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 일대기

토글 주제 - 클래식 1곡 듣고 쓰기

by 주니모

선정 작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임윤찬,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영상, 2022)


youtube-thumbnail-DPJL488cfRw-maxresdefault.png 마린 알솝 지휘자와 임윤찬


클래식 공연을 인생 처음 보고 나온 예술의전당 뒤편, 늦은 저녁의 햇살은 무지개색이었다. 콘서트홀 뒤에 널찍한 광장에서 여름 저녁의 더위를 식히려 분수가 쏴아 뿜어져 나왔다. 어두워진 노란 햇빛에 산란해 살짝씩 보이는 작은 무지개들이 가족 나들이 나온 아이들의 마음을 지폈다. 첫 클래식 공연을 혼자 보고 나온 내 마음도 그지없이 선명하게 휘감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순간은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광경으로 기억하나보다.



나는 음악을 듣는 걸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도 밤새우면서까지 MP3에 넣을 음악을 고르며 지샌 밤도 있었다. 마치 모래 속의 진주를 찾는 놀이처럼, 지식인에서 ‘듣기 좋은 인디음악 100’ 같은 음악 목록을 참고해 하나하나 내 귀로 탐지했다. 마음에 드는 음악은 추출해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는 게 좋았다. 지금 와서 느끼기엔 그렇게 난 기쁨을 느꼈나 보다. 특정 음가 소리 모여 리듬을 형성하고 그게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건 말 그대로 경이롭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음악 편력은 예전부터 가족끼리 놀러 갈 때 차에서 흘러나오던 아버지의 CD 플레이리스트를 이어받았다. 동생들과 차에서 따라부르며 열창했던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 신승훈의 ‘널 위한 이별’, 어머니가 좋아해 아버지가 선곡했던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등 주옥같은 옛 세대 명곡을 노력 없이 획득했다. 그러다 내가 좀 더 귀에 가는 멜로디를 찾아갔다. 하나둘씩 내가 더 듣고 싶은 음악이 생기고, 가수 윤하 덕질을 하고, 스탠딩에그라는 인디밴드 앨범을 처음으로 사 보며 내 음악 세계가 열렸다. 경북 성주, 경남 거창이라는 시골에서 자라고 학교에 다닌 나는 가수 콘서트는 있는 줄도 몰랐고, 할아버지께서 즐겨 보시던 전국 노래자랑 무대가 내가 본 공연의 전부였다. 그저 좋은 노래를 찾아 PMP에 넣어둔 뒤 햇살 좋은 날 도서관 밖 정자에 앉은 채로 새들의 지저귐과 함께 듣곤 했다. 라이브라고는 KPOP스타에서 이하이, 악동뮤지션 등이 부른 오디션 진행이 라이브라는 것만 알았고 내 귀로 연주되고 소리치는 멜로디를 들어보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오자마자 음악에 미친 듯이 공연장을 찾아다닌 건 아니다. 그렇게 노래 듣기가 취미였던 것도 아닐뿐더러 과제 하랴 술 마시랴 바빠 음악에 빠지진 못했다. 하지만 대학 동아리 활동으로 연극을 하며 예술 공연에 관심이 갔고, 책을 읽으며 언급되는 여러 클래식 작품을 접해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아버지께서 자취방에 몇십만 원을 하는 대형 스피커를 사주시니까 음향의 진수를 느끼려고 중저음이 많고 웅장한 클래식이 몇 곡씩 흘러나오게 됐다. 어느 순간 내 발길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여러 민간 음악회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관람했던 음악 공연은 요엘 레비 지휘의 브루크너 교향곡 3번, 그리고 손열음 협연의 모차르트 피아노 21번이다. 2016년 9월에 KBS교향악단의 예술의전당 토요콘서트에 학생 할인으로 첫걸음을 향했다. 당연히 혼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또래 중에 이런 특이한 걸 누가 좋아할까 하는 마음과 뭔가 자유롭게 느끼고 싶은 마음에 걱정 없이 혼자 공연장으로 향했던 것 같다. 대학 친구들에게 “너 어디가냐?”라고 듣고 “클래식 공연 보러 가.”하면서 대학 앞에서 301번 버스를 타고 금호터널을 지나 약수역에서 내려 전철 3호선으로 갈아타타 남부터미널에서 내려 걸어갔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재생된다. 얼마나 많이 갔으면 그게 눈에 선할까. 언젠가 한 번은 늦을 것 같아 전철역에서 공연장까지 숨도 안 고르고 뛰어갔던 적, 언제는 음악회가 너무 좋아서 그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 감상을 연필로 휙휙 써냈던 적, 자주 가려니 학생할인을 받아도 돈이 없어 아끼려고 연주자가 보이지도 않는 3층 저 편에서 수업 끝난 가방을 가지고 와 무릎 위에 올려두고 저녁나절 연주를 듣던 때가 떠오른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 순간들을 사랑한다.



어느덧 매년 12월이면 다음 연도 음악회 패키지 티켓을 사려고 구경하고 있었고, 올라오는 연주회 정보를 찾아보며 ‘볼만한 공연’이라며 연극과 같이 월마다 정리해 동아리방에 공지하는 선배가 됐다. 사람들이 비행기 티켓을 잡아두고 그날만을 기다려 시험기간이나 직장 생활을 버틸 때 난 어머니와 함께 볼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기다렸고,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회에 가 앨범에 사인받는 열렬한 팬심도 타올랐다. 웃긴 일로 우리 대학 익명 커뮤니티에 클래식을 거의 찬양하며 동행을 구해보는 글을 쓰자 동아리에서 바로 검거당했다. “이거 네가 쓴 거지?”, “이거 선배가 쓴 거 아니에요?” 한 명 정도는 익명으로 관심을 가지다가 결국은 새로운 동행은 없었다.



처음에는 초등학생 때 손에 익었던 피아노가 좋아 피아노 소품집과 협주곡을 좋아했고, 애달프고 격정적인 바이올린 선율도 마음에 들어 바이올리니스트를 좋아하게 됐다. 일부러 학교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러 멀리까지 가보기도 하고 신인 예술 인재의 공연과 외국 유명 교향악단의 내한 공연을 찾아 듣던 어느 날, 임윤찬군의 콩쿠르 우승 소식을 접했다.



그 영상은 내가 지금까지 몇십 번이고 찾아보는 보물이다.



[콩쿠르 영상을 처음 보고 쓴 감상문]


라흐 3번


감상하며 전율에 빠진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한음 한음에 정성을 담았고 협연자 임윤찬이 피아노가 도드라지는 순간에도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맞춘다. 순수한 겸손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성심껏 공손하기. 그게 내 욕구하는 삶이자 이 연주자의 태도였다.




이 연주의 아주 짧은 순간 0.1초마저도 연주자의 섬세함이 느껴져서 좋다. 같은 작품을 연주하는 다른 연주자 음악과는 달리 임윤찬만의 야심 찬 스타일이 느껴져서 좋다. 그리고 지휘자와 소통하고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맞추는 그의 태도가 느껴져서 좋다. 나는 이런 음악이 좋다. 음악 앞부분에서 여러 대화를 나누는 악기들이 마지막에 가서 손에 손 잡고 만세를 부르짖는 피날레가 마음에 든다. 언젠가 예술의전당에서 임윤찬의 공연을 보는 날까지 난 이 영상을 무한반복하겠지. 아직도 열리자마자 전석매진되는 연주회 티켓팅은 성공해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다른 연주회를 찾아다니면서 주말 오후의 음악 시간을 가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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