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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정 Jun 30. 2024

응축된 감정과 거침없는 표현력, 베르나르 뷔페를 만나다

베르나르 뷔페-천재의 빛 : 광대의 그림자 관람기

  바쁜 삶을 잠시 뒤로하고 꼭 가보고 싶었던 전시가 있어 다녀왔다. 바로 '베르나르 뷔페'의 사후 20주년을 기리는 회고전. 7개의 주제별로 구성된 전시는 기괴함, 그로테스키함, 우울함과 고통스러움으로 뒤엉킨 뷔페의 그림들을 단순히 '이상하다'가 아닌 작가가 그러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히 이끌었고, 뷔페가 일평생 추구한 구상회화 화풍과 그림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 Subject 1. 매일의 삶을 그리다

- Subject 2. 천재의 빛

- Subject 3. 광대의 그림자

- Subject 4. 내 바깥세상을 보다

- Subject 5. '인간의 조건'

- Subject 6. 나의 사랑 아나벨

- Subject 7. 죽음


  베르나르 뷔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프랑스 화가라는 사실뿐이었지만, 섹션을 하나하나 지날수록 어느새 그의 삶에 빠져들어 안타까워했다가, 놀랐다가, 응원했다가 그곳에선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며 전시장을 나서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전시. 작품 하나하나 잔뜩 응축된 그의 감정과 절규, 고민이 담겨있어 몰입하게 만들었던 그의 전시를 소개한다.



  전시장에 입장했을 때, 나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뷔페가 그린 인물의 모습이었다. 죽어가는 식물처럼 비쩍 말라비틀어진 행색, 날카로운 직선으로 이루어진 각진 신체 표현, 마치 물건을 그린 듯 생기란 찾아보기 힘든, 무표정의 그림 속 인물들은 어딘가 슬프거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림 속에서 인물들이 어떤 성별,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는 무의미해 보였고, 뷔페 본인의 모습을 담아낸 자화상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베르나르 뷔페, 좌 < 두 여인, 1950> / 우 < 자화상 13, 1981>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이라는 믿기 어려운 참혹한 현실에 더하여 아버지의 부재와 유일하게 사랑을 느꼈던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뷔페는 "나는 살아있는데도 죽음이 보였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살아내며 세상을 향한 분노와 냉소, 우울감을 그림에 표출했다고 한다. 스스로를 시체와 다름없이 표현한 그의 자화상을 보며 자신을 이렇게나 무자비한 시선으로 보아야만 했을까 싶어 안타깝다가도 스스로의 이러한 모습을 냉소적으로 눈앞에 꺼내어 마주하는 행위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였다면, 슬픔과 우울함에 빠진 스스로를 어떻게든 외면하고 회피하려고 했을 텐데 말이다.

  정물화, 풍경화 역시 날카롭고 공허했기에, 처음에는 사람들이 차갑고 어두우며 음침한 분위기의 그의 그림에 왜 열광했을까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배경을 알고 나니 눈앞에서 전쟁과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고, 비참한 삶을 견뎌내던 당시 프랑스인들에게 뷔페의 그림은 사실주의보다 더 사실 같은 현실을 보여주며 모두가 다 같은 아픔과 고민 속에 살고 있음을 일러주는 위로가 되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베르나르 뷔페, 좌 <Tate de clown, 1995> / 우 <Clown à la cravate mauve, 1991>


  일찍이 세상의 스포트라이트와 손가락질을 모두 겪은 뷔페는 추상회화가 주류로 떠오르며 자신을 향한 환호가 비난이 될 때에도 꿋꿋이 자신만의 구상회화 화풍을 고집했는데, 광대 시리즈에는 그 이면의 고뇌와 고독함, 슬픔 등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특히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이기도 한 '광대의 얼굴'의 푸른 배경 속 회색빛 광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우수에 찬 표정으로 관객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어 그 눈빛이 자리를 뜬 뒤에도 계속 아른거렸다.

