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망가진 건 나 때문이다

엄마 반성문 1

by 나무 향기

마음이 편하지 않은 날이 많았다.

힘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과 내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언니 외에는 누구에게도 힘든 티를 낼 수 없었다.

주말부부를 고집한 건 내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강요하지도 권하지도 않았다.

주말부부를 해도 잘 해낼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혼하기 전까지는 애쓰는 만큼, 원하는 방향으로 삶의 결과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결혼 전의 삶이라 봐야 공부와 일이 전부였으니까.


공부나 일처럼 꾸역꾸역 열심히 하면 완성되는 것이 삶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공부와 삶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공부와 일은 삶의 부분집합일 뿐 전체집합이 될 수 없다. 결혼 후의 삶에서 공부와 일은 그야말로 내 삶의 부분집합일 뿐이다.

공부와 일은 나 혼자 하면 되는 것이다. 나의 굳은 의지로 참고 견디면 된다. 온전히 내 시간을 진득하게 투자하면 눈앞에 내가 애쓴 만큼 부합하는 적당한 결과가 주어진다. 그래서 누가 뭐라든 혼자 애써나가면 된다. 묵묵히, 열심히. 공부와 일은 온전히 나 혼자 애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 생활과 아이 양육은 나 혼자만의 시간 투자와 애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시간에 남편이 시간이 끼어들고 아이의 시간이 끼어든다. 남편의 애씀이 함께 동반되어야 하고 아이의 시간을 나의 시간 속에 받아들여야 된다. 남편은 떨어져 살아서 애를 써줄 수가 없었고 아이의 시간을 내 시간 속에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나 자신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이 나란 존재였다.

일이나 공부처럼 혼자서 고군분투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결혼생활도 양육도 아님에도 착각을 하고 살았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면 내 삶이라는 전체집합이 완성될 줄 알았다. 여러 과목을 쉴 새 없이 공부하면 좋은 평가 결과가 앞에 주어지듯이, 결혼 후 나한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 나가면 완성되는 게 삶인 줄 알았다. 교만이고 오판이다.


우울은 찾아왔고 세상에 나온 죄밖에 없는 귀여운 꼬마 아들에게 우울의 파편들이 날아갔다. 자기를 봐달라는 그 꼬맹이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그 어린것이 뭘 할 줄 안다고 조금만 자라면 이것저것 스스로 해주길 바랐고, 그 바람대로 되지 않으니 화도 내고 소리도 질렀다.

뱃속 환경부터 좋지 않은 아이였다. 임신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상태에서 6학년을 한 것도 내 욕심이었다. 6학년 아이들과의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온전히 듣고 있는 뱃속 태아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 소음들. 낮동안 편히 자야 될 태아가 온전히 소음에 노출된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큰소리를 낼 일도 많은 6학년 담임이었다. 마치 한숨도 자지 않는 듯 뱃속에서 언제나 움직이고 꿀렁거렸다. 밤에 잘 때도 항상 움직이는 태아였다. 임신 말기에 잘못된 건 아닌가 할 정도로 뱃속에서 조용히 있던 둘째와 비교가 안되게 늘 움직이고 늘 꿀렁거리는 태아였다.

신혼 때는 남편과의 다툼도 잦았다. 큰아이가 어릴 적에도 싸움은 계속되었다.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 혼란을 뱃속에서부터 유아기까지 경험했으니 우리 큰아들이 온전히 편안한 아이로 태어나고 자라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기질적으로 예민해서 새벽 2시면 알람처럼 깨서 울던 아기. 뱃속부터 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다 내 잘못이다.

내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음에도 아이를 원망하고 아이가 예민하게 구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이 탓만 했다. 아이 탓은 남편 탓으로 이어지고 탓만 하는 하루하루였다. 세상을 밝고 행복한 것이라고 인식해야 될 아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리가 결코 없었다.


10시부터 일을 하겠다고 커피를 엄청 마셨더니 잠이 안 와 새벽에 이러고 있습니다.

제 잘못이네요. 전부 다. 새벽의 조용함이 저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생각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눈물이 납니다. 지나간 세월을 눈물과 반성의 글로 대신할 수 있다면 하루 종일 울어서라도 매일 매일 써서라도 되돌리고 싶습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