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불쑥 드는 생각이 있다.
얼마를 번다면 다시 나가 일할 생각이 들까?
물론 내가 다시 취직이 될 가능성도 거의 없고, 아직은 다시 일하러 나갈 마음도 전혀 없다. 하지만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이유는 '이 사회에서 내 가치는 어느정도 쯤일까?'란 생각 덕분인 것 같다. 10년이란 적지 않은 경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력단절 기간 또한 길기에 이전 직장과 같은 수준으로의 복귀는 거의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 어떤 일을 할 지, 얼마나 벌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할 것이다.
돈의 절대적 액수의 측면
아이가 태어나고 '실전생활'이 시작되니 생활비의 규모가 중요해졌다. 아이 없이 부부 둘만 살 때의 가계부를 펼쳐보니 식비를 30만원으로 잡아놨더라. 허탈한 웃음이 스며나왔다. 아이 없는 부부는 얼마를 벌건 저금하고 아낄 여지가 너무나도 많기에 연봉의 액수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 여부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생활비'가 고정적으로 들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보다 '얼마를 주는 곳'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대한민국 대다수의 아빠들이 그렇듯, '하기 싫은 일이라도 돈만 많이 준다면 참고 해야 하는' 생활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얼마를 준다고 하면 나가서 일할 마음이 들까?
주변 가족들에게 자문을 구하니, 애엄마로서 월 200이상 벌지 못할 바에야 집에서 아이들 잘 키우는 것이 남는 장사라며, '그냥 집에 있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고 한다.
애엄마의 신분과, 전업맘 양육의 가치를 상쇄할만한 돈의 액수는 200만원이 기준점인 것 같다. 나 역시도 200이상 벌 것도 아니면 그냥 집에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니까. 왜 200만원일까? 애엄마는 야근이 불가능하니까. 200이상을 벌어야 야근을 하더라도 육아 도우미를 부릴 수 있는 여유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학력과 학벌과 경력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완전한 자연인인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몸으로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종류의 일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최저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 자리나, 조금 더 몸이 고된 중노동 자리 정도가 손을 뻗쳐볼 수 있는 수준이다. 최저시급으로 월 200을 채우려면 하루종일 나가 있어야 하고, 몸이 고된 중노동(공장 또는 야간 근무 등) 자리는 솔직히 엄두가 안난다. 직업의 귀천을 따져서라기 보다, '애엄마'라는 신분적 한계가 역시 '월 200 못 벌거면 집에서 아이들 잘 돌보는 편이 낫다'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부터 워킹맘이었다면, 나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아이의 시간표를 짜맞췄을텐데, 전업맘 생활을 길게 하다보니 '시간에 매이는 일'에 대한 경계심이 너무나도 커졌다. 아이의 하원시간에는 언제나 내가 함께여야 한다는 강박도 존재한다.
이러니 알바 말고는 눈을 둘 데가 거의 없다. 그냥 최저시급을 받고, 하루에 4-5시간 일하며 소위 '용돈벌이'나 해야겠네라는 생각에 갇히는 것이다. 난 뭐하러 공부하고 취직하고 아둥바둥 살아왔던 것일까?
재교육 후 새로운 일터로
공무원, 공인중개사 등 시험에 도전하거나, 단기간에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을 딴 후 일자리를 찾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려운 시험일수록 합격여부가 불투명하고, 쉬운 자격증일 수록 기대할 수 있는 페이가 적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아르바이트 보다 약간의 사회적 명예가 추가될 뿐이다.
게다가 어차피 재교육 후의 일자리는 사회적 성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근근히' 출퇴근하면서 엄마로서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대 초반부터 그 직업에 올인했던 다른 경쟁자들과는 근본부터 출발점이 다르다. 뭔가 애엄마의 사회적 성공은 불가능하거나, 비정함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소자본 창업으로 제 2의 인생을
내가 이미 한번 해봤던 것이다. 소자본 창업으로 집에서 일을 하며 돈도 벌 수 있어 좋았는데, 사업이란 것도 역시 규모가 커지면 직원이 필요하게 되고, 그러려면 사무실을 얻어서 나가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며, 사장 본인의 시간투자가 엄청나게 요구되더라. 아이 양육에 영향이 가는 것은 100%이지만, 데미지를 최소화하려면 잠을 줄이는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집에서 아이 옷 쇼핑몰을 하시거나 부업을 하시는 경우 종종 '몇일 밤을 샜다.' '잠을 하루에 3-4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는 개인 사연이 올리시는 경우가 많은데, 뭐가 이렇게 애엄마만 힘들어야 하는 것인지 당최 이유를 모르겠다.
나와 내 동생을 처음부터 떼어놓았던 엄마와 달리, 나는 처음부터 내 아들의 유일한 주 양육자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갈수록, 내가 자랐던 환경과 내 아이가 자라는 환경의 갭이 점점 벌어지는 것을 느낀다. 처음에는 막연히 '우리 아이는 내가 옆에 있어서 좋겠다, 행복하겠다'란 생각에 그쳐있었던 나의 육아관이, 이제는 '반드시 내가 옆에 있어야겠다'로 변했다.
일단 훈육이 너무 쉽고, 아이가 너무 밝다. 아이는 스스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고, 그것을 더 확실히 누리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자기가 별로 안좋아하는 일이라도 엄마가 원하면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엄마의 사랑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가 운이 좋은 아이라는 것도 안다.
나에 대한 든든한 믿음은 정서적 안정으로 굳어졌고, 완벽한 지지자를 확보한 아이의 회복탄력성은 놀랍도록 견고해서 좌절과 실패를 툭툭 털고 극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 어린 것들의 세계에도 좌절과 시련과 실패가 있다..;;) 뭔가 정서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자신의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나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지속적으로 구하는 행동 등이 바로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과정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에도 내가 뭔가를 실패하거나 잘 하지 못할 때 엄마에게 그것을 숨기느라 급급했다. 엄마가 보기에 아주 멀쩡하고 잘하는 아이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하루 일과 중 엄마를 아주 가끔 보니, 엄마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뭐든 잘 하는 아이'여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내면의 걱정과 불안을 엄마와 나눈 적은 성인이 되어서도 없다. 걱정거리를 말했던 기억은, 고민을 충분히 한 후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엄마에게 통보하듯 이야기했던 방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정서와 내면이 변화하는 '과정'에 함께할 수 있다. 세세한 작은 변화도 나는 아이와 함께한다. 누군가가 나를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기분은 처음이고 새롭다.
아이가 객관적으로 잘 자라는 것 못지 않게, 부모와 좋은 관계로 자라는 것 역시 중요하다. 특히 아이들이 사춘기 때 한번, 결혼 후 한번씩 부모를 식겁하게 하는 순간이 온다. 나는 매일매일 그 '식겁'하는 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적금을 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 속에서 열일하는 일꾼으로 키워내는 일 못지 않게, 사회 속에서 잘 융화되는 사람으로 키우는 일 역시 중요하다. 사회생활의 기본은 '인간관계'이고 그 기본을 처음 배우는 것은 부모 자식관계에서 시작되니까.
한 때 최초의 대기업 여성임원을 꿈꿨던 야망많던 처녀가 '도저히 나가서 일 못하겠네'란 마음이 들만큼 육아가 주는 꿀이 지극히 달콤한가 보다. 내가 못 받아본 엄마로부터의 사랑을 자식으로부터 채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