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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놀이터 Apr 23. 2018

여자 목수

2017년 2월 목수 일을 시작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않았지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편한 시다일(보조일)부터 시작할 수 있으니 부담이 없었다. 두 명이서 나무를 날라 샌딩을 하고, 기름칠하고, 페인트칠을 했다. 그 일만 무려 6개월을 넘게 했다. 지루해서 힘든 일이었다. 우리가 여자라서, 목수 일을 하기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서 소장은 그렇게 긴 시간을 그 일만 시켰다. 집 하나를 지으려면 얼마나 많은 공정들이 들어가는데 세 개의 집을 짓는 동안 우리가 했던 일은 그 일뿐이었다.

결국 우린 소장에게 건의했다. '더 이상 이 일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소장은 얘기했다.

'그럼 툴벨트(목수들이 공구를 들고 다니기 위해 착용하는 공구집 벨트)를 먼저 착용하세요!'

나만의 툴벨트를 착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일을 시키면 그때 찰게요!'

툴벨트를 스스로 차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나 스스로 툴벨트를 찰만큼 목수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목수들을 흉내 내는 것 같아 부끄러워 착용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공구가 없으면 일일이 목수들에게 빌려 써야 하기에 틈틈이 나만의 공구를 준비하게 되었고, 드디어 2017년 12월 나도 툴벨트를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무슨 일이든 시키면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나도 목수가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하지만 목수일은 여자에게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 힘이 없으면 무거운 공구를 들고 큰 나무들을 잡아가며 못이며 피스를 박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공구로 가득 찬 툴벨트를 차고 함께 일을 해도 목수들은 나를 목수라 부르지 않았고, 나 또한 스스로를 목수라 칭하지 않았다. 그냥 시다라 표현했다. (영어 'man'처럼 목수란 직업은 힘과 공구를 쓰는 남성의 대표적인 일이었기에 현장에서 '목수'란 단어는 남성에게만 붙이고 여성에게는 부수적인 일만 한다 하여 ‘시다’라 표현했다)

     

그러다 2018년 2월부터 나는 함께 짝을 이뤘던 짝꿍이 소목팀으로 가게 되면서 남자 목수들이 하는 일을 홀로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힘들었다. 남자 목수들과 똑같이 무거운 나무들을 날라야 했고, 3층 정도 되는 아시바 위에 올라가 작업을 해야 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천장도 우마(작업대)를 놓고 올라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꿋꿋하게 작업해야 했고, 행여나 남자 목수들과 팀을 이뤄 작업을 할 때면 그들이 나를 배려하느라 작업이 늦어지지 않도록 나 또한 최대한 그들의 작업 속도에 맞춰 일을 했다.

     

여자는 둘이서 짝을 이뤄야만 일할 수 있다는 목조건축현장에서 어쩌면 그동안 여자라는 이유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일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여자라서 무거운 나무를 나르는 일에서 제외되었고, 지붕이나 높은 곳에 올라가 작업하는 일도 제외되었다. 화장실도 간이화장실은 더러워서 사용할 수 없다 하여 틈틈이 다른 곳에 갈 수 있는 시간도 할애되었다. 다칠 수 있는 기계를 다루는 일도 남자 목수들이 대신해주었고, 무거운 툴벨트를 매고 다니며 일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단순하고 덜 힘든 작업을 했더랬다.

그래서 우린 시다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의 일은 달라졌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났고, 견뎌야 했고, 몸이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힘든 근력운동도 빠트리지 않고 해야 했다.

며칠 전 타일 아저씨가 현장에 왔다. 타일 작업을 위해 공구와 재료를 갖다 놓으려고 오셨다고 했다. 그분이 집 내부에서 홀로 루바를 붙이고 있는 나를 보시며 '목수가 되셨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갑자기 울컥했다. 그 말을 듣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나는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군소리 없이 견뎌야 했다. 다행히도 팀장과 소장은 내가 충분히 일을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줬고, 기다려줬고, 친절하게 설명과 시범을 보여줬다. 나 또한 그분들의 기대에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여자 시다로 대했던 목수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동료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재현씨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힘든 일인데~'라는 빈정 아닌 빈정거림도 없어졌고, 내가 그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의심이 차츰 줄어드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목수가 되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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