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표는 ‘엄마’인가요? ‘엄마표 교육자‘인가요?

아이에게 독서를 권하는 나의 목적은 무엇일까?

by 나는 내가 좋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가 기관에 가기 시작하는 3~4세 무렵 한글 학습부터 아이의 교육 아니, 정확히는 학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듯 하다.

더 일찍 기관에 다니는 아이들도 많지만 대체로 그 전까지는 잘 먹이고 잘 재우는 양육에 온 마음을 쏟다가

아이가 완전한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하는 연령에 이르면서 말을 똑부러지게 잘 하는 아이와 아직 정확히 의미전달도 어려운 아이가

한 공간에서 비교되기 시작할 때 쯤 ‘우리 아이도 좀 가르쳐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마침 어린이집에서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들을 개설하고, 조금만 정보를 구하고 조금만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할 용의만 있다면

아주 고급스러운 수준의 프로그램들을 경험하며 지덕체를 고루 갖춘 어린이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이 정도는 해줘야 좋은 엄마가 맞지 않을까?

이 좋은 세상에 나의 정보력이 다른 엄마들에 비해 떨어져서 혹은 나의 경제력이 그만큼 뒷받침되지 못해서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이 받는 더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 아닌가?

솔직히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엄마는 없을 것 같다. 어른인 내가 봐도 너무 좋은 것들이 많은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아이의 교육에 대해 생겨나는 일련의 고민들에도 양면이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이러한 불안이나 미안함은 결국 ‘엄마로서의 내’가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 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유아기의 아이 본인에게는 어떤 특정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니즈나 올 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업에 대한 목표 따위가 있을리 없다.

모두 ‘엄마가 된 내‘가 앞으로 내 아이가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각종 훌륭한 사교육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청사진 앞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지 고민하느라 일종의 ‘선택 장애’ 를 겪는 과정일 뿐이다.

그 고민 속에 ‘모성애‘라는 지극히 숭고한 감정이 버무려 지면, 정말 나의 일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 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어떤 훌륭한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아이에게 교육해 줄 것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아이에게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이지, ’엄마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육자’ 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재미있게 함께 책을 읽고 읽어주는 엄마가 될 수는 있지만 효과적으로 독서지도를 해주는 선생님이 될 수는 없고,

영어 공부이든 수학 공부이든 이른바 ‘엄마표‘ 라고 불리는 내 아이의 수준에 딱 맞는 공부 스케줄을 찾아 줄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것을 아이 스스로 해낼 때까지 긴 시간 러닝메이트 역할을 해 주는 것 외에 학습지도를 직접 할 수는 없다.

아니 정확히, 할 수는 있지만 학원이나 학교에서 계시는 전문 교사 분들보다 잘 할 수 없다.

( 나의 경우 그렇다는 말이다. 학습 지도도 아주 잘 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이 계신다는 점은 당연히 인정한다. 오해 없으시길… )

사교육 기관에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기관의 프로그램이 더 좋은지, 어떤 선생님이 좋아 보이는지 비교해서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른인 내 시각과 기준에서의 선택일 뿐 진짜 효과는 아이를 보내서 적어도 3~6개월은 관찰해 보아야 알 수 있다.

즉, 나는 내 아이에게 필요한 최적의 교육 로드맵을 수립할 수 있는 교육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교육자가 아니라 엄마‘인 내가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고 돌아, 결국은 수 많은 자녀 교육 지침서에 나오는 누구나 다 아는 원칙적인 가치를 지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결국 세상에 남들은 모르는데 나만 아는 뾰족한 수 같은 건 없다. 내가 원칙을 지킬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 그것이 최선이다.

내가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신박하고 획기적인 솔루션을 찾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이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한 감정의 실내 온도를 맞춰주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마음부터 정리하고 나니, 어떻게 가르치고 키울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적인 고민이 한결 가벼워 지는 듯했다.

나는 내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 중요한 수단으로 책읽기를 선택하기로 했었고, 아이의 독서 경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책읽기 = 엄마와의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 뿐이니 말이다.

최대한 재미있게, 최대한 행복하게, 그거면 된다고 생각해 보시라, 확실히 쉬워지지 않았나?

물론 잘 하시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아진 세상이지만, 평범하게 내 아이가 뭘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 지 몰라서 고민하는 엄마들이라면

굳이 내가 뭔가를 공부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머리를 쥐어 뜯으며 교육전문가를 뛰어넘는 내 아이 맞춤형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내 아이에게 나 말고 다른 엄마가 더 좋을 수는 없다. 싸울 때 화가 나서 그냥 내뱉는 말로 할 순 있어도, 정말 내 엄마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고 싶어할 아이는 세상에 없다. 내 아이에게 어떤 일타강사가 와도 해 줄 수 없는, 나만 채워줄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어떤가?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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