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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정 Aug 12. 2023

에드워드 호퍼가 담은 고독한 세상

우리는 모두 고독하다 :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관람기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이라 불리는 에드워드 호퍼의 국내 첫 개인전에 다녀왔다. 나에게는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화가이자 더 알아가고 싶은 화가로 기억될 그의 전시를 소개한다.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길 위에서(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라는 이름에 걸맞게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등 그가 지내고, 또 여행했던 장소들을 따라가며 감상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었는데, 장소에 따라 그가 어떤 풍경과 장면들에 관심을 두었는지가 달라졌기에 그 변화를 느끼며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그가 그림을 그리던 미국의 시기(1920~30년대)는 1차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을 지나며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 고독 등이 깊어졌던 시기였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부분의 작품에서 조용함을 넘어 적막함과 고독함이 느껴졌고, 의도한 듯 극대화한 그 고독함을 바라보며 때로는 많은 생각이 뒤엉키기도, 때로는 머릿속이 텅 비어지기도 했다.




에드워드 호퍼, <푸른 저녁(soir Bieu)>, 1914


 호퍼의 세 번의 파리 여행 이후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담아 탄생한 이 작품은 가로 180센티가 넘는 크기로 규모가 컸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소수의 사람이 등장하는 그의 작품 중 무려 7명의 사람이 한 프레임에 담겨 있는 작품이었기에 더욱 눈길이 갔다. 자세히 보면 그림 속 사람들의 시선은 각기 다른 곳을 향하고, 그림을 세로로 분할하는 듯한 좌측 회색 기둥은 인물간 단절된 느낌을 극대화한다. 특히나 화면 중앙 흰색 옷을 입고 얼굴에 분장을 한 피에로는 한눈에 보기에도 시선이 집중되는 모습이지만 그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한 채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로 사색에 잠겨 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피에로는 당시 미술계에서 화가로 인정받지 못한 작가의 심리를 투영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평범한 옷을 입은 군중 속 인물로 표현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당시 작가의 정체성과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까지 투영 대상을 피에로로 지정함으로써 낱낱이 담아낸 점이 놀라웠다.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과 현실의 갭이 절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질 때, 그 무기력함과 막막함은 존재의 의문마저 느끼게 만들지 않았을까.


 또한 이 작품을 통해 교류와 교감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큰 고립감과 적막함을 만들어 내는지 깨달았다. 단순히 어두운 색감이나 아무도 없는 장면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느낌 말이다. 호퍼의 이야기를 담아낸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의 저자(마크 스트랜드)는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을 '배역을 상실한 등장인물'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는데 내가 느낀 기분을 정확하게 담아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 <밤의 그림자>, 1921 / 우 <밤의 창문>, 1928


 도시의 풍경에 관심이 많았던 호퍼는 겉으로 보이는 도시의 화려한 모습이 아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과 심리를 담아내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 특히 그가 선택한 구도가 매우 남달랐는데, 그중에서도 ‘밤의 그림자’와 ‘밤의 창문’이 인상적이었다.


 에칭 작품인 ‘밤의 그림자’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건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색다른 구도를 취했다. 이는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을 죽이고 그가 향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따라가게 만들었고, 늦은 시간 혼자 어디를 가고 있는 것인지, 무슨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지 작품에는 드러나 있지 않는 인물의 서사에까지 관심이 가게 만들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실제로 1940년대 누아르 영화 스타일을 비롯해 많은 영화계 거장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의 센스에 감탄했던 작품!

 ‘밤의 창문’은 직접 마주했을 때 그 분위기가 참 오묘했다. 바라보고 있지만 원치 않게 보게 되었다는 약간의 불편함까지 함께 느껴져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왔는데, 건물의 둥근 모서리를 그 위치로 선정함으로써 보다 입체적으로 창문 너머 개인의 사적인 모습에 접근하게끔 하는 듯했다.


 밤은 편집되고 꾸며진 모습에서 벗어나는 시간이자 밖으로 향했던 관심이 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어쩌면 도시에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관음 하는 시선을 통해 꾸며지지 않은 솔직한 모습의 타인과 교류하고자 하는 소극적인 욕망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 아닐까. 소외, 고독, 단절이 만연한 도시의 단상을 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적인 유대를 갈망하는 듯한 시선에 그 여운이 꽤나 오래 남았다.



좌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 우 <햇빛 속의 여인>, 1961


 호퍼의 그림에서 빛의 존재는 매우 강렬하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나 유럽의 인상주의가 공기 중에 퍼진 부드러운 느낌의 빛을 포착해 담아냈다면 호퍼는 빛만큼이나 그림자를 강하게 표현하여 시시각각 변화하는 느낌보다 마치 몇 시간이고 같은 자리에 머무를 것 같이 빛을 표현한 점이 신기했다.

 

 호퍼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알려진 '이층에 내리는 햇빛'을 마주했을 때, 휴양지에 와 있는 듯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호퍼의 설계에 따라 마치 건물의 벽이 된 듯 견고하게 붙어 있는 빛의 구성과 표현은 한 폭의 그림만으로 나의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림 속 두 사람의 시선 끝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드넓은 들판, 그리고 그 풍경을 비추는 강렬한 햇빛. 잠시나마 이층 테라스에 앉은 사람이 되어 지면으로 떨어져 가는 해를 바라보는 상상.

 '햇빛 속의 여인'은 창문을 통해 실내로 깊게 들어와 여인을 비추는 빛을 담고 있다. 자유로운 몸으로 빛을 온전히 받아내는 여인은 한참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던 듯한데, 여인의 표정이 밝은 것도, 이야기를 나눌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나에게는 오히려 고독함 보다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 외에도 호퍼의 여러 작품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이는 빛의 활용은 그가 깊은 고민을 통해 빛과 그림자를 마치 조각하듯 빚어내어 때로는 대상을 더욱 고독하게, 때로는 마냥 고독하지만은 않게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어 이 또한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였다.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에서 호퍼의 그림을 통해 마주한 고독은 나에게 '외로움, 쓸쓸함'보다 '고요함, 차분함'으로 다가와 잠깐 멈췄다 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고독함이 극대화된 호퍼의 그림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마 우리 모두가 고독을 경험하고, 때로는 고독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다양한 매체를 통해 타인과 더욱 쉽고 빠르게 연결되지만 오히려 더 자주 고독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호퍼는 고독이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군중에서 벗어나 홀로 느끼는 고독의 시간을 충분히 향유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아껴주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습작으로만 만나볼 수 있었던 호퍼의 대표작 '밤을 새우는 사람들(Nightawk, 1942)'을 원작으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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