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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Jul 22. 2017

38년차 워킹맘의 딸로 살아왔던 내 인생

제 친정엄마는 직장경력 38년 만에 올해 초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24세부터 38년간 쉼 없이 달려왔던 인생이었습니다. 정년까지 일했으니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길게 일한 사람 중 한 명일 것입니다. 


많은 워킹맘들이 궁금할 것입니다.


워킹맘의 자녀들이 크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학교 성적은?

아이들의 교우관계는?

엄마의 빈자리는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심리적인 문제는 없을까?


대다수 과거의 워킹맘의 자녀들이 그랬듯, 저와 제 동생은 할머니 손에 컸습니다. 친정엄마가 워킹맘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어린이집과 같은 보육시설이 없었으니까요. 워킹맘을 하려면 일단 애를 봐줄 수 있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의 도움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워킹맘들이 누리는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등의 복지혜택이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그야말로 그 어떤 휴가적인 보상 없이 저와 제 동생은 38년간 엄마와 생이별한 상태로 자라났습니다. 


워킹맘, 전업맘을 고민한다면 아이부터 살펴라


일단 저와 제 동생은 같은 집, 같은 환경에서 비슷한 유전자를 타고났지만 성향이 매우 딴판입니다. 성격도 딴판이고, 학교생활과 장래희망, 직업 모두 극과 극입니다. 이는 워킹맘 키웠다면 어떻고, 전엄맘이 키웠다면 어땠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작용합니다. 어떤 아이는 엄마의 빈자리를 스스로 적극적으로 메우고 독립적으로 자라나는 반면, 어떤 아이는 엄마의 빈자리를 그냥 빈자리로 둡니다. 저는 그래서 저와 제 동생이 극과 극으로 자라났던 결과를 놓고 워킹맘/전업맘의 선택기준은 엄마가 아닌 '아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이지차일드로 어느 환경이나 적응이 빠르며,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면 적극적으로 엄마에게 빈자리를 채워달라고 요구하거나, 대체물을 재빠르게 찾았습니다. 어떨 때는 스스로 그 능력을 키워 엄마의 빈자리를 스스로 메우기도 했습니다. 욕심이 많았기 때문에 취학 전부터 학습의지가 높았고, 칭찬을 좋아했기 때문에 칭찬을 받기 위해 무엇이든 잘하려고 스스로 노력하였으며, 실제로 학교성적도 좋았고, 교우관계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엄마는 제 요구사항에 뒤따라가기 바빴으며, 먼저 나서서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잘 자라는 아이도 내면의 결핍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저는 내면이 꽉 차지 못한 결핍 상태로 자라났다는 것을 어른이 된 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로부터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자라나(절대적인 시간 측면에서), 자존감이 약해 성취지향적인 인간이 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자존감을 제 존재자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제가 무엇인가 성취하고 이뤄야만 자존감을 채우는 식의 결과지향적인 성향을 갖게 된 것이죠. 또한 저는 평상시 표정이 무표정에 가깝거나 주위사람으로부터 어둡다, 차갑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집에서도 그다지 수다가 많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엄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수다 떨고 깔깔대는 경험을 한 바가 별로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춘기 때에는 엄마를 미워했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불만이 엄마에게 향했습니다. 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가끔 나타나서 잔소리만 하는 사람같이 느껴졌습니다. 이미 잘하고 있는데 항상 더 잘하라는 말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할머니도 계시지 않았기에 집안일을 제가 나눠서 해야 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만나면 항상 입버릇처럼 빨리 독립하고 싶다, 나가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그런 마음을 갖게 된 이유를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가 딱히 저에게 어떤 잘못을 했다기 보다, 정서적인 지지를 잘 해주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퇴근 후 엄마는 쉬고 싶었고, 자식들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저녁 차리고 집안일하며 짧은 저녁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자식들은 자기 방에서 문을 닫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엄마 역시 외할머니와 정서적으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지지 못한 채 자라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과 대화하는 것에 서툰 엄마였습니다. 직업상 학교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항상 아이들의 잘못이 먼저 보여 그것을 지적하기 바빴습니다.(제가 느끼기에는. 엄마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어요) 부족한 점을 보완시켜 더 잘하는 학생으로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저는 엄마의 학생이 아니라 자식이고 싶었습니다. 못해도 괜찮다,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었습니다. 잘 못하더라도 잘한다잘한다 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 결핍되었었고, 저는 한동안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습니다. 엄마는 엄마의 삶, 나는 내 삶을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게 오히려 더 좋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전업맘으로 살아보니 비로소 알게 된 내안의 결핍


