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인>

by 김선지

오스트리아 화가 막스 쿠르츠바일(Max Kurzweil, 1867~1916)이 그의 아름다운 아내 마르타를 그린 작품이다. 마르타는 녹색 무늬 천으로 덮인 긴 의자 등받이에 두 팔을 편안하기 걸친 채, 느긋하지만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화가 남편을 응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쿠르츠바일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쿠르츠바일은 클림트와 함께 빈 분리파를 창립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으며, 당시 빈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예술적 명성과는 달리 그의 개인적인 삶은 불행했다. 만년의 쿠르츠바일은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국 1916년 49세의 나이로 자신의 연인이었던 미술학교 여학생을 총으로 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극적인 동반자살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서 또 다른 사랑을 찾아 헤맨 예술가의 삶은 자기 파괴적인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일까.


그가 참여한 빈 분리파(Vienna Secession)에 대해 살펴 보자. 19세기 말 빈의 젊은 예술가들은 보수적인 예술가 협회의 권위주의와 전통적인 사실주의에 강한 반발을 느꼈다. 1897년, 클림트를 중심으로 막스 쿠르츠바일, 콜로만 모저 등이 모여 ‘빈 분리파’를 결성했다. 이들은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슬로건 아래, 과거의 양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다.


당시 빈은 합스부르크 왕조의 몰락이 예견되던 불안한 시대였다. 겉으로는 화려한 문화가 꽃피었지만, 그 이면에는 도덕적 타락과 정신적 불안이 공존하고 있었다. 인간의 무의식과 내면을 탐구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프로이트는 이 시대의 불안을 이론으로 언어화했고, 분리파 화가들은 시대적 분위기를 예민하게 반영했다.


쿠르츠바일의 대표작 중 하나인〈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면서도, 인간의 고독과 죽음, 에로티시즘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담아낸 작품이다. 화려한 노란색과는 대조적으로, 여인의 표정에서는 왠지 모를 정적인 고요함과 고립감이 느껴진다. 이는 쿠르츠바일 작품 특유의 심리적 깊이를 드러내는 요소다. 그는 화려한 장식성에 머무르지 않고, 인물의 심리와 내면을 정적인 화면 속에 깊이 응축시켰다.


같은 분리파의 동료였던 구스타프 클림트는 황금빛 장식과 관능적인 여성 묘사로 시대를 풍미했으며, 에곤 실레는 분리파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더욱 파괴적이고 뒤틀린 신체 표현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들 사이에서 막스 쿠르츠바일은 과도한 장식이나 파괴성보다는, 절제된 우아함과 심리적 깊이를 동시에 구현한 화가로 기억된다.


비록 그의 삶은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쿠르츠바일의 작품은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미술이 추구했던 화려함과 그 이면에 도사린 불안과 고독을 함께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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