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엄마가 그렇게까지 부유한 집 막내딸인 것을 몰랐다. 남들보다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정도의 집에서 나고 자란 것은 알았으나 상상 이상의 유복한 환경에서 고생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자랐던 온실 속 화초였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외갓집에는 늘 식모가 두서넛 있었으며 외할머니 조차 살림을 직접 살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풍족했다. 당시는 신분사회가 무너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절이므로 더더욱 양반행세를 하며 편안하게 살았던 것 같다.
헌데 나는 전형적인 가난한 집 딸래미였다. 처음 태어나서부터 계속 우리 집은 가난했고, 뭐 하나 풍족한 것이 없었다. 먹는 것, 입는 것, 가지는 것, 심지어 교육적인 부분까지 늘 부족했고, 부족한 부분은 으레 내가 스스로 채워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극상류층 막내딸이었던 우리 엄마가 40년 가량 내내 이어진 가난한 삶에 대해 불평하거나 못견디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뛰쳐나가거나 남탓을 할 만도 한데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담담하게 살아낼 뿐이었다.
엄마 뿐만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일시적으로 시터와 가사도우미를 불렀던 시절, 그 이모님들을 하나같이 왕년에 잘살았던 외갓집, 친정, 남편의 사업, 시댁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아름다웠던 과거를 추억하는 꿈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누구나 처지가 달라지면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실전에선 정말 어렵다. 그런데 우리 엄마 세대 분들은 급격한 환경의 변화, 풍요로운 물질의 박탈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고 담담하다. 잘 견디고 잘 버틴다. 오히려 더 억척같이 주어진 하루를 힘과 에너지로 채운다.
우리 세대 젊은이들이라면 어떨까. 유복하게 잘 살던 사람이 가난한 집에 시집가거나, 처음엔 괜찮게 살다가 형편이 어려워지면 좀처럼 견디질 못한다. 없는 돈에 카드빚을 내서라도 물건을 가지고 풍요로움을 누리려고 발버둥친다. 당장 생활비는 부족하더라도 남들이 하고 사는 겉흉내는 내고 봐야 한다.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마음의 소리도 없기에 죄책감마저 희박하다.
'내가 우리 집에서 어떻게 자랐는데'에서 영원히 벗어나질 못하는 어린아이들이다.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건만 현재를 인정하고 수긍하고, 개선할 의지 같은 것은 거의 없다. 인정을 해야 체념이 되고 의지가 생기는데, 인정단계부터가 엄청난 난항이다. 그저 그런 적 없는 척 하기 위해 없는 돈을 끌어다 쓰고 보호막을 치기에만 급급하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모르겠다. 옛날 사람들은 아무리 잘살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환경이 바뀌면 금새 적응한다. 의지력이 우리 세대보다는 훨씬 앞선다. 우리는 왜 이럴까. 왜 인정을 못하고 받아들이질 못할까. 견디기 어려워하고 버티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