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영창 체험썰
때는 내가 상병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운이 좋아 보일러병으로 발탁이 되어 낮에는 훈련병들을 훈육하고
밤에는 보일러병이 되어 겨울에 훈련병들의 보일러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보일러병 활동을 하고 막사에 돌아왔는데,
당직을 서고 있던 맞후임이 같이 담배를 피우자고 했다. 보통 목욕탕에서 몰래 담배를 피곤했는데, 그날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우리 둘 다 환풍기에 재를 털어버린 것이었다.
멍청하게 털어버린 그 재가 결국 화마가 되어 환풍기에 불이 붙었고 그게 지붕에 옮겨 붙어서 번지게 되어버렸다. 모두들 밤중에 난리를 치며 불을 소화시켰고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잘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은 징계처리를 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일이 되어 영창 4박 5일이라는 처분을 받게 되었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진술을 하는데, 맞후임도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혼자 저지른 일이고 그 친구는 혼자서 당직을 서고 있었다고 했다. 솔직히 그 친구를 감싸기보다는 뭔가 선임으로써 창피하기도 했고 맞후임과 같이 영창을 가는 것 자체가 모양 빠진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평소 훈련병들을 심하게 훈육하지 않았던 터라 훈련병들이 삼삼오오 탄원서를 작성하여 상부에 제시해 주었고, 만창을 받아야 정상이지만 고작 2박 3일이라는 시간으로 영창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2박 3일 영창이라니 하느님께 감사해야 했지만, 그때 당시 어렸던 나는 영창이라는 처벌 자체가 너무 무서워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되는 정도였다.
영창에 도착해서 나는 죄수복 비슷한 옷을 입고 철창 안에 갇혀 다른 부대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감옥에 가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할 정도로 매우 삼엄했다. 화장실에 가거나 책을 교환하고 싶을 경우 일어나서 뒤를 돌아보고 있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밥은 정말 맛있었다. 본부근무대라서 그런지 신교대 밥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잘 나왔다. 그렇게 규칙적으로 밥을 먹고 앉아서 7~8시간 동안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봤다.
특히, 그때 당시 읽었던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꿈꾸는 다락방],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었다.
그러다가 2일 차 되는 날에 시간이 많이 남아 공자의 [논어]를 읽고 한문을 필사하여 외웠다.
매일이 스트레스였던 조교 생활보다 오히려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껏 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로 좋으면 안 되지만 나름 괜찮았던 시간이었다. 부대에 돌아오자마자 훈련병들의 수료식 날짜가 되어 방문객의 교통 통제를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습설이 내리면서 함박눈이 발목을 넘을 정도로 엄청나게 오고 있었다.
앞이 안 보이는 시야 속에서 야광봉을 들고 통제하고 있었는데 어떤 한 차량이 내쪽으로 돌진을 했다.
나는 급하게 회피했지만, 그 차는 또랑에 빠져버렸다. 급하게 달려가서 문을 열고 탑승자들을 밖으로 꺼내드리는데 진~한 술냄새가 풍겼다.
수송반장은 내 무전을 듣고 달려와 호되게 나를 혼내는데 갑자기 억울함에 눈물이 났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혼이 나고 있었는데 술냄새를 맡은 수송반장이 조용히 다가와 미안하다고 말했다.
소대로 돌아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다 고개를 들자 달력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