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일요일
*그들의 이름은 가명처리 됩니다.
마음이 아프면서 미영은 자주 서준을 생각했다.
미진과 그녀의 동생 미애를 태운 차에서 미영은 핸들을 이상한 쪽으로 꺾는 상상을 했다. 그건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상상해 오던 작은 죽음이었다. 혹은 세상에 대한 화풀이 었다.
“아까 큰 턱이 있었는데 그냥 뒤로 후진하면서 내려앉았어, 괜찮나? “
미영은 엉킨 마음을 티 내지 않고 미진에게 말했다.
“아니지. 그러면 안 되지. 타이어가 찢겼을 수도 있는데. 왜 그랬대? “
미진은 놀란 듯이 물었다.
“음. 그냥 앞에 차가 나오려고 하길래. 급한 마음에.”
“고속도로 들어가기 전에 멈춰서 보고 갈까?”
미진은 설마 찢어졌을까 싶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영에게 물었다.
“아… 타이어 그렇게 되면 사고나? “
미영은 묻고 나서 미진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아무래도 고속도로에선 세울 수가 없으니까…”
“뭐, 죽기야 하겠어?”
미영은 태연한 척 대답했다. 옆을 힐끗 보자 미진의 안색은 별다른 미동이 없었다.
그녀는 가끔 이렇게 미진에게 빙빙 돌려 자신의 송곳을 내보이고 반응을 살피곤 했다. 신경 쓰려나. 눈치챌까 하는 남모를 기대를 품고서. 하지만 미진이 아무런 반응을 않자 미영은 그녀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고속도로에서는 운전을 두 손으로 해야지. 너 한 손으로 해서 자꾸 이렇게 핸들이 흔들리잖아.”
“브레이크 빨리 밟아.”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미진은 참견을 시작했고, 이에 예민해진 미영은 미진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엄마가 해. 그냥.”
“.. 그게 아니고.”
“….”
“원래 운전하는 사람 옆은 예민한 법이야.”
미진은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정신이 곤두선 미영은 두통이 시작되는 걸 느꼈다.
가끔 찾아오는 두통은 꽤 성가셨다. 세상과 그녀가 잠시 멀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미영은 한 층 멀어진 곳에서 드문드문한 생각을 이어갔다. 그녀는 두통의 전후로 하나에 집중하기가 힘들었고 멀리 있는 글자에 집중하면 멀미가 났다. 눈을 떠 앞의 차를 바라보지만 내 몸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휴게소에서 자리 바꾸자.”
미영은 운전대를 내려놓기로 했다. 아집으로 운전을 길게 끌었지만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심지어 사고가 나면 내 차를 탄 당신들 책임이 아니냐 생각을 하다가. 그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상상을 하다가. 그 사죄가 진심일지 고민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휴게소 간식 사 올게. 화장실도 안 가?” 미진이 물었다.
“응. 여기 있을래.”
미영은 그렇게 말하고 차에서 멀어지는 미진과 미애를 바라봤다. 운전대를 놓으니 두통이 좀 가셨다. 무의식적으로 긴장을 품고 있었나 생각하면서 조수석에 몸을 뉘었다.
차는 고속도로를 계속 지났다. 미영은 핸드폰을 하다가 갑자기 내려놓고 멍을 때렸다.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을 가봐야 하나…
그리고 미진을 쓱 바라봤다. 미진과 그녀의 동생 미애는 아까부터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다. 내년에 자매끼리 갈 가을 여행이었다. 그들은 하하 호호 웃으며 대화를 쌓아 올리고 있었다.
미영은 자신이 어딘가 망가진 기분이 들었지만 미진에게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었다. 말하고 싶었지만 관심을 달라 애써 보채는 기분이 들었고 그게 싫었다. 또 서준이 생각났다. 그는 이렇게 몇 년을 지내고 지냈겠구나. 그러다 체념했구나.
한 사람의 죽음은 세상에 아무런 흠집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게 이상했다. 나를 등지고 모두가 굴러가는 기분이었다.
미영은 차라리 죽음이 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타인의 죽음을 등한시하지 못하게. 흔적이 없어지지 않게. 그렇게라도 너와 내가 연결되도록.
어쩌면 무언가 깨끗한 정의를 가지고 떠난 그녀의 오빠보다 죽음의 전후 민낯을 알게 된 그녀가 앞으로 더 오랜 시간 고통받을 수도 있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죽음은 타인에게 잔인한 흔적을 남길 것 같지만 의외로 조용하기도 했다. 잊힘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세계였다. 그녀는 아무도 없는 그의 삶은 진즉 죽음과 다름없었다는 점과 그녀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상상을 했다.
이건 자신만의 이야기였다. 타인은 결코 알지 못하는.
미영은 핸드폰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그녀가 최근 선택한 방법이었다. 서준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세워놓고 그녀는 맘껏 캐릭터를 그리워했다. 자신의 불행도 덤덤히 내보이기로 했다.
그건 뭐랄까. 내가 내뱉는 작은 발악과 같았다.
글을 쓰다가 무심코. 그녀의 글에 응원 댓글이 달린 걸 확인했다. 놀라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앱을 나서는데 오랜만에 별일 없냐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방금까진 세상이 나를 두고 돌아갔는데, 갑자기 그녀는 그 안에 속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위로의 순간에 미영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익명의 댓글이 눈물을 자극하는 게 당혹스럽기도, 울렁이기도 했다. 미영은 자신의 불행에 타인은 관심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공개된 곳에 글을 써왔다.
위로를 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해 찰나 화가 나기도 했다. 그녀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에 글을 잠시 보고 폰을 내려두다 다시 잠시 보면서 아주 조심스레 글을 소화했다. 집 근처에 다다라 음식점에서 시킨 음식이 나올 때까지 그녀는 계속 울었다.
미진과 미애는 보지 못한 울음이었다. 미영은 창문을 보며 차에서 울었고 음식점에서도 메뉴를 보는 척 눈을 돌려 아득바득 눈물을 삼켰다. 눈물이 나는 게 슬프지 않았다. 고깝지도 않았다. 기쁜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녀는 식사와 함께 소주를 주문했다. 이 술과 함께 울음을 넘겨내자는 생각으로 잔을 연거푸 비웠다. 식사를 하며 혼자 먹는 술은 처음이었다. 술이 자극하면서 속이 쓰려왔지만 반대로 마음은 잔잔해졌다.
미진과 미애는 가볍게 걱정을 건넸다. "삐졌어? 뭐가 시무룩해?" 등의 말이 내 표면을 스쳐갔다. 하지만 괜찮았다. 밥을 떠먹고 술을 마시며 내 안을 채웠다.
친구에겐 술을 먹자고 칭얼거렸다. 그녀는 다음주 수요일에 친구를 만나기로 하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저녁을 먹고는 혼자 노래방에 갔다. 적어도 오늘 미영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오늘은 땅에 발을 디뎠고 수요일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