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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수학 답안지

쉬어가세요.

by Sj

초등학생인 막내가 수학 시험을 본 모양이다. 막내는 내가 일하는 식탁 주변을 맴돌면서 시험에 대해서 투덜거린다. 내가 아이들의 시험 점수에 대해서 잔소리하는 편이 아닌지라, 막내가 투덜거리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유가 궁금해서 막내에게 수학 시험에 대해서 물었더니, 막내는 수학 4단원과 5단원 시험을 봤고 두 단원 모두 50점 언저리란다. 이번 학기의 지난 수학 점수도 높은 적이 없었던지라, 나는 막내가 투덜거리는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조금 후 내 옆에 앉아서 숙제하라고 했더니, 그제야 막내가 시험 결과에 불평하는 이유가 밝혀졌다. 선생님이 수학 틀린 문제를 학습지에 옮겨 적고 다시 풀라고 한 것이다. 막내는 50점 언저리의 수학 점수에 불편한 것이 아니라 수학 문제지의 절반을 학습지에 옮기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더욱이 수학 문제지는 모눈종이 형태의 그래프 문제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래프들도 종합장에 촘촘하게 다시 그리라고 한 것이다.


입이 잔뜩 나온 막내는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4, 5 단원 두 번의 시험에서 절반만 답을 맞혔으니 숙제의 양이 상당하다. 사실 나는 막내가 5단원 시험을 언제 보는지 몰랐지만, 4단원은 지난 수요일 즈음에 시험을 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엄마가 지난주에 막내와 4단원 학습지를 푼 것이 기억났다.


막내가 엄마랑 4단원 공부한 것을 기억한 나는 막내의 틀린 시험 문제가 궁금했다. 4단원은 올림, 반올림 그리고 버림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틀린 시험 문제를 처음부터 쭉 보다가 어렵지 않은 문제들이 눈에 들어왔다. 왜 틀렸는지 물어봤더니, 막내는 내가 학교 다닐 때 하던 변명을 정확히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변명은 이런 것들이다. '아는 문제인데, 문제를 잘못 봤어!' 등. 막내의 상투적인 변명을 듣던 중에 6번 문제가 눈에 띄었다. 6번 문제는 상투적인 변명이 안 통할 정도로 평이한 문제였다.


[수학 6번 문제]

458개의 사과를 상자에 20개씩 담으려고 한다. 사과를 모두 담기 위해 필요한 상자의 수는 모두 몇 개입니까?


이 문제는 3자리 수 나눗셈도 아니고, 그냥 20 곱하기 22, 23해보면 답이 나오는 평이한 문제다. 막내가 답안지에 쓴 답은 22개이다. 상자가 22개면 사과 440개를 담고, 18개의 사과가 남는다. 내 인내심이 조금씩 거실 바닥으로 떨어졌고, 다소 높은 톤으로 막내에게 물었다.


[아빠] 아들, 이것은 너무 쉬운 문제 아냐? 22개면 사과가 18개 남잖아. 답은 23개지!!!!!

[막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아빠를 쳐다보면서) 아빠, 생각을 해봐!! 생각을!!

[아빠] (나는 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막내를 보면서) 뭘, 생각을 하나?

[막내] 사과를 상자에 담을 때는 아저씨가 팔려고 담는 거야! 아저씨가 사과를 18개만 담아서 팔면 안 되지!!

아빠는 20개 들어가는 상자에 18개만 담아서 팔 거야, 말이되?

[아빠] (속으로, 18개 담은 사과 상자를 팔면 안 되지, 남은 것은 너 다 먹어라!)


막내의 수학 숙제는 저녁 12시가 지나서 끝이 났고 숙제할 때는 졸려서 죽더니, 숙제가 끝나자마자 다시 초롱초롱 제정신이다. 다행이다, 꼬맹이가 수학은 부족해도 사과는 정량으로 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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