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의 이유, 나의 첫 펜팔 친구.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by 호호찐빵

말 없는 자는 상대를 수다쟁이로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대화의 빈틈을 채우려는 본능 때문에 '말'이라는 심리적 개입을 한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에게 오히려 속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 심리적 개입의 예다.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대화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편지는 독특한 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문자나 카카오톡과 달리 즉각적이지 않기 때문에 넓은 을 만든다는 것이다. 나와 펜팔 친구는 빈틈을 메우려 비밀스럽고, 깊은 이야기를 편지에 빼곡하게 써 내려가곤 했다.

펜팔 친구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9시까지 이어지는 야자는 지루했고,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인터팔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펜팔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여자라면 메시지를 던지고 보는 남자부터, 아시아에 대한 호기심으로 아시아 친구만 구하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의 외국인이 있었다.


나는 몇 번의 메시지 끝에 한 친구를 알게 됐다. 한국 아이돌에 관심이 많은 친구와 동방신기 덕질에 빠져있던 나는 공통점이 많았다. 영어라곤 이거 얼마예요?, 화장실은 어디 있어요? 와 같은 생존 영어만 할 줄 알아서 번역기를 통해 첫 편지를 썼다.

20190720_111254.jpg S에게 받은 편지. 하트 모양의 지구가 그려진 우표만 보면 반가웠다:)


꼬부랑 영어 필기체, 이름만 들어본 네덜란드라는 나라, 외국 우표. 신기하고 생소했다.

나는 S에게 보내는 편지에 비밀들을 하나하나 눌러썼다. 가족 이야기, 속상했던 일들, 좋아하는 사람 등. 우리는 편지가 주는 넓은 틈을 착실하게 메워가며 친해졌다. 편지지에 쓰고도 모자랄 때는 노트를 쭉 찢어서, 때로는 사진도 보내면서 작은 일 하나에도 눈물부터 나던 서로의 10대를 위로했다.


누구보다 나와 가까웠던 편지는 내가 고3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며 횟수가 줄어갔다. 어린 날의 추억으로 끝나겠지 싶었다. 옛 기억에 오랜만에 들어간 인터팔에서 메시지를 보기 전까지는.


자기 친구 2명과 함께 대구에 오겠다는 S의 메시지였다. 언젠가 편지에서 성인이 되면 ‘널 보러 갈게!’라는 밥 한번 먹자~와 같은 약속을 진짜 지킬 줄은 몰랐다. 번역기 없이 어떻게 놀지? 감동과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 싶어 친구 J와 함께 가기로 했다.





가만히 있어도 등에 땀이 주르륵 흐르는 8월의 반월당역. 갈색머리 외국인 3명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나는 S와 반갑게 포옹했다. 약 3년 반이라는 시간을 넘어 S와의 인연이 직접적으로 닿은 순간이었다. 친구들은 대프리카의 열기마저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나는 핸드폰 사전을 찾아가며 손짓 발짓으로 소통했다. 스티커 사진을 찍고, 고택에 가서 한옥을 보고, 삼겹살을 먹었다.


더워서 내내 땀을 흘렸지만, S가 있어서 좋았다. 유창한 영어가 아니어도 소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친구들을 배웅해주면서 다음번에는 내가 네덜란드로 가겠다고 했다. 지나가는 말로 끝나는 약속이 아니라 지키는 약속을 하고 싶었다.


친구들이 떠나고 일 년 뒤, 휴학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직 알바는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다. 친구를 볼 거라는 기대와 유럽이라는 낭만이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줬다. 스물세 살의 생일날, 나는 J와 함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첫 해외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말 없는 자는 상대를 수다쟁이로 만든다는 문장은 안타깝게도 작자 미상의 문장이다. 이 문장을 처음 보게 된 건 '생각의 기쁨'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