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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성질을 어찌할꼬.

벤츠를 사야 되나?

by 나무 향기 Mar 30. 2025

요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MBTI. 정확히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모른다. 재미 삼아 검사해 봤지만 그때마다 달랐고, 그것마저도 잊어버린다. 예전에 MBTI가 유행하기 훨씬도 전에 내 기준에서 말썽 피우는 아이 때문에(아이가 어느 정도 커 보니 정말 순전히 내 기준이었다. 언젠가 이런 주제로 글을 한 번 써 보고 싶기도 하다.) MBTI관련 책을 정독한 적도 있었는데 책은 책일 뿐, 읽고 까먹었지 인간 유형을 나 또는 아이한테 적용하려고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MBTI를 심리학자들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글을 어느 유명한 정신과 의사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확한 유형은 모르지만, 내가 T 쪽에 가깝다는 건 안다. 그래서 아마 공감과 따뜻함을 바라는 우리 아들과 자꾸 충돌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지만 타고난 천성을 반대로 바꾸는 것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아침을 부지런히 차리고 분주하게 준비한 후 책을 사러 백화점 나들이를 갔다. 아이 문제집은 동네 책방에서 사도 되건만 핑곗거리 삼아 백화점 구경을 하고 싶었던 게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싫어하고 우리 집 남자 셋은 특히나 싫어하는 백화점 쇼핑이지만 밝고 화사한 봄옷 구경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게 보편적인 여자들의 성향인 걸 어찌하겠는가. 비록 쇼핑은 싫어하지만 군소리 없이 2,3시간을 따라다녀 주는 남편이기에, 동행하는 것이 혼자 하는 쇼핑보다 재미있는 것도 사실이다. 적고 보니 우리 남편 착하다.


학창 시절 만원 버스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난 뒤로 사람이 많이 부대끼는 상황을 싫어하게 되었다. 백화점도 개장 시간에 맞춰 가는 게 맘 편하다. 주차도 쉽고 북적이지 않아서 좋으니까.

개장 10분 전에 도착했고 주차장은 텅텅 비었다.

나는 널찍한 주차공간을 좋아하는데 남편이 거기를 지나쳐서 좁은 공간에 주차를 하려고 해서, 왜 넓은 데 두고 여기다 대냐고 잔소리를 시작한다.

남편은 차를 뒤로 몰고 넓은 주차 자리로 왔다. 거기엔 주차 공간이 벽을 사이에 두고 3칸씩 3 구역 정도가 있는데 남편은 하필 주차된 차 옆에 차를 세웠다.

10분 남짓 기다리는데 옆 차 미러가 접혀 있지 않아 이상하네 하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옆에 내리기 불편하지 않아? 좁은 거 같은데? 딴 데 주차하지?"

"공간 충분해. 괜찮아."

내가 보기엔 굳이 그 차 옆에 댈 필요도 없고 내리기도 좀 애매한 거 같아서 말을 했지만 차를 뒤로 한참 몰면서까지 주차한 자리에서 다른 데로 가라 하기에 또 잔소리 같아서 목구멍까지 나오는 말을 삼켰다.


5분 뒤. 미러가 펼쳐진 옆 차에서 남자 하나가 내린다.

"차 댈 데가 많은데 왜 여기다 주차를 해서 이러나요?"

남편이 창문을 내리고 말한다.

"주차선 안에 주차했는데 왜 그러세요?"

상대 남자가 창문 안으로 손을 넣으며

"이봐요. 내가 운전해 줘요?"

이건 완전 시비조다.

남편도 화가 나버렸다. 내려서 뭐라 뭐라 하고 싸움이 붙었다.

남의 차 안에 손을 넣으며 조작을 하려는 그 남자 모습에 나도 화가 났다.

몇 차례 두 남자 사이에 말이 오가고, 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차 다른 데 주차할 테니까 가시라고요. 왜 화를 내세요?"

"내가 언제 화냈어요? 당신들이 화내고 있지."

화.... 난 말투가 이쁜 서울 사람은 아니다. 고학년을 가르치며 길들여진 습관이라 내 말투가 이쁘지는 않다. 그리고 구구절절 설명을 싫어하는 편이라 간결하게 그냥 할 말만 한다. 슬프다. 그놈의 말투.


화를 안 낸다는 사람을 보면 말 그대로 말투가 안 그럴 뿐이지 화를 내고 있는 거다.

저 상황에서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차에서 내리며 이렇게 말했어야 화를 안 내는 거다.

"저기요. 죄송하지만, 여기 주차 구역이 많은데 굳이 제 차 옆에 대시지 마시고 다른 데 좀 대시면 안 될까요? 제가 내리기 불편해서요."

이게 화를 안 내는 사람의 말이건만 소리만 안 질렀다고 화를 안 냈다고 하는 논리가 너무 싫다.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내리자마자 불평하고 창문을 내리자 손을 뻗어 넣으며 차를 조작하려고 하는 무례한 행동을 했건만 본인은 화를 안 안 낸 게 되는 세상 슬픈 논리다.


싸움이 커져버렸다. T인간인 나 비논리적인 것을 못 참는다. 평소엔 그냥 말수도 적고 웬만하면 좋은 게 좋은 거다 넘어간다. 사실 뭘 따지는 게 귀찮을 때도 많아서이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논리는 견딜 수가 없다.

