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년지기와 다녀온 목포 여행

by 최순자

<사십년지기와 다녀온 목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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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회장이라는 중책을 내려놓은 이튿날인

지난 2월 19일에 2박 3일 일정으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목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학회 2차까지 마무리 후 서울 시내 중심에서

친구가 마련한 숙소에서 같이 자고 출발했다.


바다 건너 먼 곳에 있는

사십년지기 대학 친구가 제안한 여행과 여행지였다.

내가 60갑자를 지냈다는 의미를 부여한 여행이었다.

숙소는 한 때 뉴스에 오르내렸던 창성장으로,

따뜻하고 분위기 있다는 화조방으로 했다.


호남선 종착역에서 내리자마자부터 맛 여행이 시작됐다.

갈치구이, 떡갈비, 복어국, 대구탕, 조기탕과 민어구이, 홍어 등과

12첩 반상이 기본인 맛깔스런 반찬들을 맛봤다.


해산시장, 바닷가, 목포진, 김대중 소년 공부방은

숙소 가까이 있어 천천히 둘러봤다.

목포 상고를 다니던 김대중은 고향 하의도에서 나와

여관을 하던 부모와 같이 목포에서 지냈다.

물 지게로 언덕 위 여관집에 물을 길렀던 일화도 있었다.

귀경 날 오전 목포시에서 운영하는 시티투어로 둘러본,

목포 오거리, 동본원사, 1987영화 촬영지 연희네 슈퍼, 서산동 시화골목, 보리 마당,

유달산 노적봉, 일본 구 영사관,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갓바위 등도 볼거리였다.


목포 오거리는 상권과 한국 여인들을 지킨 목표의 주먹들 얘기가 서려있었고,

동본원사는 낙뢰가 떨어진 곳을 길지로 보고

일본 사찰로 사람이 모이게 해서 그들이 얘기하는 것을

듣는 장소로 활용했다고 한다.

이후 교회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연희네 슈퍼는 단지 영화 촬영지를 벗어나 당시의

시대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노적봉은 이순신 장군이 바위 위에 볏가리를 쌓게 하여

왜군이 보고 식량이 많은 것은 병사가 많다는 것을

보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지혜를 발휘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일본 구 영사관은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1900년에 세워져 120년을 넘은 건물이다.

일본 영사관, 광복 후 목포시청, 시립도서관, 문화원 등으로 활용했다.

뒤쪽에 일본이 미군 폭격을 피하기 위해 파놓은 굴은

그 굴을 파기 위해 고생한 선조들의 고초를 생각하게 한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본 감옥에서 엽서에 쓴 편지와

가훈 중 무엇이 되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던 내용이 인상 깊었다.

갓바위는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할 정도의 효심 깊은 자식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한 청년을 사랑한 세 여인이 학이 되었다가,

그 학이 떨어져 죽어 삼학도가 되었다는 전설은 애절하다.


무엇보다 오랜 벗과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뒹굴뒹굴하며

책(2023 이상문학상 수상집 외)을 읽고, 음악도 듣고,

두런두런 나눈 정과 남도다운 맛이 기억으로 남는 여행이었다.

천천히 음미하며 여생을 걸어갈 것도 생각했다.

목포항 건너편 내고향 영암 월출산이 손짓하기도 했다.


* 여행 얘기를 풀어서 친구가 보내온 글이다.

순자와 경자의 사는 이야기--목포여행 (2023년 2월)


2월 19일부터 21일까지 순자와 함께한 목포 여행은 지난 역사의 공간으로 이동한 듯했다. 아침 9시 46분에 용산을 출발한 기차는 목포에 오후 1시 29분에 도착했다. 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갈치구이를 시켰더니 매운 된장국과 12가지 밑반찬이 따라 나왔다. 갈치구이가 작긴 했지만 1인당 3개나 나와서 속으로 놀랐다. (서울이라면 한 개나 두 개 정도였을 것이다). 양이 좀 많았지만 맛있게 다 먹었다. 특히 갈치젓갈이 맛깔났다.

역에서 물어물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숙소인 창성장까지 걸어갔다. 우연이겠지만 창성장에서 알려준 현관문 비밀번호가 내 생일과 같아서 웃음이 났다. 일제시대 때 요정이었다가 그후에도 여관으로 사용됐던 곳을 리모델링하고 이름도 옛이름 그대로 쓴다고 했다. 우리가 묵은 방은 경대가 자개로 된 것이라 왠지 그리움이 묻어나는 듯한 방이었다.


짐을 놓고 좀 쉬다가 산책을 나갔다. 손서영갤러리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항구 쪽을 삥돌아 여기저기 구경을 했다. 목포진을 찾아서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가는 길에 김대중 소년 공부방이 있었다. 부모님이 하의도에서 객주를 하다가 목포에 나와 여관을 했던 자리라고 했다. 당시 수돗물이 올라오지 않아 김대중 소년이 물을 길어다 날랐다는 애피소드가 적혀 있었다. 일제시대 주택이나 건물도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요즘은 ‘근대문화유산’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저녁으로 떡갈비탕을 먹었다. 갈비살을 다져서 구워 먹은 떡갈비를 다시 갈빗대에 붙여서 끓여낸 음식인데 처음 먹어본 음식으로 맛있었다.


둘째날은 뜨끈뜨근한 온돌방에서 음악을 듣고 책도 읽고 빈둥빈둥거리며 지냈다. 점심으로 꼭 먹고 싶었던 복어탕을 먹었다. 가격이 많이 오른 듯 1인분에 22000원이나 했는데 튀김도 맛있고 식도락가를 만족시키는 맛이었다. 오후에 나가서 순자가 홍어를 사서 택배로 보냈는데 아주머니가 우리도 먹어보라며 그 자리에서 한 접시를 썰어 주셨다. 나는 명칭이 낯선 ‘식육점’에 들어가 소고기를 좀 사서 동생집에 보냈다. 그러고 나니 숙제를 다 마친 학생처럼 뿌듯했다. 저녁에는 근대문화유산 길가에 있는 어문당이라는 식당에 들어가 대구탕을 먹었는데 병어구이가 따라 나왔다. 담백하고 정갈한 맛이었다. 밤에는 얻어온 홍어랑 소주를 한잔 기울였다. 우리가 20대에 만나 30대, 40대, 50대를 지나 이제 60고개를 함께 넘는구나. 남아 있는 날들도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그런 생각을 하며 소주를 넘겼다.


마지막 날은 목포역에서 9시반에 출발하는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목포 오거리, 동본원사, 연희네 슈퍼(영화1987 촬영지), 보리마당, 유달산 노적봉, 일본 구영사관을 둘러보고 점심으로 조기매운탕정식을 먹고, 갓바위와 김대중노벨평화관, 자연사박물관을 도는 코스였다. 초로의 할아버지가 해설사로 재미있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임진왜란 때 이야기부터 개항과 간척, 일제시대의 남촌과 북촌, 목포 오거리의 깡패들 이야기까지. 개인적으로는 연희네 슈퍼에서 보리마당으로 올라가는, 유달산 산자락에 다닥다닥 붙은 어촌마을에서 바라본 푸르른 목포바다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100년의 역사를 뒤돌아보게 한, 2박3일의 목포를 뒤로 한 채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것이 저녁 6시 반이었다. 맛있는 걸 먹고 맛있다고 말하고 종알종알 수다를 떨며 거닐었던 시간들이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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