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산 최순자. 은퇴자에게 배우는 섬세한 배려와 삶의 지혜.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공명재학당. 2024. 3. 1.
“내일 11시 30분경 저희 차로 가요.”
다른 달보다 짧게 느껴지는 2월 마지막 날 공명재 옆에 사는 분에게 보낸 문자이다. 월초에 그 댁과 우리네 부부 넷이 통영, 거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계획을 그분들이 짰다. 멋진 자연 풍광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즐겁게 먹었던 여행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여행 뒤풀이로 식사 한 번 살게요.”라고 했었다.
여행 중 숙소는 교원공제회 제휴 호텔로 바다가 보이는 넓은 가성비가 좋은 곳이었다. 아침 식사는 2만 원으로 아침을 잘 먹지 않는 나에게는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해외여행 포함 그렇게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나온 곳은 처음이었다. 점심은 돌아다니다 우리가 샀고, 저녁은 그분들이 준비했다. 주유는 오고 갈 때 교대로 했다.
날짜가 서로 맞지 않아 연락을 주고받다가 세 번째에야 잡았다. 같이 먹은 적이 있는 막국수 집으로 갔다. 따뜻한 국수, 비빔국수, 만두, 메밀전, 막걸리를 주문했다. 건배를 겸한 막걸리 한 잔에 내 얼굴은 발그레해졌다. 식사 후 지역에서 평생을 교직에 몸담았던 분들인지라, “가는 길에 제자가 운영하는 커피숍이 있다.”라며 안내했다. 고남산 정경이 눈 앞에 펼쳐진 한적한 곳에 사과 농장도 하는 곳이었다. 커피와 감자튀김을 주문하셨다.
마을 이야기를 나누다 남편 캐나다 유학 이야기가 나왔다.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NGO, 인권 관련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정년 퇴직 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 차원에서 한국인 비자 발급 일시 정지로 한 달 정도 늦게 출국할 예정이다. 이야기 도중 호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남편에게 건네시며 “잘 다녀와요.”라고 한다. 남편은 “뭐 이런 것을 주세요? 아직 비자도 안 나왔는데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웃으며 “안 가면 다시 주세요.”라고 했고 “네, 안 가면 다시 드릴게요.”라며 겸연쩍어하며 받았다.
공명재로 돌아온 후 봉투 내용이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나중에 식사하다 “교장 선생님이 주신 봉투에 0백 달러가 들어있더라고.”라고 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0원 정도가 되겠네.”라고 답했다. 따뜻한 마음과 달러를 준비하신 섬세한 배려가 느껴졌다. 이틀 후 두 분은 3박 4일 일정으로 구례 산수유 구경 가신단다. 일흔 전후로 더 늙기 전 아름다운 곳, 예쁜 것들을 눈에 넣어두고자 하신다. 살아가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