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둥그니까~자꾸 걸어 나가면~길을 잃지.
네덜란드로 가는 비행기 안. 나와 J는 흔들림을 느끼며 꾸역꾸역 기내식을 먹고, 잠을 잤다. 언제 도착하는 걸까 하는 기다림이 ‘집에 가고 싶다.’로 바뀔 즈음 10시간 50분의 비행이 끝났다. 나와 J는 공항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친구들을 만났다. 암스테르담을 안내해주고 싶어서 새벽부터 공항에 마중 나와 준 친구들이 고마웠다.
한국에서의 짧은 만남 뒤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친구들은 여전했다. 서로 반가움을 표하고 암스테르담 시내로 이동했다. 여행의 시작이라는 설렘도 잠시, 역을 나오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여행 때마다 비를 몰고 다닌다. 캐리어에서 주섬주섬 우비를 꺼내 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 길 곳곳에 세워진 자전거, 운하가 지나가는 다리. 나는 금방 암스테르담과 사랑에 빠졌다. 빨간색 암스테르담 시티카드를 꼭 쥐고 알록달록한 집들을 구경하며 걸었고 어느 나라에나 있는 맥도널드에 깔깔대며, 큰 건물 앞에서 우비를 입은 채 사진을 찍었다.
네덜란드니까 풍차도 보고, 고흐도 보고, 배를 타고 운하도 구경해야겠지. 머릿속에 빼곡히 들어찬 나의 여행 계획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어긋나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와의 다툼으로 기분이 좋지 않던 펜팔 친구 S는 집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당황스러움과 얼떨떨한 기분으로 떠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봐야 했다.
S의 친구 2명이 남아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 일이 터졌다. I’ AMSTERDAM 조형물을 보기 위해 국립미술관에 도착했을 때 M은 중요한 티켓을 두고 왔다고 했다. 다시 갈 수 있다, 없다로 싸우던 M과 B는 티켓을 가지러 갔다 오겠다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나와 J만 남았다. 우리는 현실을 자각했다. 친구들만 따라다녀서 길을 모르고, 와이파이는 터지지 않으며, 폰 데이터는 한국에서 정지시키고 왔다. 믿었던 여행 책자는 숙소에 있다. 우리는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대책 없는 자유가 주어졌으니 신나게 받아들일 수밖에. 조형물 앞에서 사진도 찍고,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어딘지 모르겠다 싶으면 미술관이 있는 큰 건물 쪽으로 되돌아갔다. 오래 걸으니 배가 고파서 눈앞에 보이는 푸드트럭에서 핫도그를 사서 벤치에 앉았다.
계획에서 어긋났을 때 여행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따라다니느라 못 봤던 이곳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 몸만큼 큰 가방을 메고 뒤뚱뒤뚱 걷던 꼬마, 우리의 셀카봉을 보고 ‘selfie(셀피)’라고 해맑게 웃던 소년,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던 커플. 그들의 일상에 스며든 느낌이었다. 완연한 일상을 만끽하고 나자 친구들이 돌아왔다.
우리는 반 고흐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빈센트 반 고흐. 그의 명성답게 박물관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를 자세히 알고 왔더라면 나는 그곳에서 깊은 슬픔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박물관 밖의 건물들은 아기자기하고, 트램이 지나가는 길은 평온하고, 운하가 있는 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풀어지게 만드는데 그의 인생은 쓸쓸함과 가까웠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굿즈 하나 못 사온 게 아쉽다.
반 고흐가 살았던 나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따뜻함이 있는 나라.
계획에 없던 길을 걷고, 일상을 엿보면서 암스테르담이 더 좋아졌다.
도시를 더 사랑하기 위해 나와 J는 느리게 걷는 여행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