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글 주제 - 자유
왼손잡이에게 손 글씨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 결과물이다. 적어도 20년 넘게 연필을 잡은 내겐 그렇다. 가장 큰 이유는 아주 과학적인 구조에 근거한다. 바로 샤프나 펜의 앞부분의 결착부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나사의 원리에서 오른쪽으로 돌려서 다른 물체들이 열리도록 설계됐다. 페트병 뚜껑이나 화장품 뚜껑 등을 생각해 보면 쉽다. 펜, 만년필, 샤프 헤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이게 우리 왼손 글쓰기 무리에게 문제냐면 우린 힘을 반대편으로 줘서 글을 쓰기 때문에, 결착부가 열린다! [사진1]의 손그림을 참고해서 보면 왼손 세 번째 손가락으로 펜 헤드를 지지한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한글을 써내려가는 반면 몸통을 잡고 있는 엄지와 검지는 반대방향 또는 방향 없이 힘을 준다. 이렇게 되니 결착부를 살며시 왼쪽으로 돌려 분리하는 것처럼 펜이 느슨해져 버리는 것이다. 아직 내가 마주치고 사용한 펜과 샤프는 모두 이렇게 분리형이었다. 일체형은 거의 기억나지 않고, 있었다고 한들 필기구로서의 기능이 부족해 내게 선택받지 못했을 테다. 그래서 난 초등학생 때부터 이런 불편을 몸으로 고스란히 깨달아 연필을 손에 쥐고 글을 써왔다. 연필로 글을 오래 써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게 힘이 꽤 많이 든다. 이 이유는 긴장해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샤프나 펜을 잡고 쓸 때보다 연필 잡고 오래 글 쓸 때가 손가락과 팔이 더 아팠다. 이렇게 두 갈래의 선택 모두 왼손잡이가 손 글씨를 쓰는 덴 상당히 노고가 따르게 된다.
아픈 손가락을 뒤로 한 채, 내 글씨체의 특별한 모양이 하나 있다. 왼손으로 글씨를 쓴 영향으로 만들어졌지 싶다. 수학 기호로 쉽게 보는 시그마 ’σ’ 모양이 군데군데 숨어있다는 것이다. 자음 ‘ㅂ’을 쓸 때나 ‘ㅇ’과 모음 ‘ㅓ’ 또는 ‘ㅕ’ 등과 결합할 때 한 획으로 쓰려고 하다 보니 이런 특징이 생겼다. 후자의 경우는 ‘언’, ‘연’ 등에서처럼 좌우 반전된 시그마 모양이다. 내 글씨체에 고유한 성질을 발견해서 신기하기도 하고 더 특별해진 느낌과 내 분신을 깊게 마주한 것 같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