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정정 Jun 13. 2022

그가 꿈꿨던 자유로움 속으로

물음표를 따라 만나는 '호안 미로' : 호안 미로-여인, 새, 별 관람기

 5년 전 유럽여행을 할 때 방문했던 바르셀로나에서 우연히 들은 '호안 미로'라는 이름만 듣고 덜컥 예매하고 다녀온 전시. 알고 보니 피카소, 달리와 함께 스페인 3대 거장으로 불리는 대단하신 분이었던 호안 미로의 전시는 내가 지금까지 접했던 추상미술, 혹은 초현실주의를 다룬 전시 중 가장 많은 물음표를 남긴 전시였지만, 나로서는 어딘지 모르게 '기분 좋은 물음표'로 기억될 것 같은 시간이었다.




'기호의 언어 - 해방된 기호 - 오브제 - 검은 인물' 네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진 전시는 첫 세션부터 마지막 세션까지 한 개의 예외도 없이 모든 작품이 보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고, 처음 마주했을 때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다른 관람객들은 처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다들 나처럼 느끼고 있는지 아무나 잡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하면 나의 당황스러움이 느껴질까.)

하지만 해석하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눈을 사로잡는 밝고 선명한 색과 귀여운 느낌의 기호와 형상에 괜스레 웃음이 나왔고, 어느 순간 호안 미로가 보던 세상이 궁금해졌다.


호안 미로, < 빗 속의 사람들, 1942 > / < 새들, 1956 >


 아무렇게나 그은 듯한 선들, 그 속에서 유추되는 귀여운 형상의 물체들. 전시 초반에 만난 작품들 중에서는 가느다란 선과 물감이 한데 섞인 그림들이 있었는데, 보고 있으면 그림이 평면에 그려진 느낌이 아닌 선과 색이 떠다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빗줄기도, 새도, 사람도 굵은 붓으로 묵직하게 누르기보다는 가볍게 내려앉아 언제든 다시 떠오를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더욱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았던 작품들은 전시장에 들어오면서부터 '어렵다'를 연신 중얼대던 나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바라봐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림 속 선들이 떠오르는 대로 그은 것은 아닐까 싶던 찰나, 전시장 영상 설명을 통해 이것이 시적 기호이며, 그가 목록을 작성하듯이 자신이 만든 기호들과 각각의 기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남겨두고 그림마다 포함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호안 미로에게 작품 속 기호란 그 의미가 남달랐다. '호안 미로는 자신을 표현할 시적 기호로서의 언어를 통합하는 데 매진했다'라는 말의 의미를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설명을 듣고 나서 그림을 천천히 보다 보니 그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시와 그림 그 경계 어디 즈음에 있는 그만의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은 시로, 연설가는 말로 표현하듯 호안 미로의 작품은 그만의 언어로 표현된 결과물이라는 것. 흥미로웠다.



 

 호안 미로의 작품에는 '여인, 새, 별'이라는 모티브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각각의 대상에 대하여 그가 부여한 의미를 이해한 뒤 작품에 나타난 형상을 찾아보는 것도 전시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관람 포인트이다.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새'라는 존재에 대하여 그가 어떻게 느끼고 표현했는지가 인상 깊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가져왔다.


호안 미로 < 새들, 1971 >


 세로로 길게 그려진 것부터 시선을 사로잡던 '새들'이라는 작품은 나에겐 정지된 새들의 모습보다는 여러 마리의 새들이 힘차게 지나다닌 흔적을 담아낸 모습처럼 느껴졌고, 검은색 사이사이 칠해진 색들은 서로 다른 새들이 지나간 자리를 표현한 것처럼 보였다. 새들이 지나간 흔적이라고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캔버스 밖까지 계속해서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떠올라 벽에 걸린 캔버스가 '기다란 창문'처럼 느껴졌는데, 좁은 캔버스 안으로 머릴 내밀고 들여다보면 그림 속 흔적의 주인공인 새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새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신선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


새는 내가 공간을 생각하고 있고, 좋아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어
여기에 날아온 것이다.
그래서 밤 앞에, 땅 가까이에 두었다.

 새로 하여금 공간을 생각하고, 좋아한다는 사실을 느꼈다는 그의 말은 곱씹을수록 놀라웠다. 빠른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걷다가 힘들어서 잠시 벤치에서 쉬고 있을 무렵,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앞에 앉았다가 금세 다시 날아가 버리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때 나의 시선도 날아가버린 새를 따라 하늘로 향하고, 그때서야 앞만 보느라 몰랐던 하늘이 시야에 들어와 고개를 잔뜩 젖혀 구름을 찾아보고, 새는 어디로 갔을지 잠시 생각해보기도 하지 않는가. 비로소 발을 딛고 있는 땅 이외에 하늘까지 내가 지금 서 있는 공간이 입체적으로 와닿는 느낌. 호안 미로는 그 기분을 오래도록 느끼고자 자신의 그림에 계속 잡아둔 것 같다고 나름의 즐거운 생각을 덧붙여 보았다.


 호안 미로에게 '새' 란 '자유'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여인에 '우주'의 의미를 담아 그리고,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작품마다 녹여냈던 그에게 새는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과 그가 갈망하던 우주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이어지게 하는 꿈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마지막 세션 '검은 인물'에서는 호안 미로의 스타일이 확립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세션 이름처럼 검은색이 작품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붓질도 전반적으로 거침없어진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확신에 차서 그린 듯한 에너지가 느껴져 시선을 고정한 채 한참을 바라보았다.


호안 미로 < 몬로이치 I, 1974 > / < 몬로이치 II, 1974 >


 '몬로이치'란 호안 미로가 태어난 카탈루냐 몬로이치 지방의 로마네스크 성당에 있는 성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시리즈로, 작품 곳곳에 사람의 눈처럼 보이는 형상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체불명의 생명체, 혹은 괴물처럼 보였던 이 그림이 성당에 걸린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이 의외였고, 주제를 막론하고 대상을 자신의 세계로 옮겨와 표현해 내는 호안 미로의 독창적인 작업을 잘 보여주는 듯하여 인상 깊었다. 검은색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여 자칫 어둡고 무서운 느낌을 줄 수 있었으나, 음영 사이를 채우는 강렬한 원색들과 움직이는 듯한 가는 선들, 손바닥을 찍은 듯한 표현 방법 등은 익살스러움과 함께 작품의 역동성을 더하고 있었다. 호안 미로는 자신의 작품에 에너지와 생동감을 부여하는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화가임이 틀림없다고 느낀 순간이다.


 이번 전시는 호안 미로의 작품 활동 후반기 40년의 작품을 다루는 전시인 만큼, 전시 후반 명확한 그의 스타일이 드러난 작품들은 대체로 그가 여든을 바라보거나,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확신에 찬 에너지 가득한 붓질이 당시 여든 세의 할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라니! 자신의 인생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작품 하나를 마주했을 때 수많은 생각과 질문을 품게 만들었고, 끝까지 이해가 가지 않아 질문을 품은 채 지나쳤던 작품들도 많았지만, 그저 이해할 수 없고 어려운 전시라고 하기엔 처음 느껴보는 신선한 자극이 쉽게 잊히지 않았던 전시. 아마도 그 이유는 드로잉과 회화의 경계, 형태와 비율의 기준과 제한을 무너뜨리고자 계속해서 시도했던 자유분방한 호안 미로의 노력이 작품에 담겨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기회가 된다면 호안 미로의 초기, 중기 작품을 함께 보며 그가 표현하는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조금 더 알아가고 싶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따뜻한 차와 함께 나에게만 집중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