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이 연기됐다고요? 2020년 2월 교육부에서 발표한 ‘개학 연기’라는 네 글자는 우리를 그야말로 팬데믹에 빠지게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개학 연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을까요? 매년 3월이 되면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입학하고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왔었고 그것은 너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이 지구상의 많은 나라는 코로나-19라는 어마 무시한 감염병으로 인해 겪어 보지 못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당연히 예외가 될 수는 없었지요.
코로나-19가 발생한 초기만 하더라도 한두 달 정도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 기대를 했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의료진과 국민 스스로에 대한 저력을 믿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2월의 어느 날 코로나-19는 보란 듯이 급속히 퍼져 나갔고 교육부는 급기야 개학을 연기한다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 발표를 듣고 많이들 놀라며 믿기지 않는다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었고, 초등학교에 간다는 기대감으로 새로운 가방을 사 둔 아이들은 언제 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갈 수 있을지 안타까운 상황이 되고야 만 것이지요. 그 가방, 아직 몇 번 메 보지 못했을 겁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5월 어느 시점부터 학년별, 학교급별로 순차적으로 유치원과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정말 끈질기고 막강한 힘을 지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좀 괜찮아지나 싶으면 여기저기에서 순식간에 퍼지기를 벌써 몇 차례나 반복하고 있으니 누군가가 선물했을 그 가방은 아직 새것.
한 학급의 전체 친구들이 선생님과 수업을 해 본 적도 거의 없을 겁니다. 분산배치와 거리 두기를 위해 격일 또는 격주로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어려서 아직은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혼밥’을 생활화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친구들과도 마음껏 얘기하는 것도, 선생님이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도 쉽게 허락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유치원 아이들도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것이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닌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돌봄에 갈 수 없거나 가지 않는 아이들은 가정에 머무르며 기관에서 제공해 주는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와 어떤 놀이를 할지 인터넷을 폭풍 검색하고, 유치원에서 안내받은 놀이도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이도 오래갈 수는 없었습니다. 한참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의 끼니를 챙기기도 쉽지 않을 텐데 놀아주기까지 해야 한다고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아이가 한 명이면 한 명이라서, 두 명이면 두 명이라서 힘들지요. 이쯤 되면 유치원에 가도 걱정, 안 가도 걱정인 상황이 맞습니다.
물어보고 싶습니다. 걱정돼서 유치원에 안 보내고 있거나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도 원하는 만큼 보낼 수 없는 부모들에게. 아이가 유치원에 못 가는 이 상황에서 어떤 것이 가장 걱정이 되는지를. 어떠한가요? 아마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가 있다면 지금 이러한 상황은 초등학교 입학 준비가 잘 안 될까 봐 정말 불안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해 주고 싶습니다. 유치원에 안 보내고 있거나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도 원하는 만큼 보낼 수 없는 부모들에게.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아 혹시 초등학교 입학 준비에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닌지에 대하여 걱정하지 말라고요. 2019 개정 누리과정은 ‘놀이’를 강조하고 있고 그 놀이는 가정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유아교육을 전공한 교사만큼 전문성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놀이가 유치원 교육과정에는 어떤 영역에 해당하고, 또 이것이 초등학교에서는 어떤 교육 활동으로 연계되는지 이해하고 아이와 함께 놀이한다면 아이와 함께 하는 놀이는 정말 값지고 의미 있는 영양분이 될 것입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 볼까요? 아이와 함께 놀이하면서 아이를 잘 관찰하는 겁니다. 어떤 말을 하는지, 표정은 어떤지. 그리고 그것을 메모해 두세요. 한 줄이어도 좋습니다. 핵심 키워드만도 좋고요. 학창 시절, 예쁜 다이어리에 친구들과의 추억을 짧게 짧게 남기던 때를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그 다이어리를 다시금 열었을 때의 기분이 어땠었는지요? 우리 아이를 관찰하고 잠깐의 시간을 투자한 한 줄 메모가 머지않은 미래에 가족들에게는 추억이 될 것이고, 주인공인 아이에게는 인생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한 줄 메모가 쌓이게 되면 우리 아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점이 강점인지가 분명히 보입니다. 어느 순간 우리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유치원 교육과정에서는 교사의 ‘관찰과 기록’을 중요하게 다뤄 왔습니다. 유치원 시기의 아이들은 초중고 학생들처럼 시험이라는 것을 치를 수 없기 때문에 성인에 의한 관찰과 기록이 곧 시험 결과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찰과 기록을 통해 아이들의 발달 수준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놀이를 제공하게 됩니다. 이렇듯, 집에서는 엄마 아빠가 교사가 되어 한 줄 메모를 남겨보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유치원에 갈 수 없는 날이 더 많아진 채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고 아이와 함께 놀이할 것을 권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놀이는 대단하고 근사하며 비싼 놀이감으로 하는 놀이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놀이감이 아이들에겐 가장 훌륭한 놀이감이 됩니다. 그 무엇을 다루던 아이는 너무 당연하게도 놀이를 만들어 냅니다. 아이들이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아! 나한테 좋은 생각이 났어."입니다. 그 좋은 생각을 인정해 주세요. 터무니 없어 보일 수 있으나 우선 인정하고 같이 해 보는 겁니다. 손해 볼 것 하나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