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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Jul 09. 2017

'불쾌'를 구매하다

전자담배 마케팅 

 대학 다닐 때, 동에 참여한 것이 담배의 시작이었다. 농활 장소인 충남 홍성에 선발대로 내려갔다. 선발대는 남학생 10여 명에, 8명이 흡연자였다. 첫날부터 어울려 자연스레 불을 붙였고, 그날부터 나는 흡연자다. 


 담배는 대가를 요구하지만, 내가 지불하는 큰 대가는 건강과 냄새이다. 건강은 치명적이지만, 현금이 아닌 신용카드다. 청구서가 올 때까지 잊는다. 냄새는 현금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 조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연기가 갈까, 이리저리 살펴야 한다. 담배를 핀 후, 엘리베이터를 탈 때 숨을 참고 고개를 떨궈야 한다. 차를 탈 때 창문을 열고 껌을 찾아야 한다. 아이와 집사람을 피해 빠르게 칫솔을 물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냄새에 우웍 우웍한다. 그 순간순간 '나는 냄새나는 괴물이다'.

 

 담배를 향한 내 니즈는 냄새를 없애는 것이다. 그놈의 냄새를 쫓아버려야 숨을 참지 않고, 고개를 떨구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나와 동행하는 냄새가 없어야 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추운 겨울, 빌딩과 빌딩의 여백을 두리번거리는 흡연자는 내 맘을 알 거다. 


' 제품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해야 한다'. 이 말은 '겨울에 눈 내리는 이야기'처럼 당근인 워딩이다. 흡연자의 니즈는 건강을 해치지 않는, 냄새가 없는 담배이다. 좁아지는 담배 산업에서, 담배 회사가 버티려면 건강과 냄새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흡연자의 니즈를 충족하는 방법이다. 


 올해 3월인가 4월인가 일본에서 필모 사의 전자담배가 유행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담배 산업의 애플이라나. 

비웃었다. 나 같은 흡연자는 전자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지나가는 마케팅 뉴스 일 뿐이라고....

 5월에 한국에서 전자담배 출시 소식을 다시 들었다. 가만히 보니, 기존의 액상 담배가 아니란다. 연초를 사용한단다. 아 그래, 그럼 담배 같네. 그런데, 냄새가 없단다. 냄새가 없단다. 아 이런, 나를 괴물로 가둔 저주를 풀어준단다. 나는 그 자리에서 꽂혔다. 


 니즈를 충족하는 담배의 기획, 훌륭하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오히려 한 수 배웠다. 문제의 현상이 아닌, 근본을 해결하려는 도전에 감명했다. 나는 왜 저런 시도를 못할까 반성했다. 그런데, 여기까지다. 딱, 여기까지다. 이제부터, 나 처럼 저주를 풀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모질게 대한다. 요샛말로 '헝거 마케팅'이다.


 필모사의 판매 전략에서,
사자를 우리로 모는 조련사의 채찍 소리를 듣다.


 6월에 전자담배가 출시되었다. 발 빠른 동료가 담배를 샀다. 광화문에서 30분 기다렸단다. '나도 사야 지'하면서 약간 찜찜하다. 담배 사는데 30분이라니...  그래 처음 며칠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나저나 나도 사고 싶다. 


 기사가 하나 떴다. 홈 페이지에서 회원 가입하면 할인 쿠폰을 준단다. 그리고 사람이 몰려서 홈페이지가 한때 다운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받아야지. 새 탭을 열고 빠르게 검색어를 입력한다. 홈 페이지가 검색되지 않는다. 또 찜찜하다. 홈페이지 다운 기사가 올라왔는데, 홈페이지가 검색이 되지 않는다. 조련사의 채찍 소리가 들린다. 제품 출시 전에 제품 홈 페이지를 포탈 검색에 등록하는 것은 마케팅의 'ㅁ'이다. 우리 꼬맹이도 그 정도는 안다. 필 모사 홈페이지에 가봐도 제품 홈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 전문가의 손길이다. '헝거 마케팅'이다. 2~3일 뒤에 포탈에서 홈페이지를 찾을 수 있다. 불쾌하나 할인 쿠폰을 위안으로 넘어갔다. 



 홈페이지에서 안내한다. 광화문, 가로수길 매장 그리고 특정 편의점에서 판매한다. 사무실 근처의 편의점에 전화를 돌린다. '제품 들어왔나요?', '예약하셔야 됩니다', '예약하면 언제 받아요', '모릅니다. 한 3주 걸리지 않을까요'.  예약 후 3주가 걸린다. 아이폰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헝거 마케팅'이다.  편의점에 제품이 부족해서 예약 후 3주라니.. 


