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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 금지 공간

쉬기 위한 공간

by 오순 Mar 15. 2025

세 사람만 모여도 적과 동지로 분류하는 것이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의 패턴이다.


소수 인원으로 이루어진 가족 같은 작은 회사라도 그 안에서 정치가 발생한다.

그 안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에게서 자신과 맞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내 그것만 확대해 판단하고 적대시하는 것이다.


입사한 초기에는 낯설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바빠서 불만을 찾아낼 겨를이 없다. 자신을 그 조직에 맞춰서 빨리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적응이 되었다 싶으면 자기를 드러내고 영역을 확보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모든 것에 거의 예스를 하던 것에서 벗어나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상대의 이기주의를 차단하고 자신의 이기주의를 시도한다. 시행착오와 분란이 발생하기 시작하고 오해와 분노가 발생하면서 험담의 정치가 시작된다.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기도 하지만 그 회사를 떠나려 작정하지 않은 이상 웬만해선 직접적 공격은 하지 않고 간접적인 공격을 시작한다.


누군가를 내 편으로 만들어 상대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기 위한 작전이 험담이다. 의도치 않게 적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편에 휩쓸려 공적을 공격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번 그렇게 되면 나도 공공의 적이 되고 뒷담화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찜찜하지만 감내해야 한다. 


뒷담화의 대상이 되기 싫고 그 배척당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 같이 가기 싫어도 화장실까지 같아 가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될 수 있으면 절대 혼자 있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내 편의 순기능보다 불신의 역기능이 훨씬 강하다. 언제 한편에서 공적이 될지 불안하게 된다.


조직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뒷담화를 집안에까지 끌고 오는 경우 그때부터 회사와 집은 분리되지 못하여 뒤죽박죽 집에서도 쉴 수 없게 된다. 뒷담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집이나 휴가인데 그 뒷담화를 끊어내지 못하고 그곳에 끌어들이는 순간 혼란 속에 빠지고 잠시도 쉬지 못해 번아웃이 된다.


신혼 초 유일한 내 편이라 여긴 남편에게 회사 내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충만한 위로를 받았다. 그것이 너무 좋아 거의 매일 끊임없이 집에 오면 남편에게 밖에서의 일들을 쏟아부었다. 점점 남편의 위로가 식어가고 대충대충 듣더니 나중에는 짜증을 냈다. 


네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둥 되려 나의 단점들을 들추어내며 나를 고치려 들었다. 위로만 받고 싶었는데 나를 아주 미약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서운하다며 남편과 대판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남편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집에 와서 편히 쉬고 싶은데 집이 집이 아니고 회사 부속품이 되어 끊임없이 일과의 연장선을 들어주어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힘든 것은 그 자리에 놔두고 내일을 기다려도 된다. 나의 회사와 전혀 관련 없는 남편에게 하소연해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소중한 우리 공간을 내가 쓰레기통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미루어 누르고 일상화된 회사일을 꺼내지 않고 끊어내려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렇게 한두 달 지나니 저절로 회사일을 끌어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집안에서 우리는 쉴 수가 있었다. 특별히 위로나 이해받으려 애쓸 필요도 없어 행복하다.


뒷담화는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된 경우 거기서 끝내야 한다. 이해시키거나 이해하기 위해 연장하고 설명하려 하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 뒷담화를 쫓아다니게 된다. 뒷담화는 해결이 안 되는 소문이고 책임 없는 말일뿐이다. 그저 내버려 두면 시간이 해결한다. 누군가에게서 들어온 뒷담화는 가만히 놔두면 시간 속에 흘러가 사라지는 백해무익한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사회생활은 필수이고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뒷담화는 안 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하게 될 경우 금지 공간을 정하면 어느 정도 해악을 막을 수 있다.

금지 공간에 뒷담화의 침입을 막는 것이 처음엔 힘들지만 한번 막아지면 그 공간에서만은 뒷담화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을 잃지 않게 되어 뒷담화도 점점 하지 않게 된다.


아무리 하소연하고 이해받고 싶어도 자기만 옳고 상대는 나쁘다는 평가는 제대로 된 해결이 아니다. 그냥 이해받으려 남에게 의존하고 시간을 뺏기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놔두고 있으면 마음이 스스로 회복을 하고 있는 게 보인다. 단지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면 된다.


세상에서 기다린다는 것이 제일 힘든 것 같다.

요즘같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빨리 가기도 바쁜 데 가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은 엄청난 손해인 것 같고 잘못된 것 같아 견디기 어렵다.


계산은 계산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하는 계산은 계산이라 할 수 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가지고 측정하는 것은 공정성을 잃게 된다. 자신이 뭘 모르는지 모르지만 다 아는 것은 아니기에 그럴 때는 기다려야 한다. 뒤늦게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다림이다.


성급함이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만 실수를 만드는 주원인이 될 수 있다. 침착한 판단을 하려면 성급함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걸 알면서도 매번 실수한다. 뒤늦게 성급했다는 것을 실수에서 배운다.


부정적인 뒷담화 금지 공간은 자신의 자유를 위한 공간이다.

그 금지 공간 구역으로 제일 좋은 곳이 집인 것 같다.

지인들과 카페에서 뒷담화로 몇 시간을 해대고도 좀 모자라 아쉽기는 하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집으로 쉬러 들어간다.


뒷담화는 아마도 문제 해결 욕구가 아니라 불만 욕구  털어내고자 하는 감정 쓰레기가 아닐까 싶다. 

쓰레기는 쓰레기장에 버리고 오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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