내려서 나도 한 마디 하게 되었다.

이 남자 정말 우스웠다.

"내 차 주차한 거 한 번 봐! 주차를 그렇게 못해?"

냅다 소리 지르길래 우리 차를 돌아다봤다.

남편은 오차 없이 주차선의 정 가운데에 주차했다.

이 남자의 논리는 무논리다.

한마디로 BMW 자기 차를 위해 주차 공간을 무시하고 자기가 내릴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옆쪽으로 대라는 소리다. 우리 옆은 경차 우선 주차 구역이고, 남편이 본인도 상대도 내리기 편하게 그런 식으로 주차했다면 우리 차 우측에 댈 차는 또 피해를 볼 것이다.

그 이후는 나도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나한테 덤벼들려는 남자를 보고 남편이 여자 칠 거냐고 앞을 가로막았다. 난리 치면서 경찰 이야기까지 나와서 신고하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 남자 휴대폰을 꺼내 들고 차 번호를 찍으려고 한다.

후에 남편이 하는 말이 지 차에 흠이라도 낼까 봐 찍어놓으려는 것이라고 한다.

BMW가 유세인가. 오늘따라 쓸데없는 사고의 확장. 벤츠 몰고 BMW 몰면 다냐?

나는 그 남자에게 주차 딴 데 할 거니까 가시라고 지속적으로 말했지만, 남자는 정말 나를 칠 기세였고, 우리 남편이 막아서고, 종국엔 상대편 부인이 가자고 말려서 그들은 가고 우리는 차를 아래층에 주차했다.


아................. 내가 남편 보고 딴 데 주차하라 했어야 돼.

거기부터 나의 잔소리가 시작이다.

"내가 말하면 좀 들어. 제발. 부인 말 들어서 나쁠 게 뭐가 있냐고?"


나도 안다. 나의 말에 남편도 화가 날 거란 걸.

잘못한 사람은 그 남자인데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니까.

아, 이놈의 성질머리. 남이면 그냥 입 다물었을 것을, 남편이라고 계속 잔소리를 해댄다.

이놈의 성질을 어찌할꼬.

나는 후생이란 게 있다면 정말이지 절대 태어나고 싶지 않다. 이런 내가 싫을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오늘, 에잇 내가 벤츠 안 사나 봐라 말이 저절로 나오는 하루였다.

우연이겠지만 뭐가 아귀가 딱딱 맞게 사건이 발생했다.

백화점을 나서기 전 구*가방을 메며

'아우. 내가 이걸 왜 샀지? 자주 메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고 비싸기만 한 걸. 물건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지.'

하고 나섰는데 BMW 흠 낼까봐 걱정인 남자와 싸움이 붙었고, 딴 데 주차하란 말을 삼켰다가 일이 발생했으니까. 그리고 나의 결심이 무색하게 벤츠 안 사놔봐라 하고 있으니.


언제나 늘 그렇듯 이 순간은 지나가고, 난 그냥 싼 물건이 편한 사람으로 돌아오겠지만 말이다.

즐겁자고 간 쇼핑.

그 남자 때문에 남편과 내가 지금까지도 냉전이다.

늘 그렇듯, 쓰다 보니 이럴 일인가? 남 때문에, 성질 머리 고약한 한 인간 때문에, 지한테 불리하면 남이 잘못했다는 논리로 한가득인 인간 때문에?

퉤 퉤 퉤.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끝.

(정말 끝이길 바란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를. 논리에 안 맞는 인간에 화를 내지 말기를.)


그건 그렇고 그 남자 아마 대저택에 사나 보다. 요즘 아파트 주차장은 백화점 그 구역만큼 주차 공간이 넓지도 않은데 아파트에선 어떻게 주차를 하는 걸까? 인터넷 짤로 도는 민폐 주차족일까? 아니면 큰 농장을 소유한 농부인가? 조금만 늦은 시간에 왔다면 그 백화점의 특성상, 아마 내릴 공간은 더 좁았을 것인데, 그 성질머리로 어떻게 사는 건지 모르겠다.

이놈의 성질을 어찌할꼬이지만, 그 남자도 성질을 어찌하고 살지.


남편은 화를 낸다. 여자가 왜 나서냐고. 험한 일 당하면 어떡하려고 그러냐고.

내가 원래 겁이 엄청 많은데, 정의에 어긋난 일에는 겁이 사라진다. 예전에 만삭임산부 상태로도 주차 잘못해서 뒷 차에 피해 주는 남자한테 가서 창문 두드리고 주의를 준 적이 있었다. 그 남자도 날 칠 기세였는데, 뒤늦게 내린 남편의 등장으로 험한 일은 없었다.

여자가 그러냐라는 말에 또 한 번 화나지만, 험한 세상인 건 사실이니 남편 말도 들을 법 한데. 나도 이놈의 성질을 어찌할꼬. 여자가 그러냐 말 듣기 싫어서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날까 싶기도. 하지만 또 결론은 절대 안 태어난다.



결론은 여기서 끝. 더 이상 이 일을 남편한테 언급하지 말자.

한 달만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닐 점 같은 일이 될 게 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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