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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k작가 Oct 17. 2023

먹기 위해 간 체육대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바자회를 마치고 약간 숨을 돌리고 있을 때쯤.. 

올해 코로나 이후로 첫 대동제를 열 계획이라는 소문을 들어버렸다. 


이 학교에서 대동제에 대해서는 듣도 보도 못했던 작년... 

대동제가 단순히 학교 역사 사진이나 보고 우아하게 차나 마시는 행사인 줄 알았었다. 

선배 학부모들이 그것은 체육대회이다!!!라고 알려주기 전까지 말이다. 

다행히 올해는 체육대회인 대동제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9월 말에 알고는 적지 않게 놀랐으나 어쩌겠나.. 또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아무리 '해야지!'불치병에 걸린 나라도.. 운동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학창 시절 체육이라면 정말 치를 떨었던 과목 중에 하나였고, 다른 건 다 잘해도 체육만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과목 중에 하나였다. 왜 학교에는 체육이 있지?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암튼 정말 거부하고 싶었던 그날이 왔다. 

아침부터 나와 우리 첫째는 하기 싫음을 디폴트로 깔고.. 뛰기 싫은데 안 가면 안 될까?를 외치고 있었지만 몸은 이미 점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랬다... 

뛰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일주일 전 공지 된 조별 식사만큼은 또 잘 준비하고 싶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마을에 사는 학부모들로 구성된 우리 조는 (역시나 조장은 나)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는 다른 조의 소식을 접하고는 일주일 전부터 뭔가 알 수 없는 전의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평소에 학교에서는 얼굴 보기도 힘들지만 대동제를 앞두고부터는 가슴속 뜨거운 것이 서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비록 뛰지는 않을지언정... 

냄새로는 질 수 없다는 게 우리 조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 어묵탕을 해오겠다고 자진해서 이야기했고, 그것이 시초가 되어 잡채, 제육볶음, 골뱅이 무침, 아이들용 짜장과 주먹밥들이 줄줄이 소환되었다. 급기야 후식으로 과일과 찐 고구마, 케이크까지.. 어느 조보다 먹는 것에 진심이었던 우리 조 어머님들은 아침부터 준비 운동보다도 더... 이날의 점심에 진심이었다. 


우리 조가 속한 팀은 '주작'팀이었다. 학교의 인원을 모두 16개로 나누고 각각 4조씩 1팀을 구성하게 된다. 그 팀들은 동서남북을 나누는 수호신인 청룡, 주작, 현무, 백호 이렇게 이름 지어져 그날 한 팀이 된다. 물론 평소 아는 얼굴도 있지만 모르는 얼굴들도 많다. 역시나 당일에 가보니 어색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또 그날의 또 다른 묘미이기에 그렇게 뛰는 자를 응원하며 어느덧 한 팀이 되기도 했다. 

대동제는 저학년 아이들 위주로 공 넘기기, 고깔 뒤집기, 줄다리기하기, 이어달리기, 피구 하기, 족구 하기 등등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었다. 물론 체육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아들과 숨어있기 바빴고, 전 체육인인 남편은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딸은 어느덧 크루를 구성하여 여기저기 수다 떨며 다니기 바빴다.. 


나름 다들 각자의 방식에 맞게 한껏 축제를 즐기고 문제의 시간이 되었다. 점심시간!!

사전에 남편과 계획을 짜둔 덕분에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역시나 우리의 조원들은 인사를 건넬 때마다 바리바리 통을 꺼내어 옆에 줄지어 놓기 시작했다. 다른 조들 역시 삼겹살, 부침개, 조개찜 등 신박한 메뉴들을 준비시켜 모두를 놀라게도 했지만 내 눈에는 우리 조가 최강이었다. 맛도 물론 최강이었다고 나는 자부한다.

우리 남편은 방금 전까지 줄다리기에서 온갖 힘을 빼고 왔지만 점심 준비에서 만큼은 진심이었다. 열심히 볶아댄 제육을 다들 맛있다고 칭찬하자 한껏 올라간 입꼬리로 뿌듯함을 표현했다. 1시간가량의 점심시간이 끝나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아직 이어달리기, 박터뜨리기까지 여러 경기들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성향이 같은 아들과 떠돌이처럼 배회하고 있던 찰나, 

남편에게 걸려서는... 이제는 좀 뛰어야 하지 않겠냐고 잔소리를 한껏 들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며 나는 슬그머니 아들과 꽁무니를 빼고 앉아서 이어 달리기에서 20년 만에 처음 뛰는 남편을 아들과 열심히 응원했다. 딸은 팝콘 먹기 바빴다. 


마지막 하이라이트이자.. 부상자가 속출한다는.. 박 터뜨리기가 시작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준비해 온 콩 주머니를 던지기 바빴는데 나를 닮은 우리 아들은 누군가 잘 못 던진 콩주머니에 맞아 쌍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역시나 운동신경 없는.. 내 아들.. 딸내미는 날아오는 콩주머니를 야무지게 피하고서는 자신이 준비해 온 콩주머니까지 다시 챙기는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참..! 대동제 전날 준비물이 있었는데, 물론 어마어마하 점심도 준비물 중 하나였지만 콩주머니 만들어오기가 숙제였다. 우리 시대 모두가 해봤던 '박터뜨리기'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콩주머니를 우리 학교에서는 가정마다 모두 만들어 오라는 주문을 했다. 또 시작은 하기 싫어였으나 어느덧 5개나 만들고 있었다. 1인당 2개씩만 만들면 되는 이 준비물을... 결국에는 못 가져온 친구들이 있을까 봐 5개나 주섬 주섬 만들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싸서 갔다.)


그렇게 10월 행사가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았다. 

다시 일주일을 보낸 우리는.. 10월 둘째 주.. 기다리던 3학년의 모꼬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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