 나는 아직 괴물이다. 저주를 풀고 싶다. 평일 삼성역에서 오전 미팅을 끝내고, 가로수길 매장으로 갔다. 평일 오전에 구매하려는 사람이 몇 명 없겠지. 금방 살 거야 하면서 차를 몰았다. 네비 안내로 꼬불꼬불 골목을 돌았다. 단번에 전자담배 매장인 것을 알았다. 애플 매장 분위기다. 매장 밖에서 15명 정도 기다리고 있다. 평일에도 사려는 사람이 많네. 왔으니 사양지


 차를 주차하자 발레 파킹이다. 2천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10만 원 이상 제품을 파는 데, 무료 주차장은 있어야지 생각하면서 매장 대기줄로 움직였다. 대기줄에 두 명의 건장한 사람이 유니폼을 입고 줄을 세운다. 순간 영화에서 나오는 클럽이 떠오른다. 건장한 사람들이 입장을 통제하는 분위기다. 유니폼을 찬찬히 보니 'Security'라고 적혀있다. 누가 새치기를 하나, 줄 선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나.. 내가 질서를 망가뜨리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통신사 고객센터를 방문해도 줄을 선다. 그때는 안내인이 도움을 준다. 이 매장에서는 'Security'가 아니라 '안내'가 필요한 거다. 유아인의 '어처구니'를 떠올린다.  'Security'들이 잡담을 하고 있다. 'Security'가 어처구니를 들고 있다. 불쾌하다. 


 줄을 서있으니, 앞선 사람들이 두 명씩 입장한다. 입장하기 전에 주민등록증과 흡연자 여부를 확인하다. 민증은 이해한다. 흡연자 여부를 확인하다니. 담배 안 피우는 사람에게 담배를 팔지 않는다는 것, 담패 피는 사람이 시간 내서 와서 사라는 거다. 가로수 길에서 약속이 있는 비흡연자인 아내에게 전자담배를 사달라고 부탁을 못한다. 조련사의 채찍이 다시 날아오는 것을 느낀다. '이걸 사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투자한 시간이 있고 주차비까지 지불한 것 생각하며 기다린다. 


 매장의 공간, 매장 직원의 수 그리고 입장하는 구매인의 수를 볼 때, 대기 시간이 유난히 길다. 특히, 매장 직원 수와 줄 서있는 사람의 비율이 1:2가 안된다. 이 비율로는 제품 구매 시간이 5분 정도면 넘친다. 그런데, 그 속도로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10분 이상 소요된다. 깨닫는 다. 매장은 교육 등으로 판매 프로세스를 길게 설계했다. 이 판매 프로세스가 대기 줄의 길이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내 차례가 왔다. 옆 사람과 함께 입장한다. 구매대에 도착하자, 옆 사람이 성을 낸다. 빨리 팔라고. 직원은 교육받고 구매할 수 있단다. 교육을 안 받으면 고장 난 다고 한다. 옆 사람의 목소리가 더 올라간다. 직원은 말을 바로 바꾼다. 뭐 사시겠습니까? 당하기만 했던 사자의 으르렁 소리에 조련사가 한번 물러선 것이다. 옆에 있던, 나는 덩달아 혜택을 받는다. 3분 안에 제품을 구매했다. 


 나는 괴물의 저주를 풀었다. 우리 꼬맹이는 전자담배 냄새도 싫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예전과 비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고개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차에서 껌을 찾지 않는다. 


 고객의 니즈를 충족한 제품을 기획한 필 모사에게 찬사를 보낸다. 한편, 판매를 기획한 필 모사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제품 기획과 판매 기획, 모두 능숙한 전문가의 손길이다. 하지만, 제품 기획이 저주를 풀었다면, 판매 기획은 채찍을 휘둘렀다. 수준급 능력을 다른 방향으로 사용했다. 이 제품 품질이면, 채찍 없이 성공했을 거다. 허니버터칩이 '헝거마케팅'으로 성공했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였다. 소비자는 전문가만큼의 능력은 없다. 능력은 없지만, 본능적인 눈치는 있다. 


 나는 스스로 '불쾌'를 구매했다. '불쾌'를 두 번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후기 : 위의 내용 외에 필립모리스 아이코스 가격 책정, 고객 유지 등 몇 가지 마케팅을 더 사용하고 있으나, 이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글을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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