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따뜻한 봄이 왔는데 갑자기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따뜻한 날이 계속되니 모두들 두터운 겨울옷들을 정리하고 가벼운 봄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모두들 봄이면 꽃샘추위를 예상하고 있었고 일기예보에서도 대설주의보까지 내렸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쉬이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옷장에 정리한 겨울 패딩을 꺼내기를 망설인다. 겨울같이 춥기야 하겠어 하면서 옷 하나를 더 입거나 스카프를 준비한다.
겨울바람은 아니지만 바람도 매섭고 햇빛이 있어도 구름이 가리고 바람이 섞여 따스하지 않다. 겨울과는 다른 추위가 살 속을 파고든다. 비가 오더니 온도가 영하로 떨어져 눈까지 내리니 당연하지 않은 봄눈이 되었다. 하나둘 싹을 내밀던 꽃나무들이 이 추위에 버틸 수 있을까.
땅속에 움츠리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없던 땅 위에 따스한 봄 햇빛이 비치자 쏘옥쏘옥 싹을 드러내는 게 신비롭다. 그런데 거침없는 추위가 몰아쳐 싹들이 얼어붙을 것 같다. 이불이라도 있으면 덮어주고 싶다.
사람처럼 날씨도 이리 시샘이 많구나 싶은 것이 어쩌면 시샘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필요한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조화일까.
시샘에 마주한 새싹처럼 상처를 입고 회복하거나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꽃샘추위는 밀려나 봄은 오게 되어 있다.
겨울맞이는 아니지만 꽃샘추위는 맞이해야겠기에 다시 두터운 패딩과 털목도리를 목에 칭칭 감았다. 아무리 얇은 옷을 겹 입어도 막아지지 않던 추위가 겨울옷 하나로 막아진다. 모든 것은 사용 용도가 따로 정해져 있나 보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꽃샘추위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샘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것 같다. 불청객으로 여전하네 할 뿐 어서 가라고 밀어내고 있다. 며칠 머물다 가는 꽃샘추위이지만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찾아오는 꽃샘추위는 봄여름 가을겨울 사계절처럼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일까 꼽사리 낀 불청객일까.
아마추어는 불청객일까 전문가로 가는 중일까.
노년은 삶일까 죽음일까 그 중간 어디쯤 있는 회색 지대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일까.
나는 겨울인가 봄인가 꽃샘추위인가.
특별히 오라는 곳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머물고 싶은 것은 아닌데 머물 수밖에 없는 나머지의 삶 속에 있는 것 같다.
모두들 어딘가로 바쁘게 오고 간다. 확실한 목표가 있는 것처럼 앞도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간다. 보지도 듣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한 곳으로 가고 있다. 거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눈이 아니라 발이 주도하는 대로 따라가고 있다. 저러다 누군가 시샘이라도 발동하여 엎어지면 도미노 게임에서처럼 모두가 엎어져 일어설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며칠 동안의 따스한 봄 날씨에 일찌감치 싹을 틔웠는데 꽃샘추위로 얼어버리면 그 꽃은 어떻게 다시 싹을 틔울 수 있을까.
꽃샘추위를 예상하고 꾹 참고 있다가 추위가 지난 다음에 싹을 틔우는 지능이 식물에게 있을까. 아니면 꽃샘추위를 예상하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보호하여 싹을 틔워서 며칠간의 추위에 버텨내는 자연의 지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피할 수 없는 것들이라면 마주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맞다.
사람들의 시샘을 피할 수는 없다. 시샘은 당할 때마다 아프지만 그 아픔을 회복하고 일어선 경험들이 디딤돌이 되어 일어서는데 힘이 되어준다.
새싹들도 추위를 딛고 일어서서 꽃을 피워내리라.
꽃샘추위로 움츠려든 날씨에 엊그제의 평화로웠던 봄햇살이 까마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