시간이 흘러 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를 직접 제 손으로 키워보니 저와 제 엄마와의 관계가 온통 잘못된 점 투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절대적인 시간도 너무 부족했을 뿐더러, 양육의 질 측면에서도 아이를 품어주는 면이 부족했습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이런 부분을 이렇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엄마는 그런 마음이 왜 안 들었을까? 라는 질문들이 항상 떠올랐습니다. 제 입에서는 아이가 부족하고 잘 못해도 예쁘다, 잘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왜 엄마는 그런 이야기를 잘 해주지 않았을까? 아이를 키울수록, 자꾸 제 어린 시절에 상처받은 아이가 제 앞에 나타나 나를 다시 키워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갖게 된 확신 중의 하나가, 아이와 절대적인 시간을 오래 떨어져있게 되면 모성도 그만큼 덜 자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와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고 살을 부비고 좋은 것 나쁜 것을 다 함께 하다보면 아이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깊어집니다. 그러한 이해의 폭이 바탕이 되면 아이의 실수가 '단점'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아이의 특성으로 보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양육자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잘 받고 크면 괜찮지 않을까 싶겠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할머니가 아무리 사랑을 100% 준다 하더라도, 아이는 엄마에게 못 받은 사랑을 다 기억하고 계산하고 있습니다. 엄마에게 받을 빚을 다 계산해놓고 내놓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육아의 질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루 종일 할머니가 정성들여 잘 놀아주고 키워주었으니, 난 퇴근해서 밥 주고 씻기고 동화한권 읽어주고 재우면 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고 착각입니다. 아이들은 저녁상에 무슨 반찬이 올라오는지 보다 엄마가 나한테 얼마나 관심을 가져주고 어떻게 사랑을 이야기하는지만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워킹맘의 아이, 어떤 아이는 겉으로 보면 잘 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학교 성적도 좋고, 취업이나 결혼도 승승장구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그런 기본적인 부분조차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정말 엄마의 손길이 하나하나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기만 하면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장 커나갈 때에는 정서적인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성인이 되어 결핍된 부분이 터져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워킹맘의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서적인 지지와 공감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써야만 합니다. 그 부분이 바로 시간이 없기 때문에 가장 쉽게 패스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워킹맘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로 여기기 때문에 '집안일'은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퇴근 후 2시간 반여만에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소홀이 한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못하면 내일해야지하며 일단 오늘 아이를 재우고 피곤한 몸을 뉘입니다. 하지만 내일도 여전히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아이는 계속 기다리다 지쳐 결국 포기를 하고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는 편이 덜 상처받는 길이기 때문임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선택하게 된 전업맘의 길


저도 아이를 처음 낳고 얼마간은 다시 사회로 복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문제로 매일같이 고민했습니다. 사회에서 은퇴한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헤드헌터로부터 스카웃 제의 전화가 심심치 않게 옵니다. 처음 육아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는 멋모를 시절에는 저 역시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면 다 되는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애를 봐줄 수 있는 대체인력만 있으면 다시 사회로 튀어나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오히려 제 어린 시절이 자꾸 투영되며 제 안의 결핍이 크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런 결핍을 제 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인이 된 후 한동안 엄마를 사랑한다는 생각 없이 살아왔습니다. 별일 없으면 서로 전화통화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제가 얼마나 엄마의 사랑을 원했는지를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남들과 달라서, 엄마의 사랑같은건 그다지 필요 없는 독립적이고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아이에 불과했습니다. 


준이는 제가 느끼기에도 정말 저를 엄청나게 사랑합니다. 제가 제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의 10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 커리어를 포기 못하고, 공부했던 것을 아깝게 여기며 직장생활을 이어갔다면 저와 제 아이의 관계도 저와 제 엄마와의 관계와 엇비슷해졌을 지도 모릅니다. 또는 엄마가 저를 키우던 시절보다 육아의 질이 중요시되고, 갖가지 방법론이 난무하는 시대이니 엄마와 저의 관계보다는 훨씬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을 함께 보냄으로서 얻게 되는 엄마와 아이가 둘만 아는 공감의 가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에 비례하는 관계의 깊이가 있습니다. 제가 워킹맘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수도 있는 그 가치가 저에겐 너무 소중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길을 진지하게 천천히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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