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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k작가 May 26. 2022

숲으로 가자.

숲어린이집에 빠지다. 

그렇게 선택한 어린이집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아이다움"이라는 숲 어린이집이었다. 


살다가 생전 처음 가보는 동네에.. 

정말 이런 곳에 어린이집이 있어? 할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다. 

심지어 이정표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는데, 찾아가는 내내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찾은 게 맞는지 매우 의심을 거듭하며 굽이 굽이 들어갔다. 

정말 어린이집은 마을 안쪽으로 꽤 들어가야 있었다. 


그런데 웬걸..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하얀 울타리가 있고 그림 같은 정원과 놀이터였다. 

현관에는 나름 국내 최초 숲 유치원이라는 신문 기사도 보이고, 

아기자기하고 발도르프적인 따뜻한 느낌.. 여기저기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보였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 만들기 작품들은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었다. 

같은 꽃을 보고 따라 그리더라도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정말 하나도!! 획일화되지 않은 모습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매일 어린이집 근처에 있는 숲으로 여행 같은 산책을 다닐 수 있다는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에게 자연은 꽤 큰 선물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하여 약 10개월 전부터 어린이집 대기 명단에 큰 아이 이름을 올리고, 

입소할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여기서 잠! 깐! 

내가 누구인가! 나름 치열한 방송계에 있으며 산전수전 몸으로 겪으며 늘 맞고 틀림을 따지던 난데?

SKY를 목표로 아이를 키우겠다고 썰을 풀던 난데?!

남편 말을 한 번에 그렇게 잘 듣는 성미도 아닌데... 단박에 결정했을까?

역시 아니지. 

사실 큰 아이를 대기 명단을 걸어 놓고도 숱한 고민을 했다. 

머릿속으로는 숲 어린이집을 생각하면서도 

사실 마음 한 켠에는 근처 내로라하는 사립 유치원들을 쟤고 있었다. 

(물론! 뭐야! 그렇게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면서 왜 흔들려? 라고 생각 할 수는 있다...)


그리고 동네 마실 멤버들과 일명 "유치원 설명회 투어"를 돌며 유치원들을 비교 하기 시작했더랬다. 


먼저 A유치원은 이름부터 예술이 붙어있었다. 

왠지 들어가면 피아노부터 바이올린까지 음악적 재능부터 시작해서 온갖 예술적 재능을 

쫙쫙 끌어올려줄 것만 같았다. 

집에서 2분 거리에 위치했으며, 원복에서부터 느껴지는 럭셔리함이 사실 끌렸다. 

게다가 A 유치원은 들어가기면 하면 엄마들이 떡까지 돌리며 입학 기념을 

동네방네 자랑한다고 소문난 곳이었다! 

하지만.. 교실에 그려진 그림은 하나 같이 다 똑같았다. 크레파스를 그린 그림이 쭉 걸려있었는데 

하나도 다르게 그린 아이들이 없었다. 다 똑같은 색으로 순서대로 그려 넣어져 있었다...


다음은 B유치원! 

이름에 자연이 들여가 있어서.. 정말 내가 원하는 자연과 요즘 원하는 교육을 적절히 섞어놓은 곳일 거라.. 

기대를 가득 품고 유치원 설명회에 참여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며 인재를 만드는 곳이라고 떠들기 시작. 

유치원 놀이터에는 인조 잔디도 아니고 초록색 부직포가 깔려있었고 주변은 개발 공사 중이라서

늘 큰 차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하나도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더욱이 놀라웠던 것은 아이들이 조별 과제로 만들었다고 하는 로봇은 전혀 창조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자연스럽지도 않았고 뭔가 인위적인 느낌만 가득했었다. 

(특정 유치원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없음 /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며 감정임)


그렇게 두 군데의 유치원과 숲 어린이집을 고민했었다. 

지금에야.. 

고민 따위 필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 나는.. 왠지 내 새끼가 남들이 다 다니는 유치원에 안 가면, 

초등학교 가서도 왕따를 당할 것 같고 사회에서 뒤떨어지는 느낌이 가득했다. 

뭐든 앞서 나가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더 잘난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술'이든 'fake자연'이든.. 

학교 생활에 뒤처지지 않는 곳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 결정의 날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12월 말 동네 유치원들은 일제히 '유치원 추첨'이라는 것을 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신청도 하고 추첨도 하는 것 같은데, 큰 아이 때는 오로지 오프라인으로 

신청과 추첨을 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같은 날 추첨을 진행하는 유치원들도 있었는데... 

사실 유치원 원장들끼리 친한 사이라서 날짜를 맞췄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그거야 어쨌든.. 내가 생각하던 'A'와 'B'유치원은 같은 날 추첨을 했다. 

여기서 007 작전 버금가는 쇼를 벌였는데, 

나는 집 앞 'A'로 가서 추첨을 기다렸고  남편은 'B'에서 추첨을 기다렸다. 


내가 간 집 앞 'A'의 상황은 이랬다. 

동네 마실 멤버들 모두 가깝고 커리큘럼 훌륭한 'A'가 되길 간절히 빌고 있었다. 

그 유치원만 된다면 한 턱 크게 쏜다며 저마다 소원하고 있었다. 

교실마다 사람들이 가득하게 있었는데 살다가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 

추첨 표 받는 줄만 해도 점심쯤 시작해서 저녁때까지 표를 받을 정도로 엄청나게 길었다. 

정말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드디어 원장이 추첨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간절히 빌고 원하는 유치원에... 

큰 아이 이름이 세 번째로 호명 되었다! 추첨에 뙇!!! 되어 버린 것이었다. 

환호를 할 수도 없었고, 인상을 쓸 수도 없었고 굉장히 반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은... 

복잡 미묘한 감정이 순식간에 나를 감싸 안았다. 


일단 추첨에 성공한 사람은 유치원 입학원서까지 작성하고 갈 수 있었는데.. 

묵묵히 입학원서까지 작성했다. 

작성하는 내내 '이게 아닌데? 이상하다? 이 찜찜한 기분은 뭐지?'라는 생각으로 대충 썼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9시. 'A'에 전화를 걸었다. 

"어제 추첨된 OOO 엄마입니다. 입학 원서까지 썼는데요. 그 유치원 안 보내려고요. 다른데 보낼래요. 

저희 아이 이름 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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