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있을 때, 매일 퇴근을 하고 오면 집 책상 위에 매일 다른 브랜드의 아이스아메리카노 잔이 놓여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하루에 5,000원이면 이게 한 달에 다 얼마야...' 이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휴.....'
아내의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고 나서 우리 부부는 아들의 어린이집 생활 루틴을 만들었다. 우선 나와 아내가 업무시간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이야기한 후, 아내는 등원을 나는 하원을 맡았다. 우리 부부는 침대에서 눈을 뜨고 일어나,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을 때까지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하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변 지인 혹은 회사 동료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달라 보인다. 이렇게 힘든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셨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무렇지 않게 해내셨지만, 아무렇지는 않았을 거다.
우리는 가끔 내가 하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인데, 타인이 하는 일은 쉽다는 착각을 한다. 특히 군대 이야기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끝도 없이 말할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도 '내가 가장 힘들었다'라는 감정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 그 어려움을 100% 공감하지 못한다.
같은 육아를 하면서도 내가 해보지 못한 것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항상 머릿속에 새기고 있다. 아이가 처음 자기 주도 식사를 할 때, 아내가 아이에게 음식을 입에 넣어주는 것을 보면서도 "아이에게 밥을 주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실제로 내가 아이와 식사를 하다 보니 "이게 예사 일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육아는 어느 한쪽에서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엄마가 모두 함께 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서로에게 서운함이 생기지 않으려면, 각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 사람이 부재했을 때 다른 한 사람이 무조건 그 일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육아를 하면서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다짐했다.
"아이도, 아내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하원만 전담으로 맡아서 하다 보니, 등원에 대한 경험이 무지했다. 등원할 때 신경 쓰고 챙겨야 할 것을 아내에게 인수인계받기 시작했다. 식빵 한 조각+ 퓨레 한 개 + 아이 가방 싸기 + 아이 약 챙기기 등등. 날씨가 더워지다 보니 하나하나 챙기는 내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 맞다. 내 옷을 아직 못 입었구나. 이번주가 장마였는데 오늘 비가 오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비가 오는 날 아이와 함께하는 등하원은 나를 한 단계 레벨 업 시켜주겠구나 싶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와서 갑자기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이 너무 생각났다.
내가 타 먹는 아메리카노가 아닌, 누가 만들어준 아메리카노 말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카페로 들어가 말했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이요!"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문득 아내의 책상 위에 있던 아메리카노 잔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를 칭찬했다. 오늘 아침 먹은 아메리카노가 최근 들어 가장 맛있었던 아메리카노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