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사실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는 것은 다 핑계다. 글을 쓰는 것 대신 다른 것을 했으니까. 아들과 좀 더 노는 시간을 만들었고, 허리가 아파 도수치료를 받으러 다녔고, 가끔 그림을 보러 다니기도 했고, 아이돌 노래의 가사를 썼다. 사실 돌아보면 이것저것 한 거는 너무나도 많은데 세상에 딱 하고 나온 게 없다는 생각에 한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오픈해서 기록하는 것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35살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외부에 밝힐 수 있는 것과, 밝히지 못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회사'의 존재가 딱하니 있고, 이게 나의 사실상 밥줄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나와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모든 것을 밝히는 것을 볼 때 사실 숨기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35살의 직장인.
그 이외에 나를 어떤 말로 더 표현하고 싶을까?
어떤 것이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되었으면 좋을까 생각해 본다. 단순히 내가 매일 루틴처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때로는 매일 루틴처럼 하고 있는 것들을 누군가에게 말할 때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안타깝게 보는 시선으로 여겨지는데,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에게 '와'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나]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회사로 향하는 직장인. 회사에서 일을 하고 나서 집에 오니 4시 30분. 아들 하원을 하러 어린이집으로 간다. 어린이집에서 아이와 2시간 동안 편의점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 아이 밥을 준비한다. 그리고 아이와 밥을 먹고, 아이와 샤워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잠깐 혼자 놀 때에 밀린 집안일과 빨래를 한다. 그리고 가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아이의 케어를 아내에게 인계하고 도수치료를 받으러 잠시 떠난다. 그 30분 동안의 도수치료로 일주일에 힐링을 맛본다.
이렇게만 보면 너무 짠한 인생이지 않나?
굳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나]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성경책을 오디오로 들으며 회사로 향한다. 회사에 가는 길에 너무 졸릴 때면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를 듣거나, 아이돌 작사를 하는 데모를 듣는다. 세상에 나오기 전에 가사가 붙여지지 않는 노래의 데모를 먼저 듣는다는 것은 참 새롭다. 그리고 몇 달 전에 들어온 데모와 멜론에 세상에 나온 데모를 비교해서 들을 때면 더 재밌다. 그러다가도 잠이 안 깨면 내가 작사한 노래를 듣는다. '내가 이 맛에 작사를 하지!'라는 생각에 휩싸일 때쯤 회사에 도착한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다시 아들을 보기 위해 운전을 시작한다. 운전을 하면서 아버지와 통화를 한다. 매일 아버지와 통화를 하는 35살 남자 어른도 많이 없을 거다. 그것도 단순히 안부만 묻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면 쉽게 30분이 넘어간다. 그렇게 나의 잠을 깨워주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끝나고 나면 난 집에 도착해 짐을 챙기고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어린이집에 가서 아들을 만나 오늘은 또 어디로 향할지 상의한다. 편의점을 먼저 갈지, 도서관을 먼저 갈지, 놀이터를 먼저 갈지, 큰 고민은 아니지만 그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아들이 있어 행복하다. 가끔 허리가 끊어질 거 같지만 그래도 이렇게 멋지고 예쁜 아들이 내 아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렇게 아들과 놀이터에서 한동안 놀다 집으로 향해 같이 과일을 먹고 밥을 챙긴다. 그렇게 저녁에 집에 들어와 집안일과 육아를 하다가 작사 작업을 한다. 매일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 같은 기분이고, 그렇게 한 줄도 못쓰고 포기할 때도 있지만 멈추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들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35살의 직장인.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고, 가족들과 아무런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언제 발매될지 기약을 알 수 없는 아이돌 노래를 작사를 하는 35살의 직장인. 나는 그렇게 35살의 한가운데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