  다채로운 색과 우스꽝스러운 분장으로 채워진 그의 광대 그림들을 보며 누구나 보여야 하는, 혹은 보이고 싶은 모습 뒤에 진짜 모습을 감추고 살 때가 있을 텐데, 중요한 것은 분장을 지웠을 때의 스스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불안함, 부족함 등을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뷔페는 광대를 자주 그렸던 이유를 ‘온갖 변장과 희화화로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나에겐 오히려 그의 슬픔과 두려움 등이 광대의 분장 속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듯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뷔페, 좌 < 앉아 있는 아나벨, 1959> / 우 < 라 봄 - 내실, 1987>


  본 전시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또 다른 포인트는 그의 뮤즈 '아나벨 뷔페'를 만난 뒤 변화된 작품의 느낌이다. 1958년 아나벨을 만난 뒤 흑백으로만 보던 세상에 마치 색을 끼얹은 듯 그림에서는 한층 활기가 돌았고, 특히 그림 속 아나벨의 모습은 부드럽고 아름다웠으며 눈빛에서는 공허함이 아닌 생기가 느껴졌다. 단 몇 점의 그림이었지만 아나벨을 바라보던 뷔페의 시선까지도 느껴지는 듯한 그림들 앞에서 이전의 뷔페의 자화상은 잊히는 듯했다. 예술가에게 '뮤즈'가 어떤 존재인지 그 어떤 설명보다 잘 와닿았던 섹션이었다.

  '라 봄'은 뷔페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나벨과 함께 살았던 프랑스 남동부의 집으로, 색감과 분위기만으로도 늘 고독하고 불안했던 그가 유일하게 편안함을 느끼며 머물던 장소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이 시기 그려진 <샤노나, 호수, 오베르뉴 지방>, <로스포르당, 소나무 뒤에서 본 성당> 등의 풍경화들의 느낌 또한 너무나도 좋았기에, 전시에 간다면 꼭 눈여겨보기를 추천한다.



베르나르 뷔페, 좌 <La mort 10, 1999> / 우 <Squelette en prière - 1998>


  마지막 섹션 '죽음'에 입장하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숨을 죽였다. 97년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그는 6개월 동안 24점의 죽음 연작을 그린 뒤 99년 검은 비닐봉지 위에 마지막 사인을 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정말 뷔페다운 피날레라고 생각했다.

  일평생 우울함과 고통스러움 속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를 되물으며 살아온 그가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모든 고민을 쏟아내듯 그린 듯한 해골 연작은 자신을 지금까지 살게 했던 그림과의 작별을 고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다만, 작품 속 해골들은 가만히 누워있는 것이 아닌 옷을 입고, 기도를 하고, 심지어 그 안에는 힘차게 뛰는 듯한 심장도 보이는데, 나에게는 마치 죽음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죽음이 아닌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살아생전 무려 8,000여 점의 그림을 그려냈다는 베르나르 뷔페. 그림이 존재의 이유였다는 뷔페의 말을 곱씹으며 전시장을 돌아보는 내내 나에게 뷔페의 그림만큼의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은 무엇일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의 그림에 대한 깊이를 따라가기는 어렵겠지만,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는 삶은 훗날 어느 시점에서 돌아보아도 후회가 아닌 확신으로 가득 찬 제법 멋있는 삶일 것 같았다. 마치 죽음을 앞두고 작업하는 뷔페의 모습에서 느꼈던 흔들리는 손도 막지 못한 확신에 찬 붓질처럼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내 그림은
내 인생의 모든 단계를 관통하는 실과 같아서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왔다.
삶은 계속된다.


*사진 촬영이 불가한 전시로 작품을 담아 올 수 없어 아쉽다면, 아래 사이트들에서 뷔페의 작품들을 다시 떠올리며 그 여운을 즐겨보시길!

https://www.wikiart.org/en/bernard-buffet

http://www.museebernardbuff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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