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글 주제 - 데이트
오늘의 이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 가져가고 싶다. 충만한 이 감정을 물질로 남겨 언제까지나 지금을 간직하고 싶다. 애잔한 소망은 의지를 가져 현현한다. 기념품이나 선물이 되어 우리의 품속에서 빛난다.
관심 있던 회화 전시가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원화 전시였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느냐 소식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예매했다. 설레는 마음과 함께 친구와 전시를 즐겼다. 무척 좋아하는 작가여서 작품 배경을 조금 더 아는 내가 전시 설명집도 만들어갔다. 비록 전문가용처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얼추 도움 됐겠거니 믿는다. 그 자료를 구상하고 제작하는 일도 전혀 수고스럽지 않고 재밌었다. 누군가에게 자기 취미를 공유하는 즐거움은 원하던 걸 이뤘을 때의 성취감처럼 둥실둥실 기분 좋은 마음이다. 게다가 상대가 성심껏 관심을 둔다면 더더욱 신나는 시간이 된다. 마치 그때만큼은 능변가가 된 양 어떤 점이 왜 좋은지 또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린아이처럼 떠들어댄다. 그러다 흥분에 빠진 저를 살짝 알아채고 짐짓 평정을 되찾으려 하지만 들뜬 기색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그런 열성으로 구석구석까지 관람을 마치고, 쏜살같이 흘러간 시간과 또 관람하고 싶은 공간을 남긴 채 회장 출구로 나섰다. 들어갈 땐 한 번 쓱 보기만 했던 기념품 판매대에 시선이 머물렀다. 행복한 순간이 끝났다는 아쉬움과 더 보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친구와 같이 즐겼던 그 시간을 간직해야만 했다. 불현듯 그런 의무감이 들었고 언제나 비싸서 엽서만 사던 내가 최고가 기념품 전시도록을 들춰보고 있었다. 정말 사기로 마음먹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가격이 상당했지만, 오늘 재밌게 음미했던 작품이 전부 수록된 데다가 전문가의 짧은 해설까지 적혀있는데 안 살 수가 없었다.
결제를 마치고 내 것이 된 도록을 양팔로 꼭 안았다. 양장의 쿠션감과 풀컬러 제본 용지의 묵직한 그 느낌이 좋았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고 기쁜 마음이 방방 뛰었다. 그때 갑자기 예전 여자 친구에게 사준 뜨개실이 생각났다. 내가 방방 뛴다는 마음을 느끼니까 선물을 받아 안고 엄청나게 좋아했던 그녀의 모습과 겹쳤다. 그제야 퍼뜩 한 사실을 깨달았다, 매번 뜨개 매장 데이트를 갈 때마다 마음에 드는 실을 계속 사고 싶어 했던 그녀의 마음을. 뜨개실의 고혹적인 색감과 부드러운 질감에 반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취미에 동참해 준 연인과 쌓은 행복한 오늘을 잊지 않고 싶어 했구나. 왜 그렇게 많은 실을 이미 갖고 있는데도 더 사고 싶어 했는지 내가 그 처지가 되고 나서야 이해했다.
나도 그녀도 추억할 물건을 갈구했던 것이다. 우리는 소중했던 순간을 고스란히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그런 날들로 하루하루 코를 잡으며 인생이라는 편물을 떠나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