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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Jul 24. 2017

전업맘은 실업자가 아니야

'전업주부는 실업자가 아니야'


나는 사실 속으로 전업주부는 실업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니 항상 워킹맘에 비해서 열등하다는 기분이었다. 과장달고, 차장달고 잘 나가는 대학친구들의 페이스북 이야기를 보면 더더욱 그런 열등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4개월 여간의 워킹맘 생활 동안, 대단한 일을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나혼자 뿌듯해하고 보람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경제활동을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 자신이 나를 바라보는 관점도 중요했지만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중요했다. 내 가족, 친구, 지인들, 남들이 나를 '집에서 노는 여자'라고 여길까봐 그렇지 않음을 내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바쁘게 일들을 벌여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존재가 바로 '남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남편이 나를 집에서 돈이나 축내는 존재로 여기지 않을까.

집에서 놀다보니 세상물정에서 어두워지고 세상의 정보에서 멀어져가는 아줌마로 여기지 않을까.

집에서 놀고먹어서 편한 존재로 보이지는 않을까.


여러 가지 걱정과 불안함이 있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그런 저에게 어느날 '전업주부는 실업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었다.


마치 죄를 짓고 있었는데 면죄부를 얻은 기분,

뭔가 승진한 기분,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주부인 내가 나 스스로 '전업주부가 얼마나 바쁜데!!'하고 부르짖는 것보다, 남편이 그 일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이 훨씬 더 나에게 큰 설득력을 주었다. 


주부의 일.

여자 혼자서도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워킹맘?

당연히 남편과 가사분담을 해야 겨우 할 수 있고, 그마저도 불가능한 경우 외주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해도 해도 티가 안 나지만 안하면 집안이 엉망진창 되는 일

엉망진창인 채로 며칠 버틸 수는 있지만 일주일 이상 그럴 수는 없는 그 일

업무량은 많지만 운동량은 얼마 되지 않아 계속하다보면 살만 찌는 일

귀찮고 짜치지만 숭고하고 거룩한 일

남에게 외주를 주어서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는 일

'일'이기 때문에 마땅히 '일'이라고 불려야 할 일인 전업주부의 일


그 일의 가치를 알아주는 남편의 말 한마디가 가슴 속을 오래오래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동안 미웠던 감정들도 웬만큼 녹일 수 있었던 꽤 큰 영향력을 가진 한마디였다.  


나는 살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집은 지저분하고 정리정돈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그저 설거지나 빨래가 쌓이지 않게 겨우겨우 쳐내는 편이고, 끼니마다 밥 거르지 않게 이어가는 정도가 내가 하는 살림의 전부다. 아이와 남편, 우리 집안에 필요한 물건들이 무엇인지 구매 여부를 결정하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며, 주부들끼리 정보교환을 하는 인터넷 카페에 들락거리는 반복적인 삶일 뿐이다. 나는 전업맘으로서 이 정도의 집안일을 겨우 쳐내며 나머지 에너지를 육아에 집중한다. 전업주부이기 보다, 전업맘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워킹맘은 기본적인 집안일을 쳐내기에 바빠서 육아에 투자할 체력과 정신력이 방전될 수 있다. 육아가 진행되는 시간에 동시에 집안일을 진행해야만 하기에, 두 가지 중 취사선택을 하거나 한 가지를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반면, 전업맘은 집안일과 육아를 어느정도 분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전업맘의 잉여에너지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전업맘은 실업자가 아니며, 아이를 꽃피우게 하는 거름이 된다. 


전업주부에게는 살림이 1순위지만 전업맘에게는 육아가 1순위다. 


나는 아이를 좀 더 잘 키우기 위해 전업주부가 아닌 전업맘이 되기로 했다. 마음속에서 그렇게 정했다. 나는 실업자가 아니라고. 언제 무슨 일이 또 시작될지는 모르지만 전업주부가 되기보다 전업맘이 되겠다고. 여전히 집안일은 뒷전일지 모르지만 내 아이에게만은 가장 최고인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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