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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내가 좋다 Mar 16. 2024

슈퍼맨을 꿈꿨던 개인주의자

그날 내가 본 두 가지


  추위가 절정이었던 1월에 있었던 일이다.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너무 추운 나머지 나도, 길 가던 사람들도 모두 한껏 움츠린 채 빠른 걸음으로 서로를 지나쳤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 지나온 길을 살짝 돌아보았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뭐가 이상한 거지? 에이… 추워 죽겠는데 그냥 갈까? 아냐, 뭔가 이상해.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이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더니, 가로수로 심어둔 어른 허리 높이 정도의 회양목 수풀 밑에 고무신 두 짝이 삐죽 나와 꼼지락 거리는 게

영 눈에 거슬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건 뭐지? 환경미화 아주머니가 수풀 밑 청소를 격정적으로 하시는 건가? 아니면 노숙인? 어… 혹시?


  가던 길을 돼 밟아 가보았다. 오… 이런!!!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회양목 수풀 속에 쓰러져 계셨다. 아니, 수풀 속에 끼어계신다고 봐야겠다. 빙판길에 넘어지셨는데 하필이면 옆으로 쓰러지셨는지 수풀을

가로질러 넘어지고 보니, 아예 수풀에 파묻혀 고무신만 삐죽 길 밖으로 보이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것도 한참이나 지난 상태였는지 고무신 신은 발의 움직임도

작아져서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8차선 도로에 사거리가 진 곳인데다 바로 앞은 버스정류장이고, 시간대도 점심시간 직후였으니 식사를 하러 나온

넥타이 부대원들도 수 없이 지나쳤을 텐데 아무도 할머니의 낙상을 목격하지 못했나 보다. 하긴 지금도 여러 사람이 지나치고 있었는데 나 말고는 아무도 할머니를 보지 못했고,

나 역시도 몇 번이나 돌아보고야 이상함을 깨달았으니 사람의 눈이란 이렇게도 불완전하다. 완전 생각의 노예인가보다.


  즉시 장바구니부터 내려놓고 수풀을 두 손으로 벌렸다. 그리고 크게 “여기 좀 도와주세요!!” 했더니 금세 지나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어디 나뭇가지 찔린 데는 없으신 것 같아요? 도와드릴테니까 안심하세요… 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수풀이 할머니 얼굴을 찌르고 있는 것 같아 두 손으로

수풀을 벌리고 있었으니, 할머니를 꺼내드리거나 구급차를 부르는 일 등을 누군가와 함께 해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같이 좀 도와요!! 라고 말하기도

전에 적어도 열 명은 되어 보였던 사람들 중 앳되어 보이는 남, 녀 두 분만이 남아있고 모두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아무튼 여자분이 구급차를 호출하고, 나는 할머니를 그대로 일으켜도 될 지 차분히 할머니께 몸 상태를 질문했다. 다행이 어디 찔리거나 부러진 것 같은 통증은 없으시다고 했고

비교적 의식도 정확하여 말도 잘 하시는 걸 확인한 뒤 남자 분과 함께 할머니를 안아일으켰다. 전화를 마친 여자분까지 손을 보태 우리 세 사람은 바로 옆 벤치에 할머니를 앉혀

드리는 것에 성공했다. 우선 할머니의 옷을 여며드리고, 머리와 얼굴에 범벅이 된 나뭇가지들을 조심조심 떼어드리고 돌아보니 남학생도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결국 나와 다른

여자분 두 명만 할머니 곁에 남게 되었는데, 할머님은 집이 바로 앞이니 그냥 가도 되겠다며 연신 우리에게 미안하니 얼른들 갔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여기 좀 앉았다가 집에 가면

된다고.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여자분도 119에서 체크 받으시고 집까지 모셔다 달라고 하자며 그건 할머니가 내신 세금으로 하는 거니까 당연히 그래도 되는

거라고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나도 우리가 걱정되서 좀 지켜보고 가고 싶으니까 할머니 미안해 하실 것 없으시다고 차분히 말했다. 그렇게 5분? 10분?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구급대원 분들께 할머니를 인계하고 넘어져 계시던 상황을 설명한 후 그 여자분과 나는 가벼운 목례를 나누고 돌아설 수 있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저녁이 될 때 까지도 나는 흥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도, 남편도 나에게 좋은 일을 했다며 엄마가 우리 이웃의 숨은 영웅으로 뉴스에 나오는 것 아니냐며 농담도 하고 나를 추켜세워 주었지만, 뭔가 기분이 좋다거나 보람되고 다행

이라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무엇인가 두렵고, 찝찝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큰 길 한편에 꾸물거리던 고무신 신은 두 발… 모두들 모르고 지나치던 그 장면 자체가 뭔가

기괴하기도 했고, 어떻게 아무도 그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걸까 이상하기도 했다. 혹시나… 뭔가 이상한 것 같으니까 굳이 가서 살펴보거나 알아보고 싶지 않아서 무의식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못본 것이다… 하고 지나치고 싶었던 건 아니겠지…? 그냥 그런 생각을 하니 묘하게 두렵다.

