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도전 중 입니다만..

마지막 글 작성 이후 나는 뭘 했는가?

by 신작가

브런치에서 알람이 왔다. "마지막 글 작성 이후 구독자가 3명이나 늘었는데 돌연 작가님이 사라지셨어요."

핑계를 대자면 육가공 공장을 그만둔 이후 친구와 함께 새로운 일들에 도전한 이후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사라진 며칠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우선 빅토리아에서 10시간을 운전해서 시드니로 갔다.

포크리프트 드라이버 라이선스를 따기 위해서였다. 솔라팜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려면 포크리프트를 따놓는 게 좋다고 하는 정보를 듣고 친구와 함께 도전을 했다.

가장 필요한 화이트 카드 (건설업 필수 자격증)를 따고 나서 포크리프트 드라이버 라이선스 수업을 등록했다. 화이트 카드를 한 번에 합격했으니 포크리프트도 무리 없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하루 종일 수업내용을 외우고 실습한 내용을 연습했는데도, 1차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필기, 실기 둘 다 떨어지고 나니 재시험 비용이 무려 130불이었다.

암담했다. 듣기로는 정말 개나 소나 다 딸 수 있는 자격증이라고 하던데.. 이런 것도 한 번에 못 받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그래.. 뭐 내가 한 번에 하는 게 뭐가 있었나, 계속해서 도전해보자. 다음에는 받겠지.

생각하고 다시 도전을 했다. 이번에는 실습에서 또 실격이었다. 정말 너무 화가 났다. 탈락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시험관이 너무 미웠다. 친구는 한 번에 합격했는데, 도대체 왜 나는 두 번이나 떨어진 거지?..

모든 것이 의기소침해졌다. 아니 의기소침해지는 걸 넘어서서 이런 것도 한 번에 못 따는데 도대체 나는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래.. 차라리 연수를 한번 받고 다시 도전해보자.

80불을 주고 드라이빙 연습을 하고 다시 도전을 해서 겨우 합격을 했다.


기본 수업 및 시험 비용 370불 + 130불 1차 + 80불 연습 비용 + 130불 2차 시험 = 총 710불


고작 포크리프트를 합격하는데 이 정도의 비용을 지출을 했다니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이걸 받기 위해서 3주의 시간이 들어갔다니..

그래.. 이렇게 돈과 시간을 썼지만 또 그만큼 일을 해서 뽑아내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솔라 팜 일을 찾아봤다.

아무리 이력서를 넣고 기다려도 솔라팜에서는 연락한 통 받을 수 없었다. 급한 대로 퀸즐랜드로 올라가기로 했고, 우리는 다시 10시간을 운전해서 퀸즐랜드 주로 넘어갔다.


정말 다행인 것은 퀸즐랜드 주로 넘어오자마자 며칠 뒤에 NSW주에 락다운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치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몰고 다니는 것처럼 지나오는 곳마다 락다운 소식이 들리고 있었다.

선샤인 코스트라는 지역을 도착했을 때 엄청나게 일자리가 없는 와중에 다행히 한 곳에 컨택이 되었다.

빵공장이었는데, 한국인이 나밖에 없는 곳이었는데 호주 에이전시를 통해서 들어간 곳이었다.

포크리프트 드라이버는 아니었지만, 시급도 괜찮고 쉬프트도 하루 10시간 정도 돼서 너무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다른 공장으로 보내면서 시급도 적고 시프트도 적은 곳으로 출근을 시키기 시작했다. 아 그럼 그렇지.. 그러다 친구가 코튼진이라는 목화 공장에 포크리프트가 2명 필요하고 경력이 없어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짐을 싸고 다시 8시간 정도를 내려가서 군디 윈디 GOONDIWINDI라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숙소가 없어서 페이스북 Notice board에 셰어하우스를 구한다고 올려봤지만 소식이 없어 우선 친구가 컨택한 Boggabilla라는 지역에 있는 Jack이라는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됐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경악스러운 컨디션을 지닌 곳이었다. 일단 Queensland와 Nsw를 경계로 둔 지역인 것도 별로 였지만, 정말 최악이었던 건 집 컨디션이었다. 웬 낙서 가득한 쉐드장을 가니 철문이 보였는데 그 철문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폐차들과 큼지막한 경비견 같이 생긴 사나운 개 2마리가 폐차들을 수호하고 있었다.

침대 시트를 벗겨내니 안에는 바퀴벌레 시체가 죽어있었고, 200불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셰어 비를 요구했다. 망할 노친네!라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고 어쩔 수 없으니 일단 지내보자 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IMG_5454.JPG JACK 그리고 친구와 함께 주말마다 바비큐 파티를 했다.

다음날 첫 출근을 하고 며칠 동안 출근을 하면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포크리프트 대수는 부족한데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누구는 계속 포크리프트는 못 몰고 나 같은 경우 스캐닝만 주야장천 하거나 일이 없어서 뭐부터 하면 될지 물어보기 바빴다.

내가 지금 일을 잘하고 있는 건지 도대체 그럼 이 많은 사람들을 왜 지금 뽑았는지 정말 의아한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쯤 일주일이 지났을 때 갑작스레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정말 너무 화가 났다. 일하고 있던 공장도 그만두고 회사 말만 믿고 왔는데, 이렇게 해고 통보를 갑자기 내려버리니 너무 혼란스러웠다. 일주일 동안 여기저기 일을 찾아봐도 구해지지 않다가, 마침 AGRILABOUR에 연락했던 DANIEL이라는 친구가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고 다행히 힐스톤이라는 지역에 두 자리가 비어있다는 걸 듣고 이동하기로 했다.


HILLSTON이라는 지역은 플랫 메이트와 검트리를 찾아봐도 숙소를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있는 건 겨우 백패커스였는데, 우선 먼저 백패커스를 컨택해서 넘어가기로 했다.

지역에 도착해보니, 캐러밴 파크가 마침 보였는데, 꽤 깔끔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지닌 곳이었다.

내친김에 들어가서 숙소가 있는지 확인해보니 와이파이는 되지 않지만 꽤 좋은 컨디션의 캐빈을 이용할 수 있었다. 처음 컨택했던 백패커스에 비하면 확연히 좋은 컨디션과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바로 계약을 해버렸다.


결국 지금은 코튼진이라는 목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포크리프트 드라이버는 아니지만 나름 만족하며 일을 하고 있다. 이제 이 일도 1달 정도밖에 남지 않아서, 또 어디를 가야 할지 알아봐야 한다.

처음에 이렇게 여기저기 다니기 전에는 고정된 일자리가 없어서 불안정한 마음과 불확실성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런데 와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다들 그렇게 지내며, 계절 따라 돈 따라 흘러가듯이 다니는 친구들을 보니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받을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앞으로 6개월 남짓 남은 호주 생활이지만, 불확실함을 감내하며 한국에 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자금을 모아갈 생각이다. 해고와 포크리프트 2번 낙방은 나를 좌절하게 했었고, 엄청난 좌절감과 무기력함에 빠져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할 뻔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별거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별일을 다 겪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돈과 시간을 낭비했지만, 탁 트인 길을 10시간 넘게 달리면서 많은 생각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서 나름 힘들었지만 좋은 시간들이었다.

앞으로도 또 좌절하고 무기력 해지겠지만, 늘어졌다 수축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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