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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탠바이 Nov 26. 2018

내게 힘이 되는 '현장'

현장에 답이 있다.

     

  내겐 직업병과도 같은 습관이 있다. 그중 하나가 운전할 때 라디오 실시간 교통정보가 나오면 소리를 키우고 유심히 듣는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경기도 언저리에 사는 사람이 서울 교통정보는 왜 궁금해하냐며 황당해한다. 실시간 교통정보엔 그날의 뉴스가 함축되어있다. 도심 대형집회는 없는지, 화재나 사건 사고가 터지진 않았는지, 폭설이나 폭우로 인해 통제되는 곳은 없는지 현장 정보를 빠르게 전달받을 수 있다. 이렇게 사건사고 정보에 갈급한 이유는 영상기자에게 현장의 중요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현장의 사전적 의미는 ① 사물이 현재 있는 곳, ② 일이 생긴 그 자리, ③ 일을 실제 진행하거나 작업하는 그곳이다. 방송보도는 기사 못지않게 ‘그림’, 즉 기사를 증거 하는 현장의 화면 영상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건사고 현장부터 경제, 산업, 문화, 스포츠 경기장까지 시청자가 보는 화면의 최전선에는 영상기자가 있다.     




  내가 겪은 첫 번째 현장은 14명의 안타까운 사망자가 발생한 ‘인천대교 버스 추락 사고’이다. 대학생 명예 카메라 기자 신분으로 현장 실습 중이었지만 아직도 그날의 일들은 생생하다. 인천대교 요금소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 버스가 추락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영상기자 선배와 함께 현장으로 출발했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버스는 10여 미터 밑으로 뒤집힌 채 추락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납작해져 있었고 사상자들의 피들이 여기저기 고여 있었다. 영상기자 선배는 현장 상황을 빠르게 촬영하였고 곧바로 근처 송출 포인트인 인천공항 기자실로 이동해 1보 영상을 송출했다. 내가 찍은 그림은 아니지만 함께 동행 한 영상기자의 그림이 뉴스에 나가는 걸 확인하며 희열을 느꼈다. 언론사 입사 후 어깨에 ENG 카메라를 메고 있는 지금도 대형 사건이 발생해 사건 현장에 달려갈 때면 날 선 긴장감을 즐기곤 한다. ‘인천대교 버스 추락 사고’ 연속 보도는 사고 원인 분석을 통해 2차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삼각대와 유도 조명봉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현장에 답이 있다. 인기 드라마 미생에서도 의미심장하게 쓰인 말이다. 취재 나갈 때 전체 퍼즐 중 극히 일부분만 주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장 정보도 자세하지 않아 속보가 뜨고 무작정 출발하는 경우도 많다. 구체적인 장소와 필요 정보는 소방서, 치안센터, 주민센터에 문의해가며 구체화해 나간다. 신도시 아파트 공사현장 화재로 정확한 주소가 없을 때 큰 연기를 쫓아갔던 경우도 있다. 사건사고의 경우 골든타임이 존재하기에 최대한 신속하게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목격자의 증언과 남겨진 잔해는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상기자는 발로 뛰며 영상을 기록해 낸다.     


기자님이 개통시키는 겁니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강원도 지역 최초의 경강선 KTX 시운전이 있었다. 취재 동선을 감안해 풀(Pool·공동취재)로 내가 기관실에 타게 됐다. KTX는 많이 타 봤지만 기관실에서 기장이 운전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영상기자의 현장은 새로운 곳이 많다. 또한 일반인의 신분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접근한다는 매력이 있다. 영상기자가 가는 현장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통계를 내 보니 한 해 평균 세 번 정도의 해외 출장 기회가 있었다. 그중 북한 이산가족상봉 취재로 다녀온 금강산 방문은 기억에 많이 남는다.      




  희망찬 소식을 취재하면 힘과 보람을 얻는다. 집값이 떨어진다며 장애인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가운데 장애인 특수학교 기획취재를 맡게 됐다. 국내 최초 시각장애 영·유아만을 위한 특수학교인 효정 학교 취재 때 일이다. 교실에서 밝고 활기찬 생일 축하 노래가 들린다. 전교생 어린이 스물여섯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번 달 생일인 아이들 세명이 앞에 나와 축하를 받고 있다. 모든 아이들이 앞을 볼 수 없는 장애를 갖고 있는데 생일 주인공 아이 중 쌍둥이가 있다.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고 아이들 한 명씩 앞에 나와 주인공 친구들을 포옹해준다. 환한 얼굴로 화답한다. 순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딸의 모습이 떠오르고 카메라를 찍고 있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천사같이 예쁜 아이들인데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너무나도 험난해 보여 가슴이 먹먹했다. 만 3세 이하가 다닐 수 있는 시각장애 학교가 건립된다는 소식에 한 부모는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하고 제주에서 이사 왔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에게 영유아 시기는 성장과 발달에 중요시기라서 일반학교에서 받을 수 없는 시각장애 영유아 조기 교육은 꼭 필요하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뿌듯함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영상기자 정위치는 ‘현장’이다.

  둘째 지훈이가 태어나고 한 달이 지났다. 예정일보다 이틀 늦게 태어나 출산 소식은 스위스 출장 중 들을 수 있었다. 출산의 고통과 불안을 혼자서 감당한 아내와 태어나자마자 아빠가 안아주지 못해 아이에게 미안하다. 훗날 아이가 커서 아빠가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자랑스러워하리라 위안 삼는다. 오늘부터 새로운 현장으로 출장에 나선다. 이른 새벽 자고 있는 아이들 볼에 뽀뽀하고 집을 나서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현장이 있기에 신발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또 그렇게 현장에 나선다. 영상기자 정위치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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