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 덕분에 모처럼 쉬는 평일날이었다.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전에 빌려서 구석에 넣어두었던 책을 반납할 날이 드디어 왔는가 보다. 백신을 맞아 힘들다는 핑계로 일을 또 미뤄두었다. 그러다 이제는 정말 미룰 수 없는 때가 왔을 때, 깊은숨을 내쉬고 맹렬한 더위는 생각도 않고 호기롭게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다녀 익숙한 길이었다. 짧은 인생 반 이상을 채워준 학교를 지나, 뛰놀던 아파트 단지를 넘어, 수능을 치렀던 학교를 스치니 금세 도서관이 나왔다. 신축된 이후로 익숙하지 않아 잘 가지 않았던 곳인지라, 지어진 지 벌써 몇 년이지만 나에겐 아직은 그곳에 자리한 것이 낯설었다.
책을 반납하는 데에는 채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어떤 기계에 책을 올리고 반납을 누르면서부터 나는 벌써 돌아가는 길은 다른 길로 돌아가 보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내 자전거에 오른 뒤, 휴대폰으로 지도를 본 뒤 페달을 밟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편의점에 잠시 멈춰 잘 가고 있는 것일까 확인함과 동시에 적잖은 당혹감이 들었다. 평소에도 길을 찾는데 서툴러, 휴대폰의 지시에 의존하곤 하는데, 오차가 있었는지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짜증스러운 마음이 들다, 이내 대략적인 경로만 확인하고 지도 없이 맘 가는 데로 가자, 했다.
삼십 분도 채 안 걸렸을 거리가 어느새 한 시간이 되었고, 두 시간이 되었다. 일단 내가 익숙한 호수공원으로 향했지만, 그곳 안에서도 길은 꽤 엉켜있었다. 듬성듬성 익숙한 곳과 낯선 곳이 섞여있었다. 그곳에 마련되어있는 표지판과 지도에 의존하여 몇 번을 헤매다 겨우겨우 알만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이 성가셨냐 묻는다면, 아니다. 오히려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었다. 잘 못 들어선 길의 풍경은 오히려 이질적 이리만치 푸르렀다. 코로나 이후에 좋은 것 하나는 일상을 여행하듯 살자며, 평범한 내 일상도 더욱 색다르게 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일상에 더 깊은 계절감이 물들 때가 있다. 무자비한 더위에 나는 녹아가고 있었지만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어쩌면 그것이 즐거웠던 것에 내가 바란 것이었을까 생각했다. 모두들 매일 애쓰고 있다. 자전거가 넘어지게 하지 않기 위하여 계속해서 페달을 밟고, 정해놓은 길을 찾기 위해, 때로는 정확할지 모르지만 나 아닌 것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기 위해 지도를 노려보고 방향을 찾는다. 나 또한, 무엇에도 애쓰지 않으려 하지만 그렇지 못했고, 뒤돌아 보니 오히려 애쓰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렇지만 그리 애쓰지 않아도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는 것은, 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꼭 정해진 길로 가지 않더라도, 낯설게 들어선 길에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고, 빠르지 않아도 그렇기에 보이는 풍경이 있다. 힘이 들면 잠시 내려 목을 축이며 주변을 둘러보아도 좋다. 오히려 더 나은 경치가 있으리라. 휘청일지라도 넘어지지 않았다면 모두는 그로 훌륭한 것이 아닐까. 무형의 것에 쫓겨 달아나듯 페달을 밟으며 살 필요도 없구나 생각했다. 어느 방향으로든, 어떤 속도로든 나아가고 있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의미는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