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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준 Nov 21. 2022

https://youtu.be/VHpDPr423nA

최유리 - 바람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는 걸 보니 곧 눈이 오려나보다.

일과 학업에 정신없이 허덕이며 지나 보낸 대학 마지막 학기가 끝난 지도 벌써 일 년이 흘렀다.

처음 회사에 입사해 들어갔던 팀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살며 처음 겪는 수술을 마친 뒤라 부장님께서는 마지막에 술도 못 사준다며 건네셨던 답지 않게 예쁜 봉투에는

금방 찾은 듯 빳빳한 지폐가 몇 장 담겨 있었다.  

처음 출근하던 날의 냄새가 아직 잊히지도 않았을 만큼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음에도 정중히 담긴 마음이 어떤 형태가 되자

내게 드는 마음이 후련함인지, 아련한 그리움인지, 지난 시간에 대한 회고인지 몰라 머쓱히 웃음만 지어 보였다.​



바로 다음 날이 대학 졸업식이었다.

하나의 떠남을 충분히 곱씹기도 전에, 졸업이라는 또 다른 작별을 준비해야 했다.

대학에 가면 뭐든 다 행복하리라, 꽤 긴 시간을 희망차게 보냈었던 것 같다.

막상 지상에 나온 매미처럼 목놓아 울 수 있었던 시간은 덧없이 짧았다.

마지막 시험과, 마지막 등교의 후련함 그 끝에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졸업식을 꼭 가야 할까 고민하는 내 모습에 망설여지더라도 가보라 힘을 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 걸 보며

그래 이게 남았다,

나보다 내 졸업을 더 생각해주는 내 옆의 소중한 사람을 보며

그래 이게 남았다, 속으로 되뇌었다.


짧게나마 캠퍼스와도 인사를 나눴다.

그래도 몇 년간 애증이 담긴 가장 평범한 공간들에 웃음도 눈물도 담겨있었다.

처음 면접을 보러 왔던 날부터 마지막 졸업을 하는 날까지, 곳곳에 발자국이 닿아있는 그곳에서 내 인생 가장 뜨거웠던 계절이 지남을 느끼며

함께해줬던 모두에게 마음으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며칠이 지난 뒤였을까,

내리던 눈은 기대했던 포근함 보다는 질척임에 가까운 눈이었다.

주변의 바람에 나부끼며 하강하는 것도 상승하는 것도 아닌 것들이,

채 땅에 닿지도 못한 채 흩날리는 것을 보며

내 있는 곳이 저쯤인가 싶어 멍하니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짧게나마 가졌던 휴식이 지나,

새 팀에 발령이 나 제대로 적응할 틈도 없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니 또 뒤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또다시 어떻게든 끝은 찾아오고, 또 다른 시작과 함께 겨울이 되었다. 이는 내 생일이 다가왔음을 의미했다.

친구들이 다 돈을 벌더니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주던 녀석들이 뭐가 필요하냐 묻는다.

새로운 인연과 멀어지는 인연의 비율이 많이 기울어 버린 지금에 사실 어떤 선물인 지보다 마음이 담긴 길지 않은 그 몇 마디 말과 서로 나누는 의미 없는 근황들에 감사했다.

장난스레 나는 우정이 필요하다 말했더니 지랄하지 말라는 욕이, 역시 그대로구나 하는 안도감에 웃음 지었다.​


나는 겨울이 좋다.


주변의 것들과 인사하는 이 입김 나는 계절이 좋다.

가장 추운 이 계절이 내게는 역설적으로 더 따뜻하다.

그리고 또 겨울이 온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걸 보니 곧 눈도 오려나 보다.

올해 첫눈은 작년보다 더 포근했으면, 모두에게 더 포근한 눈이 되었으면.

짓밟혀 더러워지더라도 따뜻한 서로의 온기로 기억될 나날들로 덮여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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