  

   물론, 상식적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은 너무 추운 날씨에 웅크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모두 함께 도와주려니 믿었던 사람들이 다들 자기 갈 길 가버린 것도 이미 도와줄 손이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간 것일 게다. 아무도 없었다면 당연히 그 분들 중 누군가가 할머니를 위해 119에 신고를 하고 할머니를 일으켰겠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다.  남편은

뭔가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는 나에게 너무 놀라서 그런가보다… 다른 사람들이 가버린 것을 보고 세상 각박하다는 실망감이 컸나보다… 네가 착해서 그렇다… 등의 위로의 말들을

해주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분명, 내가 불편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돌아서서 갈 길을 가버렸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할머니를 발견하자마자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즉각 움직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 나랑 같이할 사람이 이것밖에 없어? 하는 생각이 든 순간 슬쩍 나도 움츠러들었던 것이다.

군중 속의 한명으로 행동했다면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것 같은데, 내가 1/n의 존재가 아니라 1로 행동하고 내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자, 순간 멈칫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119에 전화부터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옆에 있던 아가씨가 전화를 꺼내자 그럼 저 분이 하도록 두자 싶었고, 할머니가 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들었지만 혹시라도 추후에 할머니 건강상태에 대해 책임을 묻는 항의 연락이 오면 어쩌지 ( 가끔 사람을 구조한 의인에게 응급처치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소송을 거는 가족들

뉴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 하는 괜한 걱정에 나도 같은 단지 사는 사람이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가족분들 연락처를 물어 연락을 대신 취해드릴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119 대원분들께 설명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더 나서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솔직히 그 생각이 떠올랐지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돌아서서 가버린 사람들이

‘ 정말 야박한 사람들이네… 자기네 엄마가 이러면 어쩌려고… 자기 얼굴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어도 저렇게 그냥들 가버릴려나’ 하는 비난의 말을 떠올리며 난 그래도 저 사람들 보다는 나은 거라고, 내가 내 몸 사리는 생각 좀 했다고 치사할 것 없다고 생각해야겠다 싶었다. 할머니를 돕는 불과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마음 속으로는 그런 손바닥 뒤집기를  

했으면서,  마치 나는  나 혼자만 좋은 일을 다 한 것 처럼 가족들에게 말하고 각박해져버린 세상 인심에 상처받아 씁쓸한 기분이 드는 착하기만 한 사람인 양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도 몸은 할머니 옆에 서 있지만 지나쳐 가버린 사람들과 딱히 다를 바 없지 않나. 내 몸 사리고 싶은 생각에 표 나지 않게 나머지 두 사람에게 역할을 넘기고 있었으면서

나는 뭐… 정의의 사도라도 되나? 나 또한 순수한 이타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개인주의자일 뿐이다. 할머니를 못 본 척 나도 슬쩍 빠지자니 돌아서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 같고,

그렇다고 슈퍼맨처럼 할머니 상황을 해결해 주는데 온 마음을 다하기엔 혹시나 나에게 억울한 책임이 돌아올 일은 없겠지…? 싶은 마음에 해야하는 일만 겨우 했을 뿐이다.

이래도 저래도 마음이 찜찜할 것 같으니까 겨우… 찜찜한 마음의 정체는 이것이었던 것이다. 오늘 내가 목격한 것은 할머니의 위기 뿐 아니라, 내 마음의 진짜 모양까지 포함돼

있었나 보다.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스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행동들이 과연 올바른가, 이기적인 것은 아닌가 고민이 된다.

고교시절까지만 해도 정의감에 활활 불탔던 것 같은데, 살아갈수록 나에게 정의감이란 때로 앞뒤 못 가리고 남의 일에 끼어들어 어쩌면 억울한 일 당할지 모르니 잘 생각하고

발휘해야 하는 감정처럼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다. 아이에게도 늘 가르친다. 친구라고 무조건 양보하거나 늘 괜찮다고 말하면 안된다. 친구의 일이라도 알아보지 않고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나는 내 아이를 메마른 사람으로 키우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지만 마음 한 켠에 뭔가 찜찜함도 늘 남는다. 그렇게 나는 합리적이고 현명한 사람일수록

남의 일에 함부로 입 열지 않고, 내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왔다. 꿈 속에서는 정의로운 슈퍼맨을 꿈꾸었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남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으면 됐지… 하는 개인주의자. 그게 지금의 나다.


  내 밑바닥에 있는 두 마음 중 어떤 마음의 힘이 더 셀까?

어느 것이 더 힘이 센지, 아니 어떤 마음이 더 좋고 더 나쁜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정의감이나 사람간의 인정이 실종된 세상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서 내가 좋은 세상 만들기에 앞장 설 수 있는지 그 질문에는

선뜻 대답할 수 없다. 그때그때 내 상황도 생각해야 할 것 같고, 내가 행동한 일의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그것도 좀 계산해 보고 움직여야만 할 것 같다.  생애 최초로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좋은 일을 했지만, 무엇인가 모순된 이 마음들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그저 그날 만났던 그 할머니께서 다친 곳 없이 잘 귀가하셨기를 빈다.



p.s. 가끔 뉴스를 통해 만나는 모든 의로운 일을 하시는 분들, 자기 이익과 상관없이 희생으로 남을 돕는 세상의 모든 분들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와 내 가족이 발 딛고 서있는, 그래도 살만 한 이 세상은 그 분들이 만들어 주신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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