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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 Nov 01. 2021

모르쇠

인정하다

축축 처지는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텨냈다. 다음날 출근을 생각하지 않으려 드라마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피곤해지고 지쳐 잠들기를 바랐다. 잠을 잔 것인지 꿈을 꾼 것인지 알 수가 없게 자다 깨다 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출근하는 것을 아는 것인지 일어날 시간을 아는 것인지 반려동물인 고양이가 네발을 모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축 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집사를 응시하고 있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간신히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를 바라며 한발 한발 내딛는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핸드폰에 집중해 본다. 거기서 본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억지로 씩씩한 척 버티는 것이 우울증의 화근'이라는 설명이 머릿속에 쏘옥 들어온다. 그 순간 간신히 버티던 저항의 힘이 쑤욱 빠져나가 버린다. 힘이 빠지니 온몸이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손발이 차갑고 춥다.


'그랬구나! 우울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쇠하고 있었구나! 피하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냉기가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빨리 가서 따끈한 차 한 잔 그득하게 마시고 싶다. 차가워지는 몸을 데피고 싶다. 너무 춥다. 자신을 모르쇠 한 원망의 냉기를 따뜻하게 녹여주고 싶다. 기운이 없다. 그래도 모르쇠보다는 나은 기분이 저 밑 어딘가에서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


모두들 이렇게 시작하는 것일까.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시작되는 것인가 보다. 분명 죽고 싶지는 않은 데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 암담했다. 그런데 그 기분을 인정하니 숨통이 조금 트이며 자연스레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든 것들이 아무리 열심히 보아도 자신과 상관없는 듯 흘러가더니 어느 사이 내가 그 모든 것들에 합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는데 그냥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니 저절로 살아가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나는 자신이 신기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려고 그렇게 발버둥 칠 때는 수렁 속에 점점 더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버티려는 힘을 빼자 갑자기 밑에서 잡아당기던 강력한 마력이 풀리면서 발이 자유로워졌다. 숨을 쉴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쑤욱 수렁에서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을 것처럼 편해졌다.


다시 수렁 속에 있는 무언가에게 잡히기 전에 도망치고 싶어 힘을 주는 자신이 느껴졌다. 막무가내로 힘을 주던 처음과는 다르게 자신을 보살피며 조심스럽게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렇게 하는 거야. 아무리 답답하고 느리더라도 그렇게 지혜롭게 슬기롭게 나아가는 거야. 자신을 알고 자신과 같이 있으니 공허가 사라지고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 힘든 자신을 내팽개치고 도망치고 싶었던 처음과는 달리 힘든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으니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게 자신과 함께 하는 거야. 그래야 벗어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 사는 길임을 알겠다. 그냥 자신으로 사는 것이 사는 것이구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어서 우울했나 보다.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안개가 걷히고 친구처럼 내 옆에 나란히 앉아 있다. 마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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