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김치를 대하는 마음

by 햇살정아

가족의 시골은 충청남도 공주이다. 물 좋고 공기 좋은 한적한 마을에 외할머니가 살고 계시니 그곳은 언제나 달려갈 수 있는 우리의 즐거운 아지트인 셈이다.


지금은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직접 농사를 못 짓고 계시지만 불과 이삼 년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 덕분에 우리의 식탁은 풍성했다. 하지만 요즘은 소일거리로 하던 텃밭 농사도 힘에 겨워 모두 접으실 정도로 많이 허약해지셨다.


그 와중에 할머니는 본인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김장'은 꼭 시골집에서 다 같이 모여서 해야 한다고 소원처럼 말씀하신 덕분에 이번 김장도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핸드메이드로 준비해야 했다.


우리 집 식구들은 김치 마니아이다. 그래서 그런지 식구들은 김장에 사활을 건다. 이웃집에서 배추를 사고, 신안섬에서 공수해 온 소금으로 배추를 절이고, 강화도에서 입소문 난 새우젓을 미리 주문해 놓고, 고춧가루, 갓,깨, 매실액기스등 일 년 내내 고민하고 단단히 준비해 놓으신다. 엄마를 비롯한 할머니, 이모, 외숙모는 오직 김치에 의한, 김치를 위한, 김치를 위해서 그날만을 위해 살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작년까지 500 포기에 이르는 김장을 하였지만 할머니가 편찮으신 관계로 딱 절반만 하기로 했다.


"직계가족(할머니의 직계)만 모여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야호~! 배추 포기가 줄어들었으니 이번엔 빨리 끝낼 수 있겠다'라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베테랑 프로급 선수였던 이모할머니들이 모두 빠져버리자 일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회사에서 보면 중간급 관리자 정도 되는 외숙모와 이모가 간을 보면서 서로 미루는 눈치였다. 식구들의 후안이 두려우신 모양이었다. 만만한 말단 사원인 나와 올케를 부른다.


"어떠냐, 짜냐, 싱겁냐?"

-간은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매워요~


"이번 고춧가루가 맵다더니만."

-그래도 김치는 매워야 맛있죠.


"그렇지?"

"새우젓 더 넣을까? 아님 매실? 고춧가루?"


.....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김치공장 연구원처럼 짭조름하게 절여진 노란 배춧속에 시뻘건 무생채를 돌돌 말아먹으며 여러 번 맛을 음미했다. 일 년 동안 먹을 식구들의 귀한 식량이기에 섣불리 맛에 대한 평가를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서로에게 의지한 채 서로의 확증이 필요했다.

베테랑 이모할머니들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이랴..


이모할머니들이 계셨을 적엔 난 그저 보조, 시다바리였다. 열심히 김치 속을 문지르는 선수들에게 따뜻한 커피나 박카스를 대령하며

틈틈이 간식을 챙겨드렸다. 때가 되면 밥상 정도 차리는 역할이 내 모든 임무였다. 어른들이 모두 둘러앉아 하하 호호 웃고 떠들며 김치 속을 버무리고 있는 모습이 재밌어 보여 '아~ 나도 발만 동동거리지 않고 저렇게 빙~ 둘러앉아서 내 김치는 내가 버무리고 싶은데...' 속으로 생각하였다.

막상 이번 김장김치 때 하루 종일 김치를 버무리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나는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었구나...

앞으로 나는 김치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잘 먹겠어!!!


라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았고,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손가락은 잘 펴지지도 않고 발은 시리고 다리도 아프고... 아픈데 투성이었지만 나보다 이틀이나 먼저 와서 재료를 준비하신 이모와 외숙모, 엄마 앞에서 끽소리도 내지 못했다.


해가 저무니 빨리빨리 비비라는 할머니의 잔소리를 동력 삼아 허리 한번 피지 못하고 열심히, 비비고 또 비볐다.


김장김치 만드는 것이 힘든 일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정말 몰랐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에 김장이 추가되었다. 혼자서는 절대 못할 일, 누구 하나 빠져 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날 밤, 동생들과 나는 굳게 약속했다.


"매년 11월 셋째 주 토요일은 무조건 다른 데 약속 잡으면 안 돼~

나 하나 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고생한다!"




나는 매년 김장이 너무 힘들다며 투덜 되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김장체험만 했을 뿐이었다. 어린이집에서 김치를 버무려봤다는 딸보다 나는 김치에 대해서 무지했다. 밥상 위에 약방의 감초처럼 올라오는 군침흐르게 맛난 김치는 그냥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식구들의 한 명 한 명의 땀방울과 사랑이었음을.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만 받아먹었다. (죄송합니다;;;)


피곤이 역력히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정작 할머니는 김치를 잘 안 드시면서 번거롭고 고된 김장을 끝까지 고집하셨을까?


김치는 가족의 사랑이다.

김치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부터 맛깔난 밥상위에 오르기까지. 혼자서는 절대 이뤄낼 수 없는 큰 수고로움이다. 그 과정속에서 가족의 연대는 더욱 단단해지고 끈끈해진다.


김치의 영롱한 붉은빛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버무러져 우리 가족만의 빛깔로 재탄생 되길 바라셨을까?


나는 할머니의 속깊은 마음을 감히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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