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공원을 걸으니 나뭇잎의 살랑거림이 눈에 들어온다.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산책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흠! 그래! 바로 이것이야! 살랑거리는 바람이 그리웠나 보다. 보이지는 않지만 풀과 꽃들, 새의 깃털, 그리고 내 머리카락에 바람이 느껴진다. 바람은 그렇게 자유자재로 높고 낮은 곳을 아랑곳하지 않고 살랑거리며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고개를 드니 하늘의 구름이 보인다. 구름 사이로 가을 햇살이 찬란하다. 풀과 꽃들도 동의하는 듯 살랑거린다.
혼자만의 공간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자유를 만끽해 본다. 나무 위에서 새들이 공감하듯 지저귄다. 어디선가 나타난 길고양이가 풀밭에서 그것을 인제 알았냐는 듯 여유롭게 쳐다보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산책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인다. 꽃과 나비 그리고 벌이 보인다. 비록 짧은 시간에 인지되었지만 수많은 존재들이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많은 것들이 함께 있었다. 혼자도 좋지만 함께 이어서 더 좋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하는 산책이었지만 많은 것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중에 거리두기를 제일 잘하는 길고양이들도 반갑다. 경계를 풀지 않는 그들을 보며 가끔은 아쉽기도 하지만 그들의 입장이 이해되기도 한다. 수많은 생명 중에 인간은 자신만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세상을 독점하며 살아가고 있다.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지 정말 그러한지는 모르겠다. 자기 자신에게서 고개를 들어 멀리 내어다 보면 수많은 생명들이 있고 그들이 우리를 경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그들을 경계하듯 긴장을 풀지 않는 그들을 보며 우리가 침입자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만에 빠져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 인간에게 ‘코로나 19’는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요즈음은 많은 이들이 애완동물을 곁에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들에 관심이 생긴다. 그런 관심이 세상의 다양성을 보게 해 준다. 세상은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는 인지가 온다. 그렇게 세상을 마음대로 마구 사용하면 안 되는 거였구나. 당장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활용하고 나머지는 남겨 두어야 하는구나. 예전 감나무에 감을 수확하고 까치들의 먹이로 감을 몇 개 남겨놓는 선조들의 배려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탕진하면 안 되는 것이었구나.
공존하고 있을 다른 생명들을 배려해야 한다. 보이는 배려보다는 보이지 않는 배려가 더 중요하다. 거리두기처럼 남겨두기 아니면 취할 것만 취하는 적절함이 필요하였음을 깨닫게 된다.
산책하다 만난 수많은 생명들 까치, 지렁이, 개미, 고양이, 개, 나비, 사마귀 등등 모두가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세상은 혼자만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들과 더불어 가기에 풍성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아주 작은 배려들 가령 길가다가 마주친 고양이를 마음대로 쓰다듬으려 하지 말고 그들이 두는 거리를 존중하고 떨어져서 그들이 산책하도록 놔두는 것이다. 생색내기 배려보다 거리두기의 존중이 진정한 배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