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람들은 왜 마약을 할까?

ㅡ 영화 <더 콩그레스>의 환각의 세계

by 김선지


세상에는 치명적인 부작용과 법적인 형벌에도 불구하고 불법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고 사회적으로 매장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오늘날 네덜란드나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대마초를 피울 수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마약류는 불법이다. 특히 한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엄격히 금지된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마약의 남용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여전히 마약이란 두 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심한 거부감을 일으키는 퇴폐와 부도덕의 상징이다.


왜 사람들은 마약을 할까? 마약은 무엇인가?

영화에서도 마약을 다룬, 혹은 마약에 관련된 것들이 꽤 있다.

영화 <더 콩그레스>는 마약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






<더 콩그레스>의 환각의 세계



여기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새로운 장르의 영화가 있다. 폴란드 소설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 <미래학 회의>을 원작으로 하여 제작한 영화 <더 콩그레스 The Congress>이다.


나이가 들면서 차차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여배우 로빈은 장애를 가진 아들 애런을 돌보며 살고 있다. 한편,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배우들을 스캔해서 컴퓨터 프로그램화시키는 첨단 기술을 개발한 영화 산업은 그녀에게도 자신을 스캔하여 영원히 늙지 않는 젊고 아름다운 스캔 캐릭터로 남을 것을 제안한다. 이에, 그녀는 실제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고 스캔 캐릭터로만 존재한다는 조건으로, 자신의 모습을 스캔한 캐릭터를 영화제작사에 팔게 된다.


20년 후, 로빈은 영화사가 주최하는 미래학 회의에 초대받는데, 회의가 열리는 곳은 '아브라하마'라는 가상 세계이다. 이곳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는 세상으로, 환각제를 흡입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경비원에게 환각제를 건네받는다.



마약의 약효가 나타나면서 영화 장면은 애니메이션으로 바뀐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로 살아가는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환각과 허상의 세계, 폭력과 전쟁, 치열한 경쟁이 없는 완벽한 행복이 실현된 낙원이다. 그녀 역시 이 세계에 적응해가며,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con2.png



현실의 세계와 환각의 세계를 넘나드는 이 영화는 환각제가 만들어내는 판타지의 세상을 보여준다. 그곳에는 슬픔과 근심이 없고, 모든 것이 욕망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비록 고통은 없지만, 현실이 아닌 가짜 세상에서 진짜 행복과 만족감, 살아 있다는 생생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고 물론 현실 세계가 낙원은 아니다. 현실에서도 환각의 세계에서도 낙원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원래 유토피아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꿈이 만들어낸 허상이므로.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꿈꾼다. 종교를 통해서, 예술을 통해서, 돈을 통해서, 그리고 때로는 마약을 통해서, 담배와 술, 카페인과 같은 기호품을 통해서, 혹은 쇼핑과 게임을 그곳으로 가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알코올, 커피, 니코틴과 같은 합법적인 약물은 스트레스를 풀거나 불쾌한 감정을 없애고, 기분이 좋아지게 하기 위해 사용된다. 쇼핑, 게임, 스포츠, 수다 떨기, 인터넷 등도 이러한 기분 전환의 방법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아편, 엑스터시, 헤로인, 대마초, 필로폰 등 마약류뿐만 아니라,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 등 일상의 기호품들도 사람들에게 비슷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일반적으로 알코올, 니코틴 및 카페인은 약물 종류에서 제외되고 있다. 일부 특정 종교에서만 술과 담배, 커피를 금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마약류와 이러한 기호품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때로, 알코올은 약물 중독만큼 치명적인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며,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마트와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 수 있는 담배와 술은 과학적으로 무해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허용되어 왔기 때문에, 유해하지만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우리는 그것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이 많은 것들 중에서 유독 마약류만 위험시되고 불법으로 규정되는 것일까?



마약의 역사


사실, 로마 시대에는 마약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었다. 도시에 800 개의 아편 상점이 있었고 로마의 총수입 중 약 15 %가 아편 판매에서 나왔다. 실제로 약물 사용은 훨씬 더 일찍 시작되며, 로마인은 아마도 의료용 및 수면제로 아편을 사용한 그리스인으로부터 그 습관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동방 박사가 예수의 탄생 시 바친 공물 중 하나도 아편이었다. 성경에 '몰약 myrrh'이라고 기록된 단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아편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마약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고대 인류는 마약을 신의 선물로, 고통을 줄이는 수단으로 여겼다. 역사 학자들에 따르면, 줄리어스 시저도 성관계 후 마리화나를 피웠다고 한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진통제 또는 성적 쾌락을 위해 약물을 사용했으며, 약물은 "신의 선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의 국가 종교로 인정된 후에는 마약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중세 시대 가톨릭 교회는 마약을 허용하지 않았다. 종교 지도자들은 신비주의가 마약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종교가 이 신비주의를 통해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마약은 종교의식에 공개적으로 사용되어왔다. 새로 구축된 가톨릭 교회는 마약이 유통될 경우, 가톨릭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종교가 나타날까 봐 두려워했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 당국은 고통은 신의 경건한 징벌이며 믿음과 회개로 고통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마약을 금지했다. 인류 역사에서 이제까지 마약에 관용적이었던 가치관을 뒤엎고, 새로운 규범을 창출해야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질병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았던 초기 기독교는 아편을 진통제로 사용하는 것을 금했고, 전통적인 진통제 역할을 했던 양귀비 식물즙은 악마의 약으로 간주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인본주의적 바람을 타고 다시 마약류는 허용이 되기 시작했으며, 메디치 가의 사람들을 비롯하여 그 시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약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앨버트 & 빅토리아 박물관에는 물약병으로 사용된, 아름답게 장식된 조그마한 르네상스 시기의 유리병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19세기 화학이 발달함에 따라 새로운 약물 개발이 이루어졌다. 모르핀, 헤로인 같은 반 화학 합성 약물이 개발되면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부터는 마약 중독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대의 화학 합성 약물은 천연 약물보다 훨씬 강력했다. 또한, 마약 사업이 탐욕스럽고 부도덕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이윤 추구와 결합되면서, 범죄, 알코올 중독, 폭력 및 정신 질환과 같은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화학적 쾌락은 진짜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의미 있는 삶을 찾을 수 없을 때 정신적으로 방황하며 약물에 의존하기도 하며, 또는 금기에 대한 호기심, 재미를 찾는 본능 때문에 마약을 찾기도 한다. 인간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을 계속해왔다. 금지된 것들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약물에 대한 유혹은 인간만의 것도 아닌 것 같다. 북구의 순록은 환각 성분이 있는 버섯을 아주 좋아하며, 남미 열대 우림의 재규어는 바니스테리오포스 카피라는 환각 물질이 있는 식물을 깨물거나 몸에 문지른다고 한다. 내 친구의 고양이는 파피루스 잎을 계속 먹으며 환각에 취한듯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어쩌면, 인간이든 동물이든 약물에 의한 화학적 쾌락에 본능적으로 끌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쾌락이 우리를 진짜 행복으로 이끌어줄까?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그리고 의미 없는 그냥 말초적 쾌락에 만족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더 콩그레스>가 보여주는 환각의 세계가 우리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의 아브라하마 같은 세상이 유토피아도 아닌 것 같다. 호주 같이 사회 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고 느긋하고 평화로운 사회에서,약물에 중독되는 비율이 높은 것은 사람들이 안락함과 무료함에서 삶의 동력과 의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