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통은 결국 자기연민이다

by 스윗제니

부처는 말했다. 인생은 고(苦)라고

여기서 말하는 고통이란 마음의 고통, 번뇌 등을 뜻한다.


왜 괴로울까

인간은 다양한 마음의 괴로움을 느낀다.

그 중에서 가장 으뜸은 바로 인간세계에서의 상대적 서열로부터 오는 내적 갈등이다.


상대적 서열과 위치, 누리는 일상의 차이에서 오는 열등감,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싶은 욕심

열등감과 욕심의 대환장 콜라보 갈등 파티의 심적 상태가 바로


부처가 말한 고(苦)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인간세계에서의 상대성을 느끼지 않기 위해, 즉 괴로움을 초월하기 위해

과거 수행자들은 도를 닦고 성불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정말 그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가

정말로 인간이 바라고 추구하고 도를 닦아 이루고 싶은 경지가 맞는가?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바로 자폐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나, 아니면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수행자들이 그토록 바라는 인생의 괴로움을 거의 느끼지 않는 경지로 살아간다.

인간 본연의 삶을 살아가느라 부득이하게 발생하는 기본적인 희로애락은 있을지언정

열등감 혹은 욕심, 자아투쟁 등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헌데 사람들은 어떤가? 그런 자폐적 기질의 사람들이나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의 정신상태를 닮으려 노력하는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열외'로 생각하며 인간답지 않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희로애락애오욕과 욕망과 열등감, 자아투쟁개념을 모두 인지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을 인간이라고 규정하고 그 바탕을 딛고, 그 지점을 초월하는 어떤 궁극의 경지가 있다고 '가정'하며 열심히 수련과 수행을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넌센스이다.


인간은 욕망과 열등감, 자아투쟁을 하도록 설계되어있고, 그것을 정상상태로 규정하면서, 그 상태를 초월하려고 수련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상태를 이탈해 있는 이탈자들은 '열외자'라고 치부한다. 열외는 안되고, 바탕을 딛은 채 결계를 뛰어넘는 '초월'만 바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인생은 부처가 말한 바와 같이 원래 고(苦)를 느끼는 상태 그 자체가 본연의 상태이며, 고통을 느끼는 것은 일종의 도파민 보상체계이자 생존의 본능이며, 결국 인간이 그토록 자랑하는 지능이라는 것은 고통을 더 정교하게 잘 느낄 줄 아는 능력의 다름아님이다.


인간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인지할 수 없다고 한다. A라는 개념을 떠올리지 말라고 주문하면 계속 A라는 개념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는 것이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수만 시간의 명상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남은 나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자의식을 지우려 사투를 벌이지만, 애초에 우리의 자의식은 그 존재가 느슨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자의식이 없는 상태를 정신질환 상태라고 여기니까.


고통이란 것은 어쩌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나는 이만큼 고통을 인지하고 느끼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과시하며 자기 자신의 지능이 매우 잘 발달해 있음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입하는 매커니즘일 지도 모른다.


인간이 말하는 고통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나의 고통을 타인이 접할 때에는 '너 정도면 그래도 괜찮잖아'라는 말로, 마치 방사능 원소의 반감기처럼 종종 하찮아진다. 하지만 나 자신이 고통을 느낄 때, 사실 그 고통 자체보다 "이 고통을 겪고 있는 나"라는 존재에 더 몰입한다. "세상은 왜 나에게만 가혹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하고 깊게 고뇌하는가?"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나는 특별하다'는 비대해진 자아가 숨어 있다. 고통을 일종의 '정신적 훈장'처럼 달고 다니며,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자기 연민'의 도파민을 즐기는 것이다.


고통은 결국 자기연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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