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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May 27. 2019

일하는 엄마, 없는 엄마

저는 요즘 일하는 엄마와 없는 엄마에 대한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준이가 하도 저에게
'엄마는 가여워. 하루종일 구석구석 열심히 일하잖아'
라고 말하기 때문에 이 생각이 시작되었는데요.

세상의 모든 엄마는 일을 합니다.
집안일이 되었건 바깥일이 되었건 말입니다.

그런데 준이가 보기에 엄마는 하루종일 일하는 사람인가봅니다.
사실 준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나름 놀고 있었는데 말이죠.

아이가 집에 오면 엄마는 그때부터 바빠집니다.
애 수발들랴, 눈에 보이는 집안일 쳐내랴, 먹이랴, 치우랴..

집에 아무도 없으면 일이 없는데
집에 사람 한명만 추가되어도 일이 몇배는 많아집니다.

산업사회 이전에도 엄마는 항상 일을 했고
산업사회 이후에도 엄마는 일을 했습니다.
늘 아이가 보는 앞에서 일을 한 것이지요.
밭일, 논일, 주방일, 청소일, 옷감짜는 일, 바느질, 다양한 가내수공업 등

요즘 사람 기준에서야 세끼 차리고 치우는 일, 빨래가 가장 비중 있는 집안일이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 외에도 집집마다 옷감을 직접 짜고 옷을 직접 지어 입었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또 시간이 남으면 지푸라기로 끊임없이 새끼를 꼬고 바구니를 만드는 등
집 하나가 하나의 공장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집안일을 쳐냈었죠.

늘 일하는 엄마를 가진 아이들이었건만
엄마가 보이는 눈 앞에서 일을 하니 정서상 결함을 가질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서상 결함은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 중에도 분리불안, 즉 불안에 대한 정서에 한해서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후기 산업사회에서 여성들이 '일터'로 나가 물리적으로 아이들과 떨어지게 되면서
'분리불안'의 정서 문제가 대두하게 되었고, 특히 IMF 이후 가정이 경제적으로 무너지면서 많은 엄마들이 일터로 나가거나 가정이 해체되는 등 극단적인 상황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정서적 결핍은 불안, 허기, 자존감과 연결이 되고, 때에 따라서는 충동조절장애 등과 같은 극단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어쩌다 어른 163회 이수정 선생님 편에서 저는 충격적인 강연내용을 듣게 되었는데요. 엄마아빠가 애들을 방치하고 늘 일하러 다니거나, 특히 애들에게 밥을 차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소년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늘 당연하게 대하는 밥상이 영양학적으로 충동조절과 자존감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고 하네요. 소년원에 수감된 아이들을 대상으로 저녁반찬으로 고등어 한마리를 구워주어 아이들이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를 실험한 결과, 아이들이 몰라보게 진중해지고 충동성이 약화되었다고 합니다. (어쩌다 어른 163회 꼭 보세요)

밥은 그저 끼니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부모님이 나에게 제공하는 사랑의 실체이며, 동시에 영양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실존적인 처방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부모와 아이가 떨어져 있으니까 아이가 방치될 수밖에 없고, 밥도 못차려주게 된 거죠.
모든 것은 물리적 분리에서 기인합니다. 

밥이 중허구나..
그리고 아이가 보는 데서 일하는 게 중허구나..

이 두 가지가 제 머리 속에 맴돕니다.

당장 다음 학기부터 방과후 영어 강사를 해볼까나 하고 이력서를 만들고 있던 와중에
이런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니 또 망설여지네요.

나는 도대체 언제쯤 바깥으로 나가 돈을 벌 수 있는 것일까.
집에서 돈 벌 수 있는 일이 더욱더욱더욱 많이 생기면 좋겠다.
이미 시스템적으로는 재택근무가 완벽하게 가능한 상황인데 아직 그게 구현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애 보는 일에는 온전한 1명분의 맨먼스가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집에서 일할 수 있다고 해도 나 대신 애를 봐줄 수 있는 대체인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애보는 일과 돈버는 일은 시간적으로 양립이 불가능합니다. 허허허
애볼때는 돈버는 일을 할 수가 없고, 돈 벌때는 애를 볼 수가 없는 것이죠.
그게 집이건 직장이건.

참 이상해요?
집안일은 육아와 양립이 가능한데, 왜 돈버는 일은 육아와 양립이 안되는 걸까요?
제가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식구들이 당연하다는 듯 기다려주는데
왜 제가 컴 앞에 앉으면 빨리 나오라고 야단법석인 것이냐고요!!

제가 글을 쓰고 컨텐츠를 만드는 일은 애가 집에 없거나
남편이 애를 보고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내 아이가 범죄자가 될까봐 두려워서라기보다
그 물리적 부재에 따른 부작용이 뭔지를 대~충 알 것 같기에.
엄두가 안난다는 것입니다. 
나 대신 대타를 세워놔야 내가 나갈 수 있는 건데,
대타에게 지불할 돈만큼 제가 못벌 것이기에.. 저는 또 이렇게 집에 남습니다.

유치원과 학교의 도움으로, 학원의 서포트로, 남편의 도움으로
이렇게 글쓰고 뭔가 만들어내어서 네이버 TV 방송 광고료 몇천원씩이라도 버는 것이
저에게 남는 장사인 것일까요.
애한테 밥을 차려줄 수 있으니까?

일하는 엄마지만 없는 엄마는 될 수 없는 것이 저란 사람인가 봅니다.
일은 하지만 돈은 벌 수 없는,
아니, 일을 해서 지출을 줄이는 그런 엄마인가 봅니다. 

전 없는 엄마 밑에서 자랐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것 같아요.
엄청난 존재감의 대타, 할머니가 계셨으니까요.
할머니는 저보다 더 하루종일 일하고 계셨지만 그래도 존재감 자체로 든든했어요.

꼭 친엄마가 아니라도 아이와 함께 있어주며 수발(?)을 들어줄 수 있는 든든한 존재만 있으면 아이는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없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 아이를 키워보니 그 사실 하나가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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