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입안이 헐어서 반찬 먹기가 힘든 것 같아서 만들었어.”
점심 식사 때 취나물이 맛있다며 잘 먹은 나를 보고 남편이 한 말이다.
마을 뒷산을 내려오는 길에 구르는 작은 돌을 밟았다가 발목을 다친 지 2주일째이다. 수술 후 입이 부르트고, 입안이 헐어서 밥 먹기가 힘들다. 영양은 보충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밥맛이 없어도 억지로 먹고 있다. 어제 아침은 영 입맛이 없었지만, 약을 먹기 위해 떡 조금과 지역에서 난 사과 반 조각, 시들어가는 귤 두 개로 해결했다.
남편이 12시 반에 점심 먹자고 하더니 한 시간 전쯤부터 주방 쪽에서 부지런히 뭔가를 만든다. 시간이 되어 불러서 갔더니 새 반찬들이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은 뒤 냉동실 제일 위 칸에 넣어 둔 채 먹지 않았던 작은 멸치가 맛난 반찬으로 변신해서 올라와 있다. 맛있다. 남편은 ‘정성’을 넣었다고 한다. 거기에 마늘을 내가 10여 년 전 영국에서 사 온 마늘 자르는 판에 넣어 잘라 넣고 설탕 대신 매실을 넣고 볶았다고 한다. 새파란 봄동과 고추 세 개가 놓여 있다. 두부와 버섯을 넣은 된장국은 지금까지 먹어 본 맛보다 훨씬 맛난 맛과 향이 입안에 퍼진다.
남편은 지난 연말에 은퇴 후, 산책하며 지난 삶을 정리하는 글을 쓰고 있다. 그런 남편에게 글을 쓰는 데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음식 만드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냥 머리도 식힐 겸 하는 거니까 괜찮아.”라고 한다.
식사 후 날씨가 좋다며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다행히 주방 가까이에 있는 큰 창문을 열면 나무 마루가 깔린 밖으로 연결된다. 그동안 상처 부위를 생각해 마시고 싶은 커피를 참고 있다. 햇볕이 잘 내리쬐는 자리에 앉자 남편이 커피를 내밀며 입맛만 다시라고 한다. 아주 조금 입만 댔다. 오랜만에 맛본 커피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마당 잔디밭에 아랫집 누렁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흔들고 서 있다. 남편이 멸치를 가져다주었다. 된장국에 있는 멸치와 그냥 멸치를 주었더니 된장 냄새 때문인지 된장국에 있던 멸치는 먹지 않는다. 햄도 가져다준다. 누렁이는 잘도 받아먹는다. 잘 먹는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고 좋은 일이다.
몸이 불편한 뒤로 동생네로 가신 구순 노모가 생각난다. 나랑 같이 있을 때 노모는 입맛이 없다며 국에 밥을 말아 드시면서 물김치 국물만 드시기도 했다. 내가 이것저것 드시라고 해도 손을 내저으셨다. 내가 입맛이 없을 때 남편이 이것저것 먹어보라 했을 때 손을 내저었던 노모가 이해됐다. 남편은 정성껏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내 입맛을 살렸다. 노모가 다시 우리 집에 오시면 내가 할 일인 듯하다. 내가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들 게 아니고, 노모가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하나 물어 정성껏 만들 일이다. 음식을 맛나게 잘 먹는 것은 큰 복이다. 노모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복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