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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문 두드림

두려움

by 오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를 자아내고 있다. 며칠째 내 것이 아닌 내 집으로 온 택배를 뜯은 죄로 택배사에 반품 처리하는데 잘되지 않는다. 수취인이나 발송인도 없고 연락처도 없고 운송장 번호는 입력해도 물품 회사에 직접 하라는 문자가 뜨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어느 회사인지도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내버려 뒀다.


어젯밤에는 갑자기 누군가 말없이 문을 두드려 대서 엄청 놀랐다.

말을 해야 대답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인데 두드려대기만 한다.

대답을 잘못하면 걸려들어 꼼짝없이 당할 것 같은 두려움에 숨을 죽이면서 조용히 있었다.


나보다 먼저 발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반려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서 긴장으로 움츠리고 있다. 그러다 견디기 힘든지 책장으로 올라가 숨으려고 뛰어오르다 켜켜이 쌓아놓은 책을 건드려 맨 위에 있던 노트가 떨어지면서 와당탕 소리가 크게 났다. 그 소리에 더 놀라 우다다다 도망치고 있다.


에효~ 들켰나 보다 싶어 그냥 그대로 앉아 귀 기울이고 있는데 조용하다. 휴~ 다행이다 갔나 보다 안심하고 있는데 십여 분 뒤 다시 왔는지 또 문을 두드려댄다. 사람이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문만 두드리니 범죄현장에 있는 것처럼 엄청 무섭다. 요즘은 이상한 사람이 많아서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데 사람이 더 무섭다. 갈 때까지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 발소리만 나고 사람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마 택배 때문인 것 같은데 겉봉을 뜯어서 잘못 내놓으면 뒤집어쓰고 문제가 발생할 것 같아 내놓지도 못하고 접수도 안되고 진퇴양난이다. 이름이나 연락처라도 있으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더 상상 그 이상의 불상사를 예측하기 어려워 그냥 생까고 버티는 중이다. 귀중품도 아니고 일만 원 정도의 물품이니 알아서 다시 사겠지 그리고 다시는 주소를 잘못 쓰지는 않겠거니 빌어본다.


훤한 낮 시간은 안심도 되고 의심도 안 생기고 얼마나 자기 물건을 찾고 싶을까 하는 마음에 당장 문밖 계단에 내놓고 싶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정상인이 아니면 담에 상습적으로 우리 집을 이용하면 어쩌나 싶어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밤이 되면 더 무서워진다. 범죄자와 얽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두려움이 어둠만큼 비정상적으로 점점 진해지고 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서 주위를 아래위의 계단까지 올려다보고 둘러보게 된다. 죄지은 것은 아닌데 죄인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무작위로 모른다는 것에 공포스러워질 줄은 몰랐다. 다시는 다시는 내 것인지 확인되지 않은 것은 뜯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결심했다. 그때는 우리 집 주소라서 안경이 없어서 이름을 확인하지 못하고 내 것인 줄 알고 무심히 뜯었던 것이다. 모르고 뜯었어도 죄는 죄이다. 이름이 없었다는 것이 더욱더 나를 힘든 상황에 처하게 만든 것이다.


누구인지 모르나 소리도 내지 않고 쪽지도 남기지 않고 연락처도 없고 택배사도 다른 곳으로 떠넘기고 여러 가지 이유로 무서워서 물품을 건네지 못해 미안하외다. 그저 그쪽은 주소를 잘못 적은 것이 죄이고 기타 아무 연고 기록이 없으니 무엇에 이용당할지 염려가 너무 커서 생깐 내 잘못도 있소. 귀중품이고 비싼 것이면 경찰에라도 넘기고 싶었으나 밥 한 끼 누군가한테 기부했다 여기고 그냥 넘어갑시다. 속으로 중얼거리듯 빌었다.


아주 작은 잘못을 시작으로 그것이 시정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니 걷잡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이렇게 무지하고 안일할 수 있나 싶다. 세상을 너무 무서워해도 살 수 없고 너무 안일하게 보아도 돌부리에 넘어져 사고를 당하는구나 싶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일지 알 수는 없지만 당황스러울 때 숨 한번 크게 내쉬고 천천히 살펴보고 행동하는 것이 실수를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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