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ne to Misery

토글 주제 - 한국 사회가 불행한 이유

by 주니모


좋아하는 영단어 중 'vulnerable'이라는 어휘가 있다. 뜻은 '취약한, 노출되기 쉬운'이란 뜻인데, 외부 환경에 민감하다는 맥락으로 자주 쓰인다. 주변의 무신경한 언행에 쉽게 상처받는 마음을 표현하기 좋은 단어다. 정체성 형성기인 청소년기의 정서는 특히 더 vulnerable 하다. 마음의 격동을 겪으며 자신의 신념을 만들어 나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건전하고 올바른 정서적 안전망도 요구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청소년은 가정에서 훈육받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 시간이 부족하다. 그 귀중한 시간을 경쟁과 비교에 쏟아 넣으며 항상 신경을 곤두세운다. 책임감과 자율성을 습득하는 자녀 교육은 요원하고 사회성과 창의력을 계발하는 놀이도 시험공부에 순서를 뺏긴다. 이로써 한국 청소년은 안전한 울타리 없이 심리적 위험 속에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 이때 부정적인 정서 경험을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면 회피 기제를 만들어내고 불안에 예민한 어른이 된다.


그런 vulnerable 한 심성 소유자의 일부가 Prone to Misery, 스스로 비참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불안하게 보여서는 안 돼.'

청소년 이명석이 가졌던 삶의 태도다. 동생 둘의 귀감이 되어야 했고, 공부를 잘해 가족의 기대를 받던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생 역할을 수행해 내야 했다. 경상도 유교 집안의 장손으로 원칙을 고수하며 예의 차리기를 중시했다. 그 어린 나이에 맞지 않은 무게를 짊어졌다. 그렇게 나는 까르르 웃어대거나 구슬피 엉엉 울어본 적 없이 의례상 미소만 짓곤 하는 사람이 되었다.


늘 경직됐던 내가 좀 힘을 뺀 건 기숙사형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나서다. 남자고등학교에서 눈치 볼 일 없이 나이에 걸맞게 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축구하고, 야식을 시켜 먹고, 좋아하는 책도 읽고, 가수 덕질도 해서 팬덤 문화 스피치도 하고, 한국 청소년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심도깊은 토론회도 열었다. 행복한 순간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짜릿하게 체육대회 배구 경기에 승리하고 방방 뛰며 소리 지르거나 열심히 공부해 세계사 1등을 한순간에 기쁨을 느끼고 자랑스러웠다. 돌이켜볼 때마다 건강하면서도 후회 없이 보냈던 값진 순간이다.


하지만 외롭거나 슬픈 감정은 스스로 부인했다. 그런 마음은 약한 자의 변명이라고 하찮게 치부했다. 기쁨은 학교 친구들과 나누기 쉬웠지만 외롭고 슬픈 마음은 여전히 꺼내기 어려웠다. 청소년의 부정 정서를 가장 잘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부모님과 막상 떨어져 있으니 강제로 자립이란 명목하에 감정을 억제했다. 그렇게 되니 패배나 실패가 두려워져 자신 없는 일은 슬슬 회피했다. 그러면서 '나는 좋아하는 것만 할 거야!'라고 합리화했다. 낮은 학점을 받아도 화내지 않고 신경을 껐다. 하나둘씩 그런 무책임한 결과가 축적되더니 기말 과제를 제출하지도 않는 대학생 이명석이 탄생했다. 자취는 오래 해 혼자 살기는 잘한다지만 내밀히 들여다보면 성숙한 자율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내 모난 점도 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 수준이다. 친구들과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주변에서 정서적 도움도 받고 나찾글 프로그램도 하면서 얼추 자립이 됐다. 다만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렸던 기간에 너무 쉽게 무너졌기에 힘들었다. 나 같은 경우가 더 있다면 Prone To Misery라고 느낄 사람이 몇몇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데이트의 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