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망가진 건 나 때문이다 2
엄마 반성문 2
결국 아이를 그렇게 만든 근본 원인 내가 진작에 달라져야 했다. 잘못을 인식하고 달라지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잘못을 인식하는 학습 과정이 너무 늦어졌다. 아니 학습은 했지만 이론만 되뇔 뿐 받아들이지 않았다. 친구한테 말이든 행동이든 폭력은 행사하면 안 된다고 똘망똘망 해맑게 말하면서도, 욕을 하고 때리고 기분이 나쁘다고 발로 차는 행위를 아무 죄책감 없이 하는 우리 반 아이들처럼 말이다. 아는 것과 행위하는 것이 언제나 일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존재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걸 알지만, 안다고 해서 내 현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잘못했음을 학습하고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이, 아이는 이미 예민함과 부모에 대한 원망 분노만 키운 채로 커버렸다. 아이가 똑똑한 것인지 엄마가 1을 주면 2로 대항을 했다. 2를 주면 4로 대항했다. 아이를 꺾을 수도 없었고 굳건히 버티기에는 내가 너무나 약한 사람이었다. 아들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행동들을 했다. 하지만 아들이 두 배, 세 배로 대항한 것도 어찌 보면 스스로 살아나가기 위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본인 눈에 무서워 보이는 엄마를 겉으로라도 제압하기 위한 방법. 아들은 겁이 많은 아이다. 자신의 두려움과 겁을 감추기 위해 강한 척하면서 반항하는 겁쟁이. 엄마도 겁쟁이다. 강한 척하면서 소리만 질러댈 뿐 아들의 반사회적 행동을 어찌 다룰 줄 몰라하는 겁쟁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아들이 결석을 반복하거나, 폭언을 일삼거나, 부모가 본인 아랫 사람인 것처럼 멋대로 행동하면 여전히 아들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날개를 편다. 내가 원인이 되었던 것을 알면서도.
30년 전 외운 영어 단어는 여전히 기억하면서 어제 들은 상담 선생님의 말은 까먹고 사는 게 현실이다. 어찌 아들이 달라질 수 있을까.
결국 선생들이 흔히 말하는 문제 부모 밑에 문제 아이 있다는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내 모습이 슬프다. 여러모로 문제 엄마였던 내가 노력한다고 이것저것 시도하지만 과오를 저지른 시간의 2배, 3배는 지나야 아들이 나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가 망가진 건 나 때문이다.
앞으로 또 아들의 행동이 못마땅할 때 분명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잊고 행동하고 말할 것이다.
'어유,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니? 너 정말 너무한다. 어쩜 그럴 수가 있니. 나도 힘들다고. 못땐 녀석.'
원망을 가득 담아.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세월 아들을 키우면서 늘 되뇌던 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주말 부부 하면서 얼마나 힘들게 키운다고 애썼는데. 네가 원하는 거 다 들어줬는데. 넌 너무 예민한 아이였고 힘든 아이였는데. 네가 문제라고.'
이제 최소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은 내뱉지도 않을 것이고, 너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잘 키우지 못했고 잘 키우지 못하고 있는 엄마가 감히 할 수 있는 생각은 아니기에.
이렇게라도 마음먹었다는 걸 씁쓸한 위안으로 삼아 본다.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