어준 사람이 있고, 회사 내에서 든든하게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다. 또 나를 지지해 주는 주변인들이 있다. 이래나 저래나 중요할 땐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것 같다.(친한 친구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부족한 나를 이 업계가 품어준 만큼 열심히 성장해서 나도 선배들의 짐을 덜어주는 듬직한 후배가 되고 싶다. 내가 누군가로 인해 지금의 나로 살고 있듯 누군가도 나를 보면서 이 업계에 발을 담그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지붕 같은 존재이고 싶다.

 

최근에 들은 가장 멋진 말은 "내가 결과는 어떻게든 다 할 테니 선임님은 걱정 말고 하세요."였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선배님들의 지붕아래 안전하게 실력을 쌓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대한 오래 좋은 담당님과 성장하는 팀 사이에 남아있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그러기 위해 팀에 필요한 인재가 되고, 내 능력을 인정받으며 현재 몸 담그고 있는 회사와 상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성장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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