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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퀘렌시아

글쓰기 챌린지_(1일 차 )

by 글지은

퀘렌시아란?

애정, 애착, 귀소 본능, 귀소 본능의 장소를 말한다. 예전에는 나한테 그런 게 있었던가 한참 생각했다. 함께하는 가족이 있고, 수다 본능을 깨워줄 친구가 있고, 잘났든 못났든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온 흔적이 있다. 다 가지고 살면서도 현실이 불안하여 무언가 다른 것을 갈망하고 대체하느라 바쁜 생활을 살았다. 내가 그랬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집’이라고 생각할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흠뻑 빠져서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없더라. 내게 귀소 본능은 거실에 있는 좌식 테이블과 식탁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게 전부였다. 아이들이 잠잘 수 있는 방, 남편이 자는 방, 아이들 공부방으로 나누니 정작 자신이 있을 공간은 당연한 것처럼 아이들과 함께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 당연한 일상이라고 여겼던 시간과 소소한 공간. 앉아있을 곳은 거실이고 책이든 뭐든 소소한 일들 전부 거실이 내 공간인 동시에 아이들과 투덕거리며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곳이 귀소 본능의 장소였다.

어딜 가더라도 다시 되돌아가는 자리였고 최소한의 내 시간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은 트인 공간이 유일하게 머물 쉼터였다. ‘현재의 퀘렌시아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번뜩 생각나는 사람도, 장소도 없었다. 사방이 뚫려있는 장소에서 책을 읽고 베껴 쓰고 내 마음 쓰기를 하면서 오롯이 ‘나만의 퀘렌시아’를 만들고 싶었다. 구석에 작은 방 한 칸에 작은 책상과 의자, 뽀얗게 먼지가 쌓여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던 아담한 4단 책장이 들어갔다. 편안하게 잠들 매트리스도 깔고 ‘여긴 내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음이 기뻤다. 조그마한 책꽂이만 올려도 작은 책 하나 놓고 읽을만한 공간이 되지 않았다. 책꽂이를 벽에 바짝 붙이고 책상을 책꽂이가 떨어지지 않을 만큼 최대한 앞으로 당겼다. 많은 것은 필요치 않았다. 책장과 책상 밑에 있는 공간을 활용해 책을 꽂고도 바닥에 쌓였지만 기뻤다. 좁은 책상이지만 노트북을 쓸 수 있고, 책과 노트 한 권을 펼칠 공간도 되니 무슨 상관이랴. 작은 책꽂이 뒤로 벽을 사이에 두고 소중한 추억을 꽂아 놓으니 나만의 북극성이 가지런히 모였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고 아담한 책상 앞이다.

한 평짜리 책상은 현재의 내가 오롯이 살기 위해 만든 ‘퀘렌시아’가 되었다. 내 공간은 왜 없냐고 불평만 늘어놓기 바빴던 예전의 내 모습이 생각나더라. 이조차도 핑계 같지만 먹고살기도 바빴다. 불평보다 당장 ‘이번 달은 어떻게 살지?’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먼저였다. 스트레스 풀 곳이 없다, 수다 떨 상대가 없다, 마음을 이야기할 곳이 없다. 그딴 거 생각할 시간에 당장 먹고사는 것이고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먼저였던 시간이었다. 내 몸, 내 생각, 내 마음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전부였다. 내게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은 희망 사항이면서 동시에 나를 잃어버리고 살아야 했던 시간이다. ‘나’는 없을지 몰라도 아이들이 전부이고 퀘렌시아였던 시간이 아깝지 않다. 그 시간을 살아왔고 바보처럼 꾹꾹 누르며 참고만 사느라 내가 없는지도 몰랐지만, 그 시간을 살지 않았다면 지금 글을 쓰는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곳에서든 쓰기를 할 수 있는 곳은 가리지 않았다. 작은 기억 하나부터 그때의 표정, 작은 마음 하나도 허투루 삼고 싶지 않다.

현재 나의 퀘렌시아는 무수히 읽으며 써 내려간 책 속, 핸드폰, 공책, 사진들이 주는 나만 쓸 수 있는 추억을 담은 글이다. 제목을 붙인 것과 붙이지 않은 것, 생각나는 대로 쓴 메모,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도 아낌없이 소중한 흔적으로 ‘쓰임’하는 곳이